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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장 4. 일용한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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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4-10-07 ㅣ No.67

 

2004년 6월호


교본 해설 42


제19장 회합과 단원


일용(日用)할 양식


중국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한 젊은 선원이 정박한 배 위에서 여유롭게 낮잠을 자고 있었다.

지나가던 부자가 한심하다는 듯이 그를 깨우면서 말을 걸었다.

ꡒ자네는 지금 뭐하고 있나?ꡓ

선원이 대답했다.

ꡒ하루의 일을 열심히 하여 일찍 끝내고 여유가 있어서 쉬고 있습니다.ꡓ

ꡒ자네는 내가 누구인지 아는가?ꡓ

ꡒ그럼요. 우리 동네의 자린고비 부자어른신이지요.ꡓ

ꡒ맞아. 자네는 나처럼 부자가 되고 싶지 않은가? 내가 부자가 되는 방법을 일러주지.ꡓ

ꡒ부자가 되면 뭐가 좋은데요?ꡓ

ꡒ만약에 자네가 이렇게 한가히 낮잠을 자지 않고 고생을 좀더 하여 밤까지 열심히 일하면 돈을 많이 모아 부자가 될 수 있어. 그러면 그 돈으로 사람들을 사서 그 사람들에게 일시키고 자네는 편히 쉴 수 있지!ꡓ

그 부자는 평생 고생하여 많은 주름이 진 얼굴에 미소를 띠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젊은 선원은 웃으며 말했다.

ꡒ보십시오. 전 지금도 잘 쉬고 있습니다. 전 사람을 부리지 않아도 이렇게 잘 쉽니다. 먼 미래가 아닌 지금! 영감님, 절 깨우지 마시고 영감님이 좀 쉬십시오. 피곤해 보이십니다. 안색이 안 좋으신데….ꡓ

다음날 그 부자는 생을 마쳤다.

언젠가는 푹 쉬고 여유롭게 만들어 주리라 믿었던 돈을 남기고 그는 무덤에서 영원히 쉬게 되었다.

주님의 기도를 보면 ꡐ일용(日用)할 양식을 주시고ꡑ라고 기도한다. ꡐ일용(日用)할 양식ꡑ- 하루에 쓸 양식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내 자신부터 주님의 기도를 바치거나 묵주기도를 하면서 나의 머릿속으로 일용한 양식보다는 한평생 쓸 풍족할 영적인 물질적인 양식을 오늘 미리 좀 당겨 주셔서 쌓아놓고 살게 되길 원한다. 그렇게 된다면 참으로 여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다. 위의 부자 영감의 생각처럼 말이다.

어느 부자가 곡식 창고를 만들고 가득히 곡식을 쌓아놓고 흐뭇해하지만 바로 그날 밤이 자신의 초상날인 줄 모른다는 성서의 말씀(루가 12,16~21)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또한 ꡐ그날의 걱정은 그날로 족하다ꡑ는 예수님의 말씀도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통해 예수께서 제시하는 삶은 바로 위의 예화에서 여유있는 선원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에 5세에서 8세의 어린이들에게 스트레스 때문에 탈모증이 심하게 증가한다고 한다.

머리카락이 한 옴쿰씩 군데군데 빠져있는 어린아이들의 머리가 오늘날 일용한 양식에 만족하지 못한 우리의 성급한 마음의 결과이다.

한창 신나게 뛰놀며 자연과 벗삼고 친구들과 함께 여유로움을 만끽해야 할 그들이 영어 조기교육이니 영재교육이니 하며 하루에 몇 개씩이나 학원을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ꡒ빨리빨리ꡓ의 부작용도 모자라서 우리는 지금 ꡒ미리미리ꡓ라는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

비단 어린아이들의 경우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들의 영혼 안에 깊게 자리잡았을지도 모르는 이러한 성급함과 욕심은 경계해야 할 제11계명이 아닌가 생각된다.

빵도 아침에 나오는 신선한 것이 더 좋다는 것을 알면서 왜 우리의 휴식과 여유는 지금의 신선한 것을 누리지 않고 그것들을 희생하면서 미래의 여유를 위해 욕심이라는 무리수를 던지는 것일까?

어렸을 적에는 푸른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천국이며 천사를 생각하며 구름에 이름도 지어보고 한참씩이나 시간을 보낸 적도 많았다.

얼마 전 유학가는 동창신부가 남 긴 글에서 ꡐ우연히 성당 벤치에 누워 보니 하늘이 하도 파랗고 넓어서 구름을 찾아 여행하다가 나도 모르게 수단을 입은 채 잠이 들었다ꡑ는 이야기를 읽었다.

나 역시 요즈음 푸르른 하늘을 애써 바라보며 여유라는 글씨를 마음으로나마 하늘을 칠판삼아 구름으로 써본다.

풍랑 속에서도 그물을 베개삼아 주무시던 예수님의 그 여유와 믿음을 따라 망중한(忙中閑)이라는 작은 피정을 내 생활 안에서 실천해 보아야겠다.

남을 부리지 않아도 쉴 수 있는 저 선원처럼 하루를 살고 하루를 쉬는 사람이 되자! 우리는 레지오 마리애 단원으로 살아가면서 세속적인 지나친 욕심과 영적인 교만이 나의 영혼을 지치게 하지는 않는지 반성해보아야 한다.

라틴어 속담에 ꡐ천천히 빨리!ꡑ라는 말이 있다.

우리 레지오 마리애 단원에게 일용할 양식은 무엇인가? 바로 까떼나 레지오니스와 묵주기도가 그것이다.

매일매일 기도하는 사람은 영원을 사는 사람이며 하늘에 보화를 쌓아가는 사람이다.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하면서까지 ꡒ아! 바쁘다. 피곤하다ꡓ 하며 핑계를 대거나 지나친 욕심을 부린다면 우리는 봉사자가 아닌 사업가인 것이다. 영적인 것을 물질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사업가가 된다.

따라서 회합의 분위기는 여유와 따뜻함이 느껴지는 겨울철의 벽난로와 같아야 하며 우리는 매일매일의 묵주기도와 까떼나를 통해, 그리고 봉사를 통해 매일의 양식인 평화를 누려야 한다.

어떤 사람은 너무 바쁘니까 영적인 안식을 위해서, 그리고 바쁜 생활에서도 기쁨과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 어머니의 품에 왔다며 입단 소감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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