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마리에-old

19장 2.결석과 합동 훈화,선서 그리고 유고와 무고!

인쇄

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4-10-07 ㅣ No.65

 

2004년 4월호


교본 해설 40


제19장 회합과 단원


결석․합동 훈화 선서


유고와 무고


회합의 실질적인 운영에 있어서 출석과 결석의 예를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쁘레시디움 주회합에 참석하여 출석부에 등재되면 출석이다. 다음 두 경우에는 출석으로 인정한다.


1) 평의회가 주관하는 레지오 마리애의 제반 교육이나 피정 참석으로 인한 주회합의 불참

2) 평의회의 지명에 의한 다른 쁘레시디움이나 다른 평의회 방문으로 인한 주회합의 불참

위의 경우 이외에 쁘레시디움의 주회합에 참석하지 못한 때에는 결석이다.

다음과 같은 경우에 쁘레시디움 단장이 인정하면 유고로 처리되며, 서기는 그 사유를 회의록에 기재한다. 유고 결석의 예는 다음과 같다.


1) 거동이 어려운 일시적 또는 1개월 미만의 치료를 요하는 병고로 인한 결석

2) 1개월 이내의 해외 또는 다른 지방 출장이나 여행으로 인한 결석

3) 장지 수행으로 인한 결석

4) 가족, 친척이 사망했거나 본인의 약혼 및 결혼으로 인한 결석

5) 위급한 환자나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도와줌으로 인한 결석

6) 부득이한 직장 사정에 의한 결석

유고 결석 이외의 결석은 무고 결석으로 처리한다. 위에 언급되지 않은 여러 가지 유사한 다른 정황에 대한 판단은 쁘레시디움 단장의 고유 권한에 속한다. 따라서 단장은 이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앞서, 레지오 마리애의 제반제도(규율과 규칙)와 일반 사회 규범(상식) 사이에서 올바른 균형을 취하는 분별력을 지녀야 한다. 단순히 단원이 결석에 관련하여 주회합 전에 단장에게 연락을 취하였다고 무조건 유고가 되는 것이 아니다. 자칫 빈번한 결석의 이유가 자신의 게으름에서 온다면 그것은 그 단원과 쁘레시디움의 정신에 나쁜 영향을 준다. 따라서 단장은 단원의 결석시 사전 보고 의무와 유고 결석의 사례들을 단원들에게 잘 교육해야 할 의무가 있다.

다음과 같은 경우에 장기 유고를 허용하고, 해당자는 출석률 계산에서 제외하며 출석부에 ꡐ장ꡑ으로 기재한다.


1) 1개월 이상의 치료를 요하는 장기적인 병고일 경우. 본인의 퇴단 의사가 없는 한 장기 유고의 기간은 제한이 없다.

2) 1개월 이상의 출장, 여행 등으로 장기 유고일 경우. 최장 3개월까지만 허용되며, 3개월이 경과하면 쁘레시디움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퇴단 처리를 해야 한다.

직장 근무시간이 주기적으로 바뀌는 교대근무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해당 단원은 소속 쁘레시디움 이외에 본인의 시간에 맞는 또 하나의 쁘레시디움을 정한다.

2) 두 쁘레시디움의 단장에게 허락을 얻는다.

3) 활동을 배당받고 보고하는 일은 소속 쁘레시디움에서만 하며, 출석만 하는 쁘레시디움에서는 배당도 보고도 없이 다만 주회합 참석의 의무만을 이행한다.

4) 단원은 두 쁘레시디움의 주회합에서 알게 된 일에 대하여 반드시 비밀을 지켜야 한다.

5) 단원은 출석만 하는 쁘레시디움의 단장의 서명을 받아 이를 소속 쁘레시디움에 제출함으로써 주회합 출석을 인정받는다. 다만, 소속 쁘레시디움은 단원이 참석하지 못한 주회합에 대해서는 일단 결석으로 처리하며, 다른 쁘레시디움 주회합 참석 확인서를 접수하면 회의록에 그 사유를 기재하고 출석부에 출석으로 정리한다.

타당한 이유없이 습관적으로 결석이 잦은 단원이나 주간 활동 의무를 잘 채우지 못하는 단원은 천주교 신자로서 자신과 레지오 마리애의 올바른 성장을 위하여 협조단원으로 봉사함이 옳다. 쁘레시디움 주회합에서는 단원들에게 출석과 시간엄수에 대한 의무를 강조하기 위하여 회합의 전반에 호명한다. 반면 평의회 월례회의 때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회합의 후반에 호명한다.


1) 거리가 멀고 교통이 불편한 곳에서 출석하는 평의원들의 사정을 고려하여서

2) 회의 시간에 제한이 없으므로, 조퇴를 막으려는 목적에서


합동 훈화․선서에 대하여


합동 훈화나 합동 선서에 대한 중단 요청이 꼰칠리움으로부터 수차례 계속되었다. 다음은 이에 대한 꼰칠리움의 답장이다.

ꡒ지도신부님께서 제기하셨던 문제점들에 대하여 답을 드리고자 합니다. 신부님은 영적지도자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하여 매우 명료하게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즉 급속도로 증가되는 쁘레시디움에 비하여 너무나 부족한 수의 사제들로서는 각 쁘레시디움의 주회합에 일일이 다 참석할 수가 없으므로 합동 주회합, 즉 합동으로 레지오 마리애 기도문을 바치고, 합동 훈화를 행하며, 폐회기도 후의 강복을 합동으로 하자는 제안을 하신 바 있습니다. 꼰칠리움으로서는 그 수많은 쁘레시디움에 지도신부들이 일일이 다 참석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에 대하여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시하신 합동 주회합만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의견에는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비단 한국 레지오 마리애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다른 나라에도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같은 문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 지도자가 참석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쁘레시디움의 주회합이 영성적으로 위험에 직면하지는 않습니다. 영적 지도자는 단원들을 영적으로 이끄는 지름길과 같습니다. 그러나 지도신부가 불참했다 하더라도 레지오 마리애의 정신, 성모님의 정신은 레지오 마리애의 조직을 통하여 변함없이 계속되도록 모든 것을 보장해 줍니다.


… 중략 …


신부님께서는 한국 신자들이 사제들에게 가지는 사랑과 존경이 매우 깊음을 강조하셨습니다. 꼰칠리움으로서는 이 점을 대단히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신부님 말씀에 ꡒ10개의 쁘레시디움이 한지붕 밑에서 동시에 주회합을 하고 있다면 영적 지도자는 각 쁘레시디움 주회합에 10주에 한 번 참석할 수 밖에 없다.ꡓ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점을 깊이 논의한 결과, 꼰칠리움은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즉 레지오 마리애가 금하는 합동 주회합을 통하여 영적 지도자를 단체로 접촉하는 것보다는 10주에 단 한 번이라도 돌아가며 영적 지도자를 각 쁘레시디움의 주회합에 모시어 주회합의 시작부터 마침까지 좀더 실질적이며 긴밀한 접촉을 함이 더 좋은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 하략 … (1990. 8. 28일자 꼰칠리움 서신)


요즈음 소공동체 모임과 정신이 확산되고 발전하고 있다. 소공동체의 근본정신은 바로 복음정신을 작은 공동체 안에서 치밀한 형제적 유대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리스도의 신비체를 이루는 것이다. 교본의 근본 이상 역시 개인의 성화와 봉사를 통한 평신도 사도직으로서의 소공동체 활동을 지향한다. 따라서 쁘레시디움의 주회합은 초대교회의 일치된 작은 공동체인 꼰뮤니오(Conmunio)를 반영한다. 교회가 성장하여 사제와 신자의 비율이 급격히 차이가 나면서 신자들 한명 한명의 익명성이 확대되어 나감에 따라 냉담률이 증가하였다. 또한 사제는 신자 모두를 각각 만날 수 없으므로 점점 피라미드식 구조가 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초대교회의 정신과 조직의 형태인 소공동체의 긴밀성과 유대감을 선택한 것이다.

소공동체란 반드시 구역이나 반모임만을 칭하는 것이 아니며 레지오 마리애 역시 소공동체이다. 레지오 마리애는 기도와 봉사가 성모신심과 어우러져 발전한 소공동체이다. 반모임만이 소공동체라는 생각은 편견이며 소공동체의 이상적이며 넓은 의미를 좁게 해석하는 것이다. 소공동체는 지역을 잘게 나누는 행정주의에 그치지 않는, 더 풍성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레지오 마리애의 회합은 주례자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성사집행이나 본당공동체의 전례가 아니라 평신도 사도직의 수행이다. 훈화의 일차적 수행자는 지도신부지만 사제만 훈화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교회가 소공동체를 지향하면서 지도신부가 레지오 마리애의 합동 훈화나 회합을 수행하는 모습은 재고되어야 한다. 꼰칠리움의 서신에서처럼 매번 여러 개의 쁘레시디움을 합쳐서 많은 단원을 향해 훈화하고 주회합을 하는 것보다 지도신부님이 쁘레시디움을 한 개씩 돌아가면서 적당한 수의 단원과 만나시고 그 이름과 얼굴도 한 번 불러주시며 가족같은 소규모 분위기에서 한 번씩 훈화를 하신다면 그것이 더 소공동체적이고 단원들에게 좋은 호응을 얻을 것이다.

어머니가 출가한 자식들을 늘 한곳에 모아 좋은 만남을 갖고 말씀을 하시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가난한 자식, 부자인 자식, 자식들의 집을 방문하여 어떻게 사나, 손자 손녀들은 잘 크나 하며 각 집을 돌며 며칠씩 지내다 가시는 것도 의미있다고 본다. 이러한 경우가 다른 나라 레지오 마리애에서 이미 제기되었던 문제이기도 하다.



1,058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