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님께 드리는 사랑의 편지

폴란드에서 세배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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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 [andreas] 쪽지 캡슐

1999-02-17 ㅣ No.259

+찬미예수 추기경님, 바르샤바에서 설을 맞아 세배 드립니다. 올해는 주님께서 남다른 건강을 추기경님께 허락하시기를 빕니다. 추기경님께는 2년2개월만에 인사를 드립니다. 1992년 5월초 주말 추기경님께서 헝가리에 오셨을 때, 그 당시 전쟁이 막 스쳐간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에 주재하던 저희 가족은 370km를 달려 부다페스트로 가서 추기경님을 뵈었읍니다. 부다페스트 공동체 교우회장의 집에서 저녁을 드시던 날, 아주 재미있는 수수께끼를 내시어 모두를 즐겁게 해주시던 일이 생각납니다. "비는 비인데 세상에 평화를 내려주는 비는 ?" 아무도 못맞춘 정답은 "고르비"였지요. 그 당시는 소련의 붕괴와 러시아의 개혁개방으로 고르바쵸프의 인기가 높던 때였읍니다. 벌써 7년전이군요. 그 뒤에 저는 자그레브를 떠나 2년간 부다페스트 주재를 한뒤 94년말 서울로 돌아왔읍니다. 해마다 크리스마스 때면 추기경님께 카드를 보내드려 저희 가정에 심어주신 사랑의 나무가 커가는 모습을 알려 드리는 기쁨이 컸읍니다. 추기경님께서는 어김없이 손수 답장을 보내 주셨지요. 그러던 중 1997년 12월, 종합상사에서 해외업무를 담당하던 저에게 우리나라에 엄습한 IMF 위기는 대단한 시련이었읍니다. 5년만에 처음으로 추기경님께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지 못한 채 해가 바뀌었고, 추기경님은 그 사이 평화로운 은퇴를 하셨읍니다. "이제 내 가고 싶은 곳 마음대로 가게 운전면허를 따야지"라는 젊은이보다도 더 젊은 말씀을 남기시고--- 혜화동의 옛노인, 노병사라고 스스로 칭하시지만, 사실 추기경님만큼 마음의 젊음, 정신의 활력을 가진 젊은이는 흔치 않을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으로서 실패한 카터는 오히려 퇴임 후 평화를 지키는 국제분쟁의 훌륭한 중재자로 성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추기경님께서는 현역이실 때에도 우리나라의 복음화에는 물론, 민주화를 위해서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공헌을 하셨읍니다. 우리나라의 가톨릭교회는 세계에서도 모범이 되었지요. 추기경님께서 이제 무슨 일을 하실까, 퇴임 후에는 무슨 계획을 세워 두셨을까, 주님께서 어떤 일을 맡기셨을까 생각해 봅니다. 저는 지난해 9월초부터 폴란드 바르샤바에 주재하고 있읍니다. 이곳 공동체는 3년전에 생겨 그동안 한국에 다녀오신 적이 있는 안토니오 코시치 신부님의 인도로 100명에 이르는 교우가 있었읍니다. 지난 2월14일에는 드디어 한국인 신부를 모시게 되어, 대전교구 관리국장을 지낸 이경렬 베드로 신부가 부임하였읍니다. 1992년 5월 추기경님께서 부다페스트에서 하신 약속, 중동구국가에 한국인사제를 보내시리라던 약속이 이제 이루어졌읍니다. 7년전에 추기경님을 뵈온 저희 가족도 시간 속에 변화 했읍니다. 그 당시 6학년이던 은지 마리나는 주님께서 살펴주신 은혜로 이번에 서울대 독문과 합격을 하였고, 홍제동성당의 주일학교 교사를 지원했읍니다. 4학년으로서 추기경님께서 귀여워해주시던 해욱 요한은 코밑 수염이 거무스레한 고2가 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의지가 굳센 데레사가 아이들을 올바로 키워서 비록 저는 아이들 교육 때문에 단신부임으로 나와 있지만 마음은 든든합니다. 폴란드의 쳉스트호바 Black Madonna 성모님 이콘을 보며 추기경님의 건강과 운전면허 취득소원을 이루시도록 기도 드립니다. 2월16일 눈 내리는 설날 바르샤바에서 정용진 안드레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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