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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장 2.기도는 거룩한 습관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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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4-10-07 ㅣ No.71

 

2004년 10월호


교본 해설 46


제22장 레지오의 기도문


기도는 거룩한 습관이 되어야 한다


한 번 기도를 열심히 하였다고 그것을 성덕(聖德)이라고 하지 않는다. 한 번 봉사를 열심히 하여 보람을 느꼈다고 그것을 애덕(愛德)이라고 하지 않는다. 기도가 생활이 되고 기쁨이 되어 좋은 습관이 될 때 그것을 성덕(聖德)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봉사가 생활이 되고 기쁨이 되어 좋은 습관이 될 때 그것을 애덕(愛德)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을 향한 올바른 신앙생활,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천국의 생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한순간의 봉사와 한순간의 기도인 애(愛), 덕(德)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기도의 습관인 성덕(聖德)과 사랑의 습관인 애덕(愛德)이 필요한 것이다.

삶은 두 가지가 어우러져 이루어진다고 한다. 좋은 습관인 덕(德)과 나쁜 습관인 악(惡)이다. 우리의 삶을 가만히 성찰해 보면 나의 죄와 나쁜 점은 반복성을 갖고 있다. 반복성과 중독성이 있는 나쁜 습관을 고치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다.

습관이라는 것은 매우 고착(固着)적인 면을 갖고 있어 그것이 형성되면 무서운 반복성을 갖게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좋은 덕을 쌓지 않는다면 그 반대의 덕을 자동적으로 갖게 된다.

어렸을 때 어른에게 인사하는 예절을 반복적으로 가정에서 교육받지 않은 아이들은 커서도 인사성이 없다. 어린시절 양치질이 습관되도록 부모로부터 반복 교육받지 않은 아이들은 양치질을 잘 하지 못한다.

어린아이는 양치질하기 싫어한다. 귀찮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의 꾸준한 가르침을 통해 그것이 습관이 되면 건강한 치아를 갖게 되어그것에 감사하게 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의 자식들에게도 가르친다.

기도 역시 같은 이치이다. 기도의 진정한 의미와 행복은 습관인 덕(德)의 경지에 올라야 갖게 되는 것이지 먼저 의미를 머리로 이해하고 동시에 그것을 실천할 힘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의 단원 선서를 했다고 해서, 신앙의 중요성과 교본에 나온 복음의 지혜와 하느님 은총의 말씀을 머리로 학습했다고 해서 그것이 덕이 되는 것이 아니다. 꾸준한 실천이 중요한 것이다.

나는 수년 전에 세례를 앞둔 어느 연기자인 예비신자와 대화를 나눈 일이 있다. 그분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ꡒ신부님, 천주교에서 배우는 기도는 참 많습니다. 그리고 예절도 많고 전례도 시기마다 다양합니다. 꼭 기도문이나 사도신경을 외워야 합니까? 일단 세례를 받고 외우면 안 됩니까?ꡓ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ꡒ참으로 가슴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연기를 하기 위해서, 살아있는 연기를 하기 위해서 노력한다면 그 대사를 빠짐없이 외우는 것은 기본이 아닐까요? 대사도 모르면서 의미를 담는다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대사를 외우고 그것이 내 것이 되고, 그것을 반복하고 연기를 반복하면서 다시 촬영하여 어느 순간 좋은 연기가 나오면 그것을 상영하게 되지 않나요?ꡓ

ꡒ네, 신부님 말씀이 참 좋은 비유였습니다. 외우도록 하겠습니다.ꡓ

가슴과 머리가 하나되기 위해서는 습관이 되는 어울림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나쁜 덕을 쌓는 것은 너무나 쉽다. 나쁜 덕인 악을 쌓게 하는 것은 그릇된 욕정과 유혹, 이로부터 생겨나는 허황된 쾌락, 허무하고 허탈한 순간적 즐거움이다. 성숙되지 못한 사람은 바로 이러한 유혹에 넘어가 그 악의 낭비성과 허무함을 알면서도 습관적인 중독에 자신을 내맡긴다. 즉 자신을 게으름과 파멸에 내맡기는 것이다. 악덕은 쌓을 필요가 하나도 없다. 그것은 내가 허락만 하면 쌓이는 것이고 나를 죽이는 작업을 통해 자신의 영적․육적 무덤을 만들어 결국 무덤의 흙을 자기 자신이 덮는 꼴이 되는 것이다.

기도와 봉사를 통해 습관된 덕의 상태를 성화(聖化)라고 한다. 우리 레지오 마리애의 목적은 바로 개인 성화이다. 따라서 개인 성화라는 말 속에는 매일 매일의 기도와 봉사하는 삶의 반복이라는 의미가 서려있다.


우리는 선서를 통해 레지오 마리애의 기도와 봉사를 의무로서 내 삶 안에서 실천할 것임을 맹세하였다. 저자는 레지오 교육을 하면서 단원들의 매일의 기도생활에 대해 설문조사를 하였다.

많은 교육을 통해서 만나는 단원들에게 ꡒ일주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까떼나 레지오니스를 바칩니까?ꡓ라는 질문을 하였다. 놀랍게도 그 의무를 다하는 단원의 비율은 30% 미만이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 빠지고 바치는 사람들은 더 적었다. 이는 생각 외로 우리 단원들의 영신적인 재무장이 시급히 요청된다는 증거이다.

레지오 마리애는 복음의 ꡐ마리아와 마르타ꡑ의 역할을 상호보완적으로 조화롭게 보유하여야 한다. 레지오 마리애 단장과 간부들은 매일의 기도를 단원들이 잘 바치고 있는지, 그 의미를 잘 알고 있는지를 수시로 점검하여야 한다.

만약 일주일 내내 까떼나 기도를 한 번도 바치지 않는다면 당연히 기도에 대한 감(感)을 잃어버리고 만다. 따라서 회합에서 레지오 마리애의 묵주기도를 바치는 것 또한 지루하게 느껴지고 인간적인 만남이나 친목을 위한 욕구가 생겨 영적인 분위기는 사라지고 세속적인 주제와 흥미가 드러나게 된다.

습관적으로 지각하는 단원들의 이유를 들어보면, ꡐ레지오 마리애 회합에서 바치는 묵주기도의 은총과 행복을 안다면 그러한 핑계가 가능한가?ꡑ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ꡒ기도할 시간이 없다는 사람은 행복할 시간이 없다는 뜻이다ꡓ라는 표어처럼 세속적인 쾌락이나 흥미를 좇는 사람들은 결코 진정한 하느님의 평화를 얻을 수 없다.


대중매체의 발달로 텔레비전 시청은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드라마․영화․광고 등의 프로그램은 중독성이 있고 복음적이지 못한 부분마저 담고 있어서 우리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많이 줄 수 있다. 그래서 텔레비전을 ꡐ현대의 마약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레지오 단원 여러분, 우리는 텔레비전 시청을 하루에 몇 시간이나 하는지 잠시 반성하여야 합니다. 성모님과 하나되어 바치는 묵주기도 5단, 그리고 아름다운 까떼나 바치는 시간의 몇 배를 할애하면서 텔레비전을 시청하지는 않는지?

그렇다면 우리의 삶의 태도를 과감하게 바꾸어야 합니다. 일주일에 2시간의 봉사, 그리고 회합 때만 기도하는 것으로써 우리 레지오 마리애의 기도와 봉사의 삶을 다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레지오 마리애를 교회의 평신도 사도직 단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세속의 취미 단체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요리사가 맛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매일 요리를 연구하고 그 혀를 보호하지 않습니까? 기도에도 봉사에도 맛과 감(感)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의 맛과 감을 잃어버릴 때 회합은 지루하고 봉사는 수동적이게 됩니다.


매일 기도하는 것은 의무라기보다 특권이며 행복입니다. 옛 현자의 말씀에 ꡒ그것을 의무로 여기는 사람은 그것을 즐겨 습관이 된 사람을 능가할 수 없다ꡓ고 했습니다.

ꡐ내가 과연 레지오 마리애 단원의 길을 잘 걷고 있는가?ꡑ 자문해 볼 때, 그 답은 오늘 레지오 마리애 기도를 어떤 마음으로 바쳤는가에 달려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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