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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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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진석 [ryu4337] 쪽지 캡슐

2014-06-23 ㅣ No.11271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6.21(토) 오후 4시경

 

요즘은 월드컵 보는 재미에 폭빠졌다.

약체 코스타리카가 이탈리아를 저돌적으로 몰아부친 끝에 1대0으로

승리,16강 진출을 확정시킨 순간은 감동을 넘어 전율마저 느끼게했다.

"한국도 쟤들처럼 저돌적으로 덤비면 좋은 결과가 나올수 있을텐데...."

스포츠TV에서 나오는 재방송을 보면서 그감동을 만끽하며 캔맥주를

들이키려는데 핸드폰벨이 시끄럽게 울려댔다.

"유호??"

"니는 임마!! 요즘 모임에도 안나오고...잠수탔냐??"

"와신에 상담하고 있어!사장님께서는 잘지내시나??"

"사장은 무슨 사장!!"

고교친구인 유호는 용인에서 자그마한 주물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동창모임등으로 친해진 20년지기다.

"그럭저럭...중소기업들 요즘 난리야??그나저나 아들은?"

"군에있지?이제 10개월된 일병이야!!니아들 우찬이도 군에 있겠다??"

"엉!철책선에 있지!내일 모레 휴가 나와!!"

"사장이면 돈좀 써서 좋은데로 빼지!철책선이 머냐?

잘못하면 총맞어 죽는 곳인데..."

"그렇쟎아도 그 생각도 했는데 아들이 고생하겠다는데..

말릴수가 있어야지.."

"머?그 찌질이가 그런 대견한 생각을 했다구!!마이컸네!!"

"찌질이라니..무슨 소리를 그렇게 해??"

"미안!농담!!"

전화를 끊고 TV로 시선을 옮기려는데 와이프가 볼멘소리로 핀잔을 

주었다.

"말이 씨가 된다구!! 친구 아들한테 총맞어 죽으면 ...

그런 소리를 왜해요??"

"그런가??"

 

 

2014.6.21(토) 오후 11시 30분경

 

기말시험이 끝난 딸내미는 소파위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고 와이프는

막장드라마에 흠뻑 젖어있고  나는 식탁에 앉아 짠지를 안주로 소주 한잔

기울이는데 딸내미가 바퀴벌레를 발견한듯 괴성을 질러댔다.

"이거 오빠가 근무하는 부대 아냐??"

"먼데??"

"22사단 GOP에서 총기사고가 나서 5명 죽고 5명 부상이라는데요??"

"뭐??"

"하사1명,상병2명,일병2명이 죽었다는데요!!"

와이프는 소스라치게 놀라  딸내미의 핸드폰을 뺏듯이 채가며 인터넷으로

이곳저곳을 조회했고 나는 소주잔을 손에 든채 리모콘으로 채널을 돌렸다.

"휴!다행이다!!22사단은 맞는데 GOP는 철책선이라 아들부대는 아녀!!"

"그래요!!그래도 걱정이다!무장탈영했으니 아들도 잡으러 출동할수 있쟎아요??"

"그건 그렇지!그놈 머든지 어설퍼서 잘할수 있을까 모르겠네??"

심각한 표정으로 뉴스를 시청하며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는데 와이프의

핸드폰 벨이 시끄럽게 울려댔다.

"아들??"

"걱정할까봐 전화했어요!!출동안하고 영내에서 대기근무하고 있어요!!

비상이라 이만 끊을께요!!"

"아들!!아들!!"

와이프는 전화를 끊은후에도 걱정스러운듯 안절부절했고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TV를 응시하는데 진돗개 하나발령이라는 자막이 우측에서

좌측으로 천천히 흘러 사라졌다.

"진돗개 하나면 잠도 제대로 못잘텐데...고생이 많겠다!!"

 

 

2014.6.23(월) 오전 10시경

 

새벽에 있었던 한국과 알제리의 축구경기로 생긴 울화가 뇌를 넘어서

온몸으로 퍼졌다.

"손홍민말고는 뛰는 시키가 없어!!주영.청용,석영,성룡 이시키들은

머하는 시키들이야!!"

우리나라의 경기력은 월드컵에 맞는 수준이 아니라 킹즈컵에 맞는 수준이다.

'이럴거면 머하러 본선진출했어!!우즈베키스탄에 양보하지!!"

수시간째 씩씩거리자 와이프가 진정하라며 냉커피를 건넸다.

"그나저나 탈영병은 잡혔어여??"

"아버지가 투항을 설득하고 있데!!"

"그 아버지도 심정이 말이 아니겠어요!!"

"말이 아니겠지..그보다는 사망한 아들들의 부모님이 더 말이 아니겠지?"

그녀와 시원한 냉커피를 마시며 분을 식히려는데 핸드폰에서 문자왔어요라는

친절한 아가씨의 음성이 들려왔고 와이프는 확인하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유호씨 아들이!!아들이!!"

"우찬이가 왜??"

 

2014년 6월 23일(월) 오후 2시경

 

분당 국군수도병원앞의 조문객석에 앉아 멍때리고 있는데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조문을 마치고 벤비슷한 검은 차량에 탑승하려는데 주위에 수십명의 장교들과

경호원들이 난리에 법석을 떨었다.

"높은 사람이니 저렇게 해야겠지!!연예인이냐?? 벤타고 다니게!!쓰파!!"

친구는 가슴이 찢어져 정신줄마저 놓으려하는데 저것들은 높은 사람 챙기려

저리 호들갑떨고 있으니...모든 것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배하나 피우자며 유호를 데리고 휴게소로 향하니 왕방울만한 눈가에 글렁이던

눈물은 핏기없는 양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임마!! 너라도 정신줄 놓지말야야지!!"

"오늘부터 휴가인데..같이 목욕탕간후 맥주한잔하려 했는데..."

"우리아들도 우찬이네 옆에서 근무하고 있어!!"

"그래!!네가 부럽다!!"

"아들 시신을 봤냐??"

"어제 새벽에 시신수습했는데 과다출혈로 핏기가 하나 없더라구"

"저런!!"

"아무리 현장보존때문 이라지만 시신을 몇시간째 그대로 놔둔것에

 분통이 터지더라구!!"

"맘이 찢어지겠다!!"

"토요일밤 11시에 뉴스를 보고 불안해하고 있는데 11시반에 사단

인사참모부에서 전화가 오더라구!!"

"느낌이 영 안좋았겠네!!"

"그렇지!제발 병신이 되도 좋으니 무사하기만 해라 빌었는데.."

"저런"

"아 글쎄 고놈이 일병,이병 졸병들 먼저 피신시키느라.."

"우째 이런일이.."

무슨 위로의 말이 필요 하겠는가??할말을 잃어버린것도 있지만

엊그저께 농담한것이 너무도 죄스러워 고개만 떨군채 바닥만 응시했고

유호는 하늘을 보며 길고긴 한숨을 내쉬며 눈물흘렸다.

"그나저나 난 어떻게 사냐??도저히 못살겠어!!"

"살아야지!!무조건..우찬이 묘의 풀은 네가 뜯어줘야 할것 아냐??"

"그래야 되는데.."

유호가 합동분향소로 향한후 야외 조문석에 앉아 앞을 응시하며 

상념에 젖어 있는데 한줄기씩 내리던 가랑비가 갑자기 폭우로 변해 

아스팔트 바닥을 뚫어낼듯 세차게 때렸다.

"저런!! 우찬이를 비롯한 젊은 영혼들이 얼마나 억울했으면...

저리 굵은 눈물을 쏟아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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