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31주일(가해) 마태 23,1-12; ’23/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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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3-10-21 ㅣ No.5562

연중 제31주일(가해) 마태 23,1-12; ’23/11/05

 

 

 

 

 

 

어떤 분들은 가끔 이렇게 생각한답니다. “내가 저 사람보다 모자란 것이 뭐인데, 왜 나를 뽑아주지 않지?”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개인적으로는 내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가와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를 가늠하고, 또 공동체적으로는 저 사람이 우리에게 얼마나 희생봉사하며 기여했는가와 기여할 것인가를 보고, 그 사람에 대한 존중감과 선택의 여부를 결정하기도 합니다. 내가 인격적으로 얼마나 그럴싸하게 보이느냐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는 얼마나 타인에게 봉사하는가의 여부가 평가의 더 결정적인 요인이 되는 것이겠지요. 인격 또한 봉사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마태 2,2-3) 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어떤 이는 직책을 받고 자리를 잡고 앉아서야 봉사를 시작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이들은 그의 과거를 보고 결정하지, 그가 할지도 안 할지도 모르는 긍정적인 잠재성을 기대하며 결정하기를 사뭇 꺼립니다. 그런 경우에는 괜히 개인적인 감정이 개입되었다던가, 또는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구심을 받기도 하기 때문인가 봅니다.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4)

 

형제자매들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자리가 잡혀가고, 형제자매들에게서도 존중받고 선택받을 터인데, 봉사는 꺼리고 뒤로 하면서, 먼저 직책과 자리부터 생각하고, 그 자리가 자기에게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왕 십자가를 짊어져야 할 형편이라면, 누가 요청하기 전에, 가벼운 십자가를 골라 간단하고 편안한 봉사를 고르기도 합니다. 우리가 시공에 제한된 세상에 살고 있어서, 어떤 때는 상황과 환경에 따라, 공동체에 필요한 자리와 자기가 앉고 싶은 자리가 서로 다를 수도 있습니다. 봉사도 기쁘고 행복하게 할 수 있기를 바라기에, 이왕이면 무거워 보이는 십자가는 선택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인지상정인가 봅니다.

 

권리는 주장하면서 의무에 게을리하는 사람이 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형제자매들에 대한 봉사나 기본적인 책무인 청소나 허드렛일은 뒤로하면서, 영광의 자리는 놓치지 않으려는 어리석음에도 빠지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5-7)

 

그런가 하면, 자기 개인의 삶을 영위하기에도 벅차다고 느껴, 희생 봉사보다는 조용히 성사와 기도생활만 하고 싶어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누구 앞에 나서기도, 누구 앞에 드러내기도 부족하다고 여기며, 또 불편하여 그저 피하기만 하면서 안분지족하자는 분들도 있음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8-10)

 

예수님의 말씀이 위 각각의 경우에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위의 예들이 떠오름은 우리 사회의 낯설지 않은 풍경입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11-12)

 

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헌장은 평신도들의 고유 사명은 현세적 일을 하느님의 뜻에 맞게 관리함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찾는 것이다. (……) 그러므로 그들이 해야 할 일은 특별히 자신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현세의 사물을 비추어 주고 관리함으로써 모든 것이 언제나 그리스도의 뜻대로 이루어지고 자라서 창조주와 구세주께 찬미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교회 31) 라고 말합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모든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평신도들은 세례와 견진을 통하여 하느님께 사도직의 임무를 받았기 때문에, 그들은 개인적으로나 단체적으로 하느님의 구원 소식을 사람들과 온 세상에 알리고 받아들이게 하기 위한 일을 수행할 의무와 권리를 가지고 있다.”(교리서 900) 라고 이어 받습니다.

 

그리스도 사제직에 대한 평신도의 참여부문에서 교리서는 평신도들은 그리스도께 봉헌되고 성령께 도유되었으므로, 그들 안에서 항상 성령의 열매를 더욱더 풍부하게 맺도록 놀라운 소명과 능력을 받았다. 그들의 모든 일, 기도, 사도적 활동, 부부 생활, 가정 생활, 일상 노동, 심신의 휴식 등을 성령 안에서 행하며 더구나 생활의 번민을 인내로이 참아 받는다면 이 모든 것은 '영적인 희생,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희생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치게'(1베드 2,5 참조) 될 것이며, 성찬 거행 때에 주님의 몸과 함께 정성되이 성부께 봉헌될 것이다. 이와 같이 평신도들도 예배를 드리며 어디서나 거룩하게 삶으로써 이 세상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이다.”(901; 교회 헌장 34항 참조) 라고 말합니다. 특별히 부모들은 부부생활과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그리스교적 정신으로 해야 한다고 덧붙입니다(교리서 902).

 

그리스도 예언직에 대한 평신도의 참여부문에서 교리서는 교회 헌장을 인용하여 그리스도께서는 (……) 당신의 예언직을 교계뿐만 아니라 평신도들을 통하여 수행하신다. 그러므로 평신도들을 증인으로 삼으시어 그들에게 신앙 감각과 말씀의 은총을 주신다.”(교리서 903; 교회 35) 라고 말합니다.

 

아울러 평신도들은 그들의 예언자적 사명을 복음화를 통해, “곧 생활의 증거와 말로써 하는 그리스도 선포를 통해 실현한다. 평신도들이 하는 이러한 복음화 활동은 일반 생활 조건에서 수행된다는 점에서 독특한 특징과 특수한 효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교리서 905; 교회 35) 라고 전합니다.

 

그리스도 왕직에 대한 평신도의 참여부문에서 교리서는 현대의 복음선교를 인용하여 평신도들은 사목자들의 협력자로서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봉사하도록 소명을 받거나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겠다. 그들은 주님께서 그들에게 주기를 바라시는 은총과 특은에 따라 교회 공동체의 성장과 활동을 위하여 매우 다양한 직무를 수행하게 된다.”(교리서 910; 현대의 복음선교 73) 라고 밝힙니다.

 

아울러 교회와 사회에서 그리스도교적 양심을 따라야할 것이며(교리서 912), “각 평신도는 각기 받은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분량대로’(에페 4,7) 교회의 사명을 완수하는 도구이며 증인이다.”(교리서 913; 교회 33) 라고 선포합니다.

 

세례성사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직과 왕직에 참여하는 평신도 사도 여러분, 여러분이 즐겨 하는 일이 형제자매들에게도 선익을 가져다주는 봉사가 되기를 바라며, 그 일 안에서 여러분이 참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구원의 길이 되기를 빌며, 주님의 축복을 청합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마태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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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1주일 꽃꽂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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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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