강론

험담이 주는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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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7-06-04 ㅣ No.402

'험담이 주는 상처'     




어느날 한 청년이 무척 화가 난 표정으로 돌아와

화단에 물을 주고 있는 아버지에게 다가왔다.


“아버지!

정말 나쁘고 어리석은 녀석이 있어요.
그게 누군지 아세요?”


그러자 아버지가 아들의 말을 막았다.


“잠깐. 네가 이야기하려는 내용을 세 가지 '체'에 걸러보았느냐?”


어리둥절해진 아들이 되물었다. “세 가지 '체'라니요?”


“아들아 네가 하려는 이야기가 모두 진실이라는 증거가 있느냐?”

아들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글쎄요, 저도 전해 들었을 뿐인데요.”


“그렇다면 두 번째

선(善)이라는 [체]에 걸러보아라.

그 이야기가 진실한 것이 아니라면 최소한 선한 것이냐?”


"글쎄요,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운 것 같은데요.”

"그러면 세 번째로 너의 이야기가 꼭 필요한 것이냐?”


아버지의 물음에 아들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자 아버지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이야기하려는 내용이 진실한 것도, 선한 것도,

꼭 필요한 것도 아니면 그만 잊어버려라.”


타인에 대한 험담은 한꺼번에 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욕을 먹는 사람, 욕을 듣는 사람,

그리고 가장 심하게 상처를 입는 사람은 험담을 한 자신이라고 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골로3,13)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포도밭에 종들이 한 어리석은 행동을 나역시 험담이라는 태도로 실행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는 복음을 듣고 복된 말씀을 전할 의무와 또 성당에 다니면서 많은 좋은 이야기와 말씀 강론 교육을 받았지만

 

오히려 우리의 혀와 생각은 질투와 험담으로 얼룩지게 하지는 않았는지?

 

내 자신의 일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들 하는지?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고 하신 신부님의 말씀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혀속에 담겨져야할 말은 아름답고 복된 말씀이어야하지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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