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25주일-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경축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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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18-09-22 ㅣ No.3655

 

연중 제25주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이동

(나해) 루카 9,23-26; ’18/09/23

교황의 사도적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 복음화의 사회적 차원1

 

오늘 우리가 살펴볼 교황의 사도적 권고 복음의 기쁨은 제4복음화의 사회적 차원1입니다. 교황은 이 4장 전반부에서 복음화의 사회적 차원을 다룸으로써 복음화 사명의 참되고 본질적인 의미가 왜곡되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교황은 케리그마의 공동체적 사회적 반향이라는 제하에서, 케리그마(복음선포)에는 명료한 사회적 내용이 담겨있고, 복음의 핵심에는 공동체 생활과 다른 이들에게 대한 헌신이 있으며, 첫 선포의 내용에는 사랑을 중심으로 한 직접적인 도덕적 의미가 담겨있다고 하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사회적 차원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개별 인간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도 구원하시기때문입니다. 성령께서 모든 사람 안에서 활동하고 계심을 믿는 것은 성령께서 모든 인간의 상황과 모든 사회적 관계에 파고 들어가려 하신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의미입니다.

 

복음의 핵심에서 우리는 복음화와 인간 증진 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구원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것과 참다운 형제애 사이의 끊을 수 없는 유대가 성경에 나타납니다. 우리가 더 이상 형제애와 정의의 복음의 삶을 살아가려는 열정을 잃고 그러한 삶에 더 이상 감탄하거나 매료되지도 않는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해롭습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등의 성경구절에서 우리 자신에게서 벗어나 형제자매들을 향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우선하며, “사랑의 봉사는 교회의 사명을 이루는 구성 요소이며 교회의 본질 자체를 드러내는 필수적인 표현이기도 합니다.”

 

복음은 단순히 하느님과 개인적인 관계나,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자선 목록에 그치지 않고,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도록, 즉 이 세상에서 다스리시는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제안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에서 다스리시는 그만큼, 사회생활은 보편적인 형제애, 정의, 평화, 존엄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교회의 사목자들은 인간 생활과 관련되는 모든 것에 대한 의견을 개진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더 이상, 종교가 사적인 영역에 국한 되어야 하고 오로지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도록 준비하기 위해서만 종교가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을 영원한 행복으로 부르시지만, 그들이 이 세상에서도 행복하기를 바라십니다.

 

종교가 국가 사회 생활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말라고, 국가 사회 제도의 안녕에 관심을 갖지 말라고, 국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에 대하여 의견을 표명하지 말라고, 그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요구할 수 없습니다. 누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나 콜카타의 데레사 복자의 메시지가 들리지 않도록 이를 성당 안에 가두어 버려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참다운 신앙은 결코 안락하거나 완전히 개인적일 수 없는 것으로서, 언제나 세상을 바꾸고 가치를 전달하며 이 지구를 이전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은 곳으로 물려주려는 간절한 열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정의가 모든 정치의 목적이며 고유한 판단 기준이라면’, 교회는 정의를 위한 투쟁에서 비켜서 있을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됩니다.’”

 

간추린 사회 교리를 공부하고 활용하십시오. 더 나아가서 교황이나 교회가 사회적 현실을 해석하고 현대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독점 권한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각 지역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일은 각 지역의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책임이라고 말하십니다.

 

 

교황은 가난한 이들의 사회 통합이란 제하에서, 가난한 사람이 되시어 언제나 가난한 이들과 버림받은 이들 곁에 계신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사회에서 가장 방치된 이들의 온전한 발전에 대한 우리 관심의 바탕이 된다고 하시며,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을 귀담아 잘 들어주고 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가난한 사람들이 여러분을 걸어 주님께 호소하면 여러분에게 죄가 될 것입니다.”(신명 15,9) 라고 경고하십니다.

 

자비의 복음과 인간 사랑으로 인도되는 교회는 정의를 요구하는 울부짖음을 듣고 있으며, 온 힘을 다 기울여 그 부르짖음에 응답하고자 합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마르 6,37) 하신 말씀은 빈곤의 구조적 원인을 없애고 가난한 이들의 온전한 발전을 촉진하도록 일하라는 의미입니다. ‘연대성이라는 말은 어쩌다가 베푸는 자선 행위 이상의 것입니다.

 

연대는 소수의 재화 독점을 극복하고 공동체 차원에서 모든 사람의 삶을 먼저 생각하는 새로운 마음가짐을 전제로 합니다. 재산의 사회적 기능과 재화의 보편적 목적이 사유 재산에 앞선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이들의 자발적인 행동입니다. 연대는 가난한 이들에게 속한 것을 그들에게 돌려주는 결정으로 실천되어야 하며, 새로운 확신과 태도가 생겨나지 않은 채 구조만 바꾸면, 그 구조는 오래지 않아 부패하여 억압적이고 비효율적인 구조가 될 뿐입니다.

 

평화는 인권 존중뿐만 아니라 민족들의 권리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합니다. 남보다 잘사는 사람들은 자기 재산을 남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너그러이 일정한 자기 권리를 양보합니다.

 

브라질 주교님들은 날마다 국민, 특히 권리를 침해 당한 채 빈민지역과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고 땅도 집도 먹을 것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쁨과 희망, 곤경과 슬픔에 함께하고자 합니다. 그들의 가난을 보고 그들의 울부짖음을 듣고 그들의 고통을 아는 우리는 분노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먹을 만큼 충분한 양식이 있다는 것을 알고, 굶주림은 재화와 소득의 불의한 분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분노합니다. 이 문제는 낭비의 만연으로 더욱 악화되고 있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양식이나 품위 있는 생계의 보장만이 아니라 그들의 모든 복지와 번영’, 곧 교육과 의료 혜택, 고용을 바랍니다.

 

자비를 베풀지 않은 자는 가차 없는 심판을 받습니다.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야고 2,12-13) “사랑은 많은 죄를 덮어 줍니다.”(1베드 4,8) 정통 교리의 옹호자들이 가끔 수동적이라거나 특권층이라는 지탄을 받으며, 무참한 불의의 상황과 그 불의를 지속시키는 정치 체제와 관련하여 공모자라는 비난을 받습니다. 가장 작은 이들, 사회가 저버린 이들을 선택합시다.

 

하느님께서 친히 가난하게 되실”(2코린 8,9) 정도로 하느님의 마음속에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특별한 자리가 있습니다. 주님은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다.”(마태 25,35) 고 하셨고, 모든 이에게 베푸는 자비가 천국의 열쇠라고 가르치셨습니다(마태 25,35 이하).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선택해왔습니다. 새로운 복음화는 가난한 이들의 삶에 미치는 구원의 힘을 깨닫고 그들을 교회 여정의 중심으로 삼으라고 초대합니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알아 뵙고, 그들의 요구에 우리의 목소리를 실어 주도록 부름 받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다른 이를 어떤 의미에서 나 자신과 하나라고 여기며 다른 이를 향하여 관심을 쏟도록 하십니다. 가난한 이가 겪는 최악의 차별은 영적 관심의 부족입니다. 평신도의 근본 소명과 사명은 복음을 통하여 다양한 현세의 일들과 모든 인간 활동을 변화시키는 것이지만, 어느 누구도 가난한 이들과 사회 정의에 대한 관심을 쏟는 데에서 제외되지 않습니다.

 

사회를 약화시키고 침체시켜 새로운 위기로 이끌기 마련인 병폐에서 사회가 치유되어야 하기 때문에 가난의 구조적 원인을 해결해야 합니다. 정의의 증진은 더 나은 소득 분배, 일자리 창출, 단순한 복지 정신을 넘어 가난한 이들의 온전한 진보를 분명히 지향하는 결정, 계획, 구조, 과정을 요구합니다. 어떤 교회 공동체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지 않고 안주하면, 종교실천이나 무익한 모임이나 공허한 말로 위장한 영적 세속성에 빠지게 됩니다.

 

온갖 인신매매의 희생자들, 배척과 부당한 대우와 폭력의 상황에 시달리는 여성들, 자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는 무죄한 태아들과 자연의 피조물들을 그리스도인으로서 보살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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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5주일-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맞이 추석 한가위 꽃꽂이

 

"온갖 열매 땅에서 거두었으니, 하느님, 우리 하느님이 복을 내리셨네."


우리의 고유 명절을 맞이하여 추수의 감사를 담았습니다.
농사에서 알곡과 쭉정이를 골라내는 키를 이용하여 꽃과 호박, 벼, 밤송이, 조등을 담아 구상하고 우리도 하느님의 키질에서 남는 알곡이기를 기도하고 풍성한 결실에 감사드립니다~

 

*꽃말
카네이션:모정,사랑
백합: 순결,변함없는 사랑
소국: 성실
황칠나무: 효자
화초토마토: 완성된 미
벼꽃: 풍요
밤꽃: 진심
호박꽃: 해독,사랑의 치유
목화꽃: 모정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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