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성당 게시판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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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태 [shouse] 쪽지 캡슐

2001-09-21 ㅣ No.4993

지난 달부터 성당에 다니기로 결심한 저의 어머니는 요즘 집에서 교리공부도 하시고 평일미사에도 아버지와 함께 참례하시면서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된 기쁨에 흠뻑 젖어계신 듯 합니다. 특히 이웃에 계신 교우분들이 미사갈 때면 연로하고 몸도 불편한 저의 어머니를 위하여 차편을 제공하고 같이 가 준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 훈훈한 공동체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저의 어머니는 소일거리로 집 앞 야산에 조그만 텃밭을 불법경작(?) 하시는데, 일년농사의 반은 밤이면 내려오는 노루의 간식으로 없어진답니다. 그래도 열심히 이것저것 매일 나가서 돌보고 가꾸시는데, 얼마전엔 늙은 호박이 아주 때깔좋게 자라서 요놈을 내일은 따서 이번 추석에 쓰야겠다고 생각하셨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산에 가니까 그 호박이 깜쪽같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주변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새벽 5시 30분까지는 분명히 매달려 있었는데 그새 어느 얌체가 가져간 것이지요. 어머니는 망연자실해서 힘없이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이웃의 교우분들이 우리 어머니를 위로하러 오셨답니다. 오셔서 스스로들 음식도 꺼내먹고 커피도 타 드시고 하면서 재미있는 이야기 마당으로 실컷 우리 어머니를 즐겁게 해드리고 가셨답니다.

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전화로 호박이야기를 전하면서, 호박은 잃어버렸지만 주변에 이렇게 좋은 이웃들이 있는걸 알았으니 더 많은걸 얻는 셈이라며 왜 진작 성당을 안 다녔는지 모르겠다 하시더랍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어 뭔가 분위기가 이상해 언뜻 눈을 뜨보니 저의 집사람이 조용히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는데, 아마도 저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감사의 기도를 바치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기분좋게 쿨~쿨~ 잠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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