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님께 드리는 사랑의 편지

† Lode Ge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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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 [agneskim] 쪽지 캡슐

2000-02-14 ㅣ No.1193

 

† Lode Gesu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오늘 아침에도 눈이 내렸지만 언제나 아침 출근길에 내리는 눈은 왠지 제 기분을 울적하게 만듭니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눈 내리는 날이면 동네 강아지들처럼 무척 좋아했는데 이제는 ’아~ 눈이 오니 오늘도 전철에 사람이 많겠군...’ 하는 생각과 함께

저의 걸음걸이가 평범치 않아(가족들은 팔자 걸음이라 하고 저는 양반 집 걸음이라 늘~ 강조하는...) 바지 위로 무차별적으로 서로 잘났다고 뛰어오르는 무심한 흙탕물을 넓은(?)마음으로 다 수용하자니... 으메 지저분한 내 바지...

 

내리는 눈을 실내에서 보고 있는 것은 좋지만 (역시 눈은 함박눈이 최고여...)

눈을 맞거나 눈 쌓인 거리를 걷는 것은 별로가 되었습니다. (빨리 녹아서 길바닥이 뽀송뽀송 했으면 --> 동생들은 나이 먹은 증거래요... @.@ 무시기??)

 

제가 몇 년 전에 주일학교 교사를 시작할 때 저희 본당에는 (지금 몇몇 다른 본당도 그렇지만...)나이 제한이 있었습니다.

늘~ 농담처럼 (오가는 농담 속에 싹트는 진실이라 했던가요??) 탤런트 시험도 나이 제한에 걸려 못 봤는데 주일학교 교사도 나이 제한에 걸려 못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제 외모만을 보고 (남들이 제가 동안이라고 해요~ 빈말인 것 다 알고 있지만... 기분은 좋습니다...호호호)

"저~ 주일학교 교사 모집하는데요 안 하실래요?" 하면 나이가 걸린다는 말은 차마 못하고 (왜 그랬을까요...) 그저 바빠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으~ 드디어!!

저희 본당에서 갈현동과 녹번동으로 분당을 하면서 교사들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나이제한이 없어 진 때가 있었습니다.

왔구나~

교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약 5년 가까이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음~ 동의를 안 하는 사람이 몇 있을 것 같군요... 저 나름대로는....)

 

제가 교사를 하는 동안 담당 신부님이 네 분 계셨는데

첫 번째 신부님께서는

"아녜스 선생님~ 나 보기 좋지?? 시집가지 말고 수녀원 들어가... (한 참 말씀이 없으시다가..) 음~ 수녀원도 사람을 가려서 안되겠군..."  아이고 신부님!!??

 

두 번째 신부님께서는

"김희정! 넌 모든 것이 완벽해 (m^o^m 역시 신부님 눈은 높군요...) 그런데 나는 네가 싫어... 음~ 너는 너무 나이가 많거덩" 흑흑흑 -_-;;  신부님 외모(이 것도 딸리나?? -.-;;) 로는 안 될까요?

 

세 번째 신부님께서는

"희정아?  내가 다른 본당 가기 전에 퇴임해라 새로 오시는 신부님을 위해 내가 해 드릴 것이 뭐가 있겠니... 너 같이 나이 많고 말 많은 교사 정리해 드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선물이지..."  아무래도 신부님 절 다른 신부님께 맡기기가 아까우신 것 아닌가요잉??

 

네 번째 신부님께서는... 사실 이분께는 너무 죄송해요 제가 몇 달 하다가 휴직을 했는데 정말 퇴임처럼 되어 버렸으니까요...

"어이~ 이봐 동갑~ 언제 복귀할 꺼야?  빨랑빨랑 들어와... 이제 그만 놀고... 그 외모 그 나이에 받아 주는데도 없잖아..." 아이고 왜 그러셔요 이래도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은 많은디...

"신부님 여자와 고무줄은 자고로 자꾸 튕겨야 되는데요..."

"네가 011이냐 때와 장소를 안 가리게? 받아 준 다고 할 때 들어와"

으잉??? 신부님 늘 끝을 그렇게 맺으시다니...

 

말씀들은 그렇게 하셨지만 언제나 저를 대왕대비이자 왕언니(주일학교 교사 통 털어 제가 제일 나이가 많아서 붙은 두가지 별명입니다)로 깍듯이(??) 대접해 주신 분들입니다.

 

오늘 왜 이렇게 구구절절이 늘어놓냐구요?

이제 만학도 김희정이 2학년이 되었습니다.

내년엔 3학년이 되면 정말 나이도 그 때보다는 엄청 많아지죠...

어제 미사 후에 노래를 부르면서 주일학교 학생들 등록을 받는 교사들을 보니 이제 정말 나이가 너무 많아 교사를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슬퍼지더라구요.

 

그리고, 무엇보다 주일학교 교사 시절의 추억을 너무 아름답게 만들어 준 우리 사랑하는 어린이들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정말 기회가 주워졌을 때 잘~ 할 것을 하는 후회도 들고요.

 

현재 주일학교 수녀님께서는 나이제한을 철저히(?) 두신다는 정보로인해 0순위로 제외된 저는 면담할 엄두도 못 내고 있습니다.

그 때 휴직했으니 다시 복귀하겠다고 하는 것도 그렇고...

이제 또 다시 시작 한다해도 회사 일에 학교 공부까지 해야 하니까 신부님 수녀님 걱정처럼 제게 맡겨진 일을 소홀히 할 것 같기도 하고...

이제 더 나이가 들면 교사하기 점점 힘들어 질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 (물론 어머니 교사도 있지만요)

 

그래서 토요일부터 이어오는 울적한 기분에 할아버지께 이렇게 구구절절이~

 

언제나 자상하게 답장 주셔서 감사드리고...

저에게 보내신 글은 짧더라도 (음~ 여자에게서 질투가 사라지면 시체와 같다라는 말을 마치 생활 신조(?)로 삼듯 저에게 쓰신 글이 남들보다 짧으면 좁은 소견에 울적~한 -_-;; 때도 있었지만...) 다른 이에게 남겨주신 할아버지의 깊은 뜻이 저에게도 전달되는 것이라 생각하며...

 

오늘도 할아버지 답장에 감사드리면서 불광동 아녜스가 올립니다.

 

아참!

할아버지 오늘 Saint Valentine’s Day 인데...

초콜릿 많이 받으셨나요?

늘~ 말로만 할아버지 향한 사랑을 알아달라고 하면서 오늘 같이 중요한 날에 할아버지께 작은 것 하나 안 드리고... 죄송합니다.

 

단 것(DANGER)은 할아버지 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다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이만 죄송한 마음에 총총총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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