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성당 게시판

어느 할머니의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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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태 [shouse] 쪽지 캡슐

2001-08-09 ㅣ No.4884

이제 곧 여든의 연세에 접어드는 할머니가 한 분 계십니다.

몇 년전 교통사고를 심하게 당하셔서 비록 한 쪽 다리가 불편하기는 해도 새벽이면 집 근처 산에도 올라가시고 텃밭도 가꾸면서 할아버지와 두 분이서 정답게 살아가십니다.

할머니는 무척 구두쇠이지만 아직도 예쁜 식기를 보면 사지않고는 못 배기고, 집안 구석구석을 예쁘게 단장하는 소녀같은 면면을 가지고 계시는 분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뭐든 긍정적으로 열심히 해치우는 할머니는 젊어서부터 절에도 무척 열심히 다니셨습니다. 자식들이 시험볼 때보면 몇날 며칠씩 기도를 드리고, 초팔일이면 연등에 자식들과 조상들의 평안을 빌며 연등에 불을 밝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의 종교생활에 갈등의 요소가 생겨난 것은 막내아들 때문이었습니다.

아들이 결혼하겠다는 여자가 ’천주쟁이’ 였거든요. 할머니는 아들에게 불가에서 가장 의미있는 날 중 하루에 태어난 너가 그럴 수 있느냐며 만류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렇게 결혼한 아들은 야속하게도 며느리를 따라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고 더욱 얄미운 것은 며느리보다 더 성당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럴때면 내심 못마땅해도 겉으로는 그래 뭐를 믿더라도 제대로 열심히 해야지 라고 하시며 태연한 척 하셨습니다.

 

할머니는 애써 외면하고 싶었는데, 사태는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상한 며느리가 하나 들어오더니, 믿음과는 전혀 거리가 멀 것같던 딸 들까지 하나, 둘 카톨릭에 귀의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정말 혼돈스러웠던 모양입니다. 할머니는 자식의 말이라면,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든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자식들이 천주교를 믿는다면 당신도 당연히 천주교를 믿어야겠는데, 평생 생활의 한 축이 되었던 종교를 버리고 개종을 한다는 것이 왠지 선뜻 내키지는 않았던게지요. 아들도 어머니의 그런 뜻을 짐작하고 있었기에 잠자코 기다리고만 있었습니다.

 

그저께 할머니가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어 이제 당신이 성당에 나가기로 결심했다고 전해왔습니다. 2년동안 고민하다 내린 결정이며, 가장 먼저 며느리에게 알린다고...

 

이 분이 저의 어머니입니다.

주님, 당신의 함께하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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