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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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4-10-16 ㅣ No.76

좋은 말씀을 많이 들으면


좋은 말씀에 맛들여


좋은 말씀을 많이 하고


좋은 말씀을 자주하게 되면



그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 부른다.





결국 좋은 말씀을 들은 사람은 좋은 사람이되고



좋아한다는 말에 자연히 행복하게 된다.





이렇게 좋은 말씀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복음화라하고 그 좋은 말씀을 복음이라고 한다.





이렇게 복음이 삶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선교라고 한다.





맛이 잘 들려면 많이 맛을 들어보아야한다. 즉 맛을 많이 봐야 한다는 뜻이다.





"야훼께서 친히 말씀하신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린것이 아니다 마실것이 없어서 목마른것이 아니다. 나야훼의 말씀을 맛들이지 않아서 굶주린 것이며 목마른 것이다!"





우리들의 신상명세서 내지는 자기 소개서에 취미 및 특기에 우리는 과연 성서읽기 ,복음묵상이라고 써넣은 적이 생애있는지? 앞으로 그런 날이 올것인지?





어쩜 나의 이런 질문이 오히려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취미 - 성서묵상 특기-영적독서!"





내가 이렇게 나의 신상명세서에 적는다면 왠지? 또 나 이외 다른 사람도 정말?이라는 시선을 보낼것 같다.





내가 일명 사제!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생각이 들까? 나만 드는 것일까?





이런 생각이 전반이라면 우리는 적어도 성서를 맛들이는 부분에 있어서 게으름과 무관심이라는 비정상이 성서에 대한 사랑과 맛들림이라는 당연한 정상이라는 환경의 자리를 차지하는 주객전도의 현상이 있음이 분명하다.





비정상이 정상인 시대를 반영하는 현실!



모든 신자들의 집에 성서가 있어도 창세기서 부터 요한 묵시록까지 완독을 1회이상 한사람의 비율이 5%미만이 우리의 현실!



다른 종교와 사상관, 웰빙에 대한 책은 다독하면서 우리의 성서는 알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은 시급한 문제성을 갖고 있다. 신자들의 연속극은 바로 텔레비젼에서 나오는 감각위주 소비위주 물질 만능의 시대적 오염물이 여과됨 없이 비복음적인 독소가 들어있는 드라마가 아니라 하느님의 그 놀라운 사랑의 역사하심의 드라마인 이스라엘 백성의 파스카와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의 파스카인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삶을 담은 성서이야 하지 않겠는가? 성서야 말로 우리 천주교인의 연속극이다. 하지만 성서 완독을 한 사람이 드물듯이 텔레비젼의 드라마를 통독하는 이는 자연스럽게 많지만 매일 가족들이 성서를 함께 읽고 묵상하는 집은 드물다. 우리는 구교신자라고 하는 저 열심한 우리의 신앙의 모범적인 선배들을 갖고 있다. 구교신자들의 가정에서 저녁 식후 취침전까지 만과기도와 성서낭독은 생활의 뿌리이며 삶의 중심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성서낭독과 영적독서를 통해 구교신자들은 말씀과 함께 저녁을 보냈다.



이제 성서는 점점 읽는책에서 성당에 가면 그때나 읽어주는 책이 되었다. 매일미사라는 소책자의 신자들의 무분별한 사용은 성서를 전체 문맥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시야를 협소하게 좁히는 영향을 어느정도 주기도 하였다.



그날의 복음과 독서를 직접찾아 전후의 맥락과 그 다락이 갖는 위치와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알아야 올바른 하느님의 진리의 빛이 오류에 빠지지 않는다.





우리가 그리스도교인이라면 당연히 주님의 말씀에 젖어살아야 하지 않을까?





오늘 절두산 성지의 미사를 하고 박물관을 갔다. 김대건 신부님께 의정부 교구를 위해 기도하였다.





새로 성지를 공사한 후 난 처음으로 간것이다. 유리관안에는 순교 시대부터의 번역성서와 교리서 한국 실정에 맞게 한글로 번역한 규범서들이 있었다.



여름내내 신학교 도서관과 박물관 작업으로 고문서와 한역전례서 교리서, 번역예식서의 계보를 정리하는 작업을 참여하면서 그 엄청난 양에 기적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놀라웠다. 박해의 시대에서! 그 짧고 힘든 시대에! 어떻게 저런 방대한 저술과 번역이 가능했는가?



포졸들이 들이닥친 주교신부들의 집에는 책이 산더미였다. 자신의 육신은 순교로 없어지지만 그 번역성서책과 교리서만큼은 보존되길 기도하셨을 것이다. 그런 기도가 하늘에 닿았다.



조선의 천주교 심문 부처인 의금부는 조선공안부서인 형조와 포도청 그리고 의금부를 통합 하여 천주교도를 사학교도라고 칭하고 사학교도들의 물품을 징발하여 그 내용을 잘 기록하였다.



이를 '사학징의'라고 한다. 즉 사학교도들에게 징발한 물품들이라는 것이다.



이곳에는 묵주와 고상이외에 대부분 성서의 번역과 교리서 번역, 내지는 한국 신자들을 위해 만든 교리서 예식서등이 다수로 잘 기록 보관되었다.


박해가 끝나고 종교의 자유가 시행되면서 이 물품들은 교회의 품으로 돌아왔다.


주님의 섭리로 우리는 지금의 성서와 교리서를 순교자들의 땀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순교자들의 노력은 한글의 보편화에도 큰 공헌을 하게된다.




목자의 순교로 우리의 양들이 어둠을 헤메일때 우리의 양들을 이끈 목자는 바로 순교하신 목자들이 한글로 번역하신 성서와 교리서 그리고 규범서 기도서였다.



실로 이런 말씀에 대한 투자가 일찍히 없었다면 순교직후 우리 교회는 멸망하였는지 모른다.



사실 우리 민족은 천주의 존재를 종교가 아닌 학문으로서 인식하였다. 즉 중국을 통해 전해진 서학을 통해 하느님을 받아드렸고 전례의 거행 이전에 말씀에 대한 연구와 묵상생활이 시작된 역사를 갖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유일 무일한 역사를 긍지로 여기면서도 우리의 뿌리에 대한 영속적 탐구와 맥을 잇는 것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였다.





파리외방 선교 신부님 주교님들 그리고 역관이었던 신자들이 정말 순교를 각오하고 그 고초와 고생을 하면서 외국말 성서를 우리말로 번역하고 사전을 만들고 우리말 예식서를 만들고 얼마나 어려우셨을까?



유리관 안에 담겨진 찌겨지고 누렇게 바랜 그 서적들에게 정말 송구스런 마음과 위기의식을 느꼈다.





박해의 상황 그리고 조선말을 배우는 그 어려움속에서 만들어서 주신 피의 땀인 성서! 우리가 프랑스나 이태리에 태어났다면 모르겠지만 신앙선조들의 피값으로 번역되고 다듬어진 이성서를 창세기 부터 요한 묵시록까지 70년대 중반 이전에는 성서전권으로 읽지 조차 못했다.

그런데 성서 완역 30여년이 체 되지 못해서 우리의 성서를 대하는 태도는 어떠한가?

청년들에게 그리고 초등부 중고등부 아이들과 신자들에게 오늘날 우리 사목자와 수도자가 해야할 가장 시급한 일은 우리가 먼저 주님의 말씀을 맛들여서 우리가 주님의 맛을 낼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많이 들어야 한다.

개신교는 박해의 밑거름 없이 사실 우리보다 상대적으로 쉽게 이땅에 뿌리내렸다.

개신교의 성서번역은 천주교에 것에 비해 원문 번역에 있어 번역학적으로나 신학적으로 고고학적으로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하지만 그들의 열정과 투자는 우리의 것에 몇배이다.

개신교신도들과 천주교 신자들의 주일미사 풍경을 통해 알수있는 성서에 대한 사랑정도

성서를 들고 가면 개신교 성가책만 들고 가면 천주교!

지하철에서 한 젊은이가 비싸보이는 다이얼리에 무엇인가를 형광펜으로그어가며 메모하고 있었다.

귀에는 이어폰을 낀체 내리면서 슬쩍보니 가죽 다이얼리가 아니라 신약성서책이었다.


성서책에는 형광펜으로 줄을 긋고 포스트잇으로 메모한 묵상내용이 있었다.



"부러웠다."


능곡성당에 있을때 개신교 예배를 가본적이 있다. 제단앞에 천주교에서 주교좌와 같은 장식을 한 의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의자에는 낡은 성서책이 몇권있었다.

정말 닳고 닳아 너덜한 성서책이었다.

"저자리는 누구자리지요?" "네! 목사님 자리지요!"



"그럼 저책도?" "네 처음 오시나요! 저 책은 목사님이 저희를 가르치실때 평생 쓰시던 성서책입니다. 그리고 가장 낡은 책은 초대목사님이 돌아가실때까지 쓰시던 성서책이고요! 저희는 저 낡은 성서를 보면서 돌아가신 목사님을 떠올립니다."


집에와서 나의 성서책을 살펴보았다. 너무나 깨끗했다. 난 무엇으로 나의 양들을 이제껏 가르쳤나?


이시대는 물질적 풍요속에 정신적 빈곤을 겪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이유를 모른다.


냉담률의 증가!



사실 그간 우리 한국의 천주교회는 외적인 자극을 통한 내적 쇄신과 자각을 시도하면서 어느정도 양적 성장을 거두었다.



80년대 민주화 운동! 103위 시성과 교황님이 주례한 성체대회를 통한 대규모 행사!



사실 이런 행사가 복음의 맛이 든 성서묵상과 생활화가 뿌리내린 시점 에서 일어난 잔치상이기보다.


복음의 맛을 들게하는 이유식으로 우리는 겸손하게 내실화시켰어야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성어린 행사와 열매들이 복음의 맛을 내는 유산균으로 작용하기보다 겉저리의 양념처럼 되었다.


제2차공의회의 전례정신중 중요한 것이 진리의말씀으로 세상을 비추는 것이다.


교회의 모든 전례와 성사는 하느님 말씀을 통해 해설되고 전달되고 의미지어진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적 지혜와 시대의 사조에 휩쓸리게 된다.


전례를 공부하는 사람으로 요즈음 전례는 지루하고 무엇인가 현대적인 변화와 문화적 적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듣게 된다. 지난 서울교구 시노드에서도 이런 문제를 직접 참여하여 다룬적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해결의 키를 새로운 변화보다는 말씀에 대한 우리의 노력을 더 경주하는데 역점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감각적 이며 문화적인 차원의 전례쇄신이 반영되어야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가지치기와 색깔을 입히는 것이다.


뿌리는 바로 성서를 맛들이는데 실패했다는 점에 있다.


장맛을 내려면 유산균이 필요하다. 유산균은 꾸준한 온도와 돌봄이 필요하고 생명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성서도 마찬가지이다. 전례거행의 맛은 바로 꾸준한 복음묵상과 성서연구의 보편적인 생활화가 밑바탕되어야된다. 그렇지 않다면 시대적인 유행과 감각이라는 조미료로 급하게 만든 겉저리나 페스트푸드의 맛뿐이 낼 수 없다.



전례는 말씀에 맛드린 공동체인 교회의 환호이며 찬미이기 때문이다. 맛을 모르는 사람이 색깔이 아름답고 냄새가 향기롭다고 해서 그음식을 먹는다면 그 음식의 인기는 조만간 없어질것이다. 그것은 음식이 아니라 음식을 선전하는 조형물이며 쇼인것이다.



이제 사목의 형태와 모든 교회활동의 중심에는 말씀이 있어야한다.



고백성사때 인간적인 말이 아닌 성서의 말씀 주님의 말씀을 통한 훈계가 가장 힘을 주는 것이다.



여름에 캠프 백번잘하는 것보다 평소 학생들 교리시간에 들어가 함께 복음을 소리내어 읽고 함께 연구하는 시간이 더 아이들의 뇌리에 오래 남을 것이다.


술사목이나 야유회사목, 일회적 캠프사목을 통한 일시적 반짝사목이 아니라  꾸준한 하느님의 된장맛 바로 복음의 맛을 느끼고자 하는 토착화된 영성이라는 된장을 익힐때이다.


말씀은 사목의 가장 좋은 도구이며 목적이라고 오늘의 디모테오서는 말하고 있다.


40%나 되는 대도시 교구들의 냉담률의 증가를 나는 성서를 읽고 묵상하지 않는 우리의 풍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제들과 수도자들과 신자들 어느 그룹을 막론하고 구성원의 20%만 우리의 신상명세서에 취미가 성서읽기라고 적는 시대가 온다면 우리의 냉담률은 10%미만으로 떨어질것이라 믿는다.


구구단을 외우지 못하면 이시대에서 생활할 수 없듯이 성서를 알지 못하면 천주교에서 생활할수 없는 불편한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 아직은 성서를 몰라도 편히 활동하고 기도하고 단체장하고 봉사한다. 이 활동과 기도가 온전할리가 만무하다.


교회가 인간주의 즉 휴머니즘의 장이 되어간다. 교회의 활동에는 시작과 끝까지 말씀을 통해 비추어진 이성이 존재해야함을 교황님은 늘 강조하시며 교회안에서의 비그리스도교적 봉사와 영성에 경고하신바 있다.


"그대도 기억하다시피 그대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잘 익혀 왔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예수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 지혜를 그대에게 줄수 있는 것입니다.성경은 전부가 하느님의 계시로 이루어진 책으로서 진리를 가르치고 잘못을 책망하고 허물을 고쳐주고 올바르게 사는 훈련을 시키는데 유익한 책입니다.이책으로 하느님의 일꾼은 모든 선한 일을 할수 있는 자격과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 나는 하느님 앞에서 그리고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대에게 엄숙히 명령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나타나실 것과 군림하실 것을 믿고 그대에게 당부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전하고 끝까지 참고 가르치면서 사람들을 책망하고 훈계하고 격려하시오!" 디모테오3-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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