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주님 만찬 성목요일 탈출 12,1-8.11-24; 1코린 11,23-26; 요한 20,1-9; ’22/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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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2-03-30 ㅣ No.4990

주님 만찬 성목요일 탈출 12,1-8.11-24; 1코린 11,23-26; 요한 20,1-9; ’22/04/14

 

 

 

 

 

 

 

우리는 가끔 돌아가시는 분들에게,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모든 어려움을 다 가져가시라고 청하곤 합니다. 특별히 돌아가시는 분이 우리 부모님이나 할아버지 할머니인 경우에, 자식들의 질병, 집안의 온갖 액운과 흉을 다 가져가시라고 청합니다. 그렇게 청하는 배경에는 우리의 문화 속에 돌아가시는 분들이, 남아 있는 이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가져가서 없애실 수 있다고 여기는 심성이 우리 민족의 문화의식 속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도 유사한 문화양식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다른 민족들과는 달리 속죄제와 희생제사라는 제사예식이 있습니다. 레위기 4장을 보면, “누가 실수로, 주님이 하지 말라고 명령한 것을 하나라도 하여 죄를 지었을 때”(레위 4,2)부정한 상태로”(레위 14,19) 하느님과 멀어지게 되면, 죄를 짓는 이와 죄의 경중에 따라 황소나 양, 염소 등을 잡아, 그 피를 제단 밑바닥에 쏟고, 속죄의 예식을 바쳐서, 죄를 용서받는다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이 속죄제는 죄인 자체를 벌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지은 이가 속죄제물을 대신 바치고, 사제의 속죄예식을 통해 용서를 받는다는 성격입니다. 이렇게 제물로 대신 죄를 용서받는다는 의미에서 이를 대속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대신 죄를 용서받기 위해 희생되는 제물을 속죄제물또는 희생제물이라고 합니다. “사제는 손가락에 피를 찍어 주님 앞에, 곧 성소 휘장 앞면에 그 피를 일곱 번 뿌린다. 그 속죄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은 다음, 번제물을 잡는 곳에서 그것을 잡아 속죄 제물로 삼는다. …… 이렇게 사제가 어떤 사람이 지은 죄 때문에 그를 위하여 속죄 예식을 거행하면, 그는 용서를 받는다.”(레위 4,6.20.24-26.33-35; 14,20 참조)

 

우리는 이 속죄제사라는 이스라엘 유다교의 종교문화적 배경을 통해,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며 흘린 피가 인류의 죄를 씻고 구원된다고 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더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을 그 옛날 속죄의 제물로 바치던 흠없는 어린양이라고 하고 더 나아가 하느님의 어린양이란 표현을 쓰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인류의 죄를 씻기 위해 예수님을 희생제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인류의 죄를 씻어달라고 주 하느님께 청하셨기(루카 23,34 참조) 때문에 예수님을 대속제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시는 모습을 인류 구원을 위한 희생제사라고 하는 의미가 여기에 근거합니다.

 

이를 두고 히브리서는 속죄제에 대해 이런 의미를 전합니다. 구약의 속죄제사에서나 신약의 그리스도에게서나 다 속죄의 희생제물이 바쳐집니다. 그것은 피를 흘리는 제물로서, 죄의 용서를 얻기 위한 속죄제물입니다. 구약에서는 정해진 의식에 따라 짐승들을 잡아 바칩니다. 신약에서는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하느님에 대한 완전한 순명과 사람들과의 전적인 연대성 속에, 치욕적인 십자가형을 받으면서까지 자신을 온전히 바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과의 일관성과 연대성 안에서 인류 구원의 희생제사를 봉헌하시고, 우리를 죄와 악으로 인한 죽음에서부터 구하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구약의 최종적인 계약과 제사가 온전한 달성되고, 이제는 더 이상 대속 제물이 아닌, 자기 희생을 통한 새로운 사랑의 계시가 이루어짐을 발견합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이 미사에서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몸소 성체성사를 제정하십니다. 그리고 성체성사의 내용이자 의미가 내일 있을 성금요일 십자가상 제사라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내가 고난을 겪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파스카 음식을 먹기를 간절히 바랐다.”(루카 22,15)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면서, ‘왜 내가 죽는지?’, 그리고 내가 죽음으로써 어떤 일이 생겨나는지?’에 대해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미리 그 의미와 내용을 성체성사를 제정하면서 이야기해주십니다.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모두 이 잔을 마셔라. 이는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마태 26,28-29; 마르 14,24) 예수님 죽음의 이유는 바로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주기 위해, 예수님께서 스스로 대속 속죄 제물이 되시어, 피를 흘리며 희생제사를 봉헌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예수님께서는 성체성사를 통해 구약의 제사를 갱신하고, 예수님을 희생제물로 바치는 새로운 계약의 제사를 봉헌하십니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루카 22,20; 1코린 11,25 참조)

 

예수님께서는, 자식 새끼 하나 먹여 살리기 위해서 하루 종일 애써 일하고, 갖은 굴종과 비위를 다 맞춰가며 얻은 돈으로 가족들 밥 한끼를 먹이는 부모의 맘으로, 이야기하십니다.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마태 26,26; 마르 14,22; 루카 22,19; 1코린 11,24)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 1코린 11,24.25) 사도 바오로는 주님의 이 말씀을 풀어 설명해줍니다.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1코린 11,26)

 

우리는 성체성사를 봉헌하면서, 이를 기억과 기념또는 기억과 재현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기억하여 그 때 그 순간의 예식을 거행하며 그 때 그 순간에 베풀어주신 주 하느님 자비와 사랑의 은총을 되새기는 것입니다.

 

이 기억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그 때 그 순간을 오늘에 되살려 재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체성사를 거행할 때마다 사제의 입을 통해 주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사제의 제사를 통해 주 예수님의 희생제사를 봉헌합니다.

 

이 미사의 성체성사를 통해 거행되는 예수님의 희생제사는 단순이 최후의 만찬 순간을 예식적으로 되풀이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시대에 주 예수님의 희생제사를 전례적으로 거행하며, 주 예수님의 희생제사를 이어받는 교회의 희생제사로 확대 발전시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대에 만연하고 있는 죄와 악의 굴레에 빠져 신음하는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대신 희생할 것을 지향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체성사를 영하며 과거 이천년전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하고자 하심을 기억합니다. 그분은 피와 땀을 흘리며 자신의 온 몸과 온 마음과 온 정신을 다 바쳐 헌신하시고, 마침내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피를 흘리시며 새 계약을 맺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맺으신 바로 그 새 계약의 사랑으로, 형제들의 영육적인 평화와 행복을 위해, 대신 희생할 것을 결심하고 실현하고자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오늘 우리는 주님 만찬 성목요일 성체성사를 영하며, 주 하느님께서 내 인생에 베풀어주신 온갖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나를 살려주시기 위해 희생하신 주 예수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내 가정과 이웃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기꺼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것을 다짐합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5) 이 사랑이 우리가 성체성사를 영하며, 오늘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가 말한 것처럼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방법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일러주신 말씀을 들으며 강론을 마칩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 너희가 나를 스승님’, 주님하고 부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나는 사실 그러하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 13,12-15)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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