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순이야 놀자!-기도를 취미로 만드는 방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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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4-10-15 ㅣ No.68

 

올 부활을 전환점으로 나는 무엇을 기도할 것인가를 기도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전에는 지향을 두고 그냥 무작정기도했는데 한참 생각해 보니 내가 세운 지향이라는 것이 주님이 미리 들어주실지 어떨지 알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만약 기도지향 자체가  내가 생각하기에 하느님을 위해서 한다지만 하느님이 싫어한다면 이것 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이지 않은가?

기도의 시간도 적지 않은 존재적 열량인데 ...... 재미가 있고 보람이 있어야 하지 않은가?

그간의 기도는 재미가 없었다. 재미가 없으니 지겹고 분심들고 .......

사실 요즈음사제들의 신상명세서에 취미 및 특기란에 나는 취미-성무일도, 성체조배 특기-묵주기도,성시간이라고 쓴 사제를 본적이 없다.

다들 겸손해서 그러신것은 아니지만 우리중 그래도 그렇게 대답하는 사제들이 40%는 넘어야 되지 않을까?

오래전 예술인들과 한자리를 한적이 있는데 유명 프로 운동선수들도 왔다.

저녁을 먹은자리에서 그들은 평균 그들의 분야에서 9시간이상의 시간을 연마하는 프로정신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분야에 자타가 공인하는 재능과 능력을 갖었고 그것을 긍지며 기쁨으로 삶고 있었고 그것을 생계의 수단으로 삼고 있었다.

바이올린리스트의 어깨와 목은 엄청난 굳은살, 그리고 손가락 역시 굳은살이 있었다.

바이올린 리스트에게 바이올린 소리는 바로 천국의 소리이며 자아실현의 순간이다.

야구선수에게 홈런을 친 순간의 소리는 바로 천국이다.

그런데 나는 기도분야에 프로일까? 이것이 기쁨이며 삶일까?

하루에 8시간이상을 해도 내일 또할수 있나?

나에게 바이올린 리스트에 해당하는 굳은살은 어디인가?

이런 질문들은 나를 침울하게 그간하였다.

그래서 나는 무엇인가 나의 기도에 대한 접근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기도의 지향에 대한 인식에 전환부터 시작하였다.

기도가 기쁨과 긍지 행복의 시간이 될수 있다면 이것이 취미며 습관이 되고 그러면 자연 특기가 될것 같았다.

주님의 은총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분이 원하는 것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 이둘이 만나면 너무나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성향과 그분의 성향의 동감!

이것이 기도지향이라면 기도지향자체가 이미 선취된 영광이 될것이다,

즉 그분이 바라는 것을 바라는 나! 

그래서 나는 기도지향을 이루기 위한 양의 투자에서 탈피하고 하느님께 무엇을 원하고 말해야 그분이 좋아하시고 나였지 좋아할까 하는 기도의 효율적 주식회사라는 창업전 시장 조사를 시도해 보았다.

그런데 이런 노력을 하면서 즐거움이 솔솔 느껴졌다.

일단 솔직히 내가 좋아하는 것은 너무나 뻔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세상 누구보다도 잘알았다. 왜?

내가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없기에 너무나 쉬웠고 그런것들을 생각하는 것은 행복이었다.

그래서 일단 전보다 기도시간이 즐거워졌다.

전에는 내가 성인사제 혹은 일명 덕으로 나가기 위한 길 즉 나자신을 위한 길 ,빛의 길을 생각하고 또 나를 위한 삶을 못산 게으른 나를 자책했다.

즉 그분을 위한 삶 그분을 위한 기도 그분을 위한 봉사를 못한 나를 발견하게 된다.

두번째로 하느님이 좋아하시는 것은 좋은 것을 우리에게 나쁜것 고통어린 것은 당신이 모두 갖기를 원하시는 사랑이었다. 즉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얻은것이 남에 대한 판단을 주님께 봉헌하는 것이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희망이 인내를 낳는것이지 십자가가 인내를 낳는다고 성서에 쓰여있지 않다.

누구를 판단하고 나자신까지 판단하고 미워하게 될 상황에서 우리는 그 판단과 심판과 열등감을 그분께 드려야 한다.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 드리는 것이다. 왜냐? 판단이라는 것은 힘든것이니까?

기도를 하면 할수록 우리가 느끼게 되는 것은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런 노력은 적어도 나를 "기도시간은 지겨운 시간"이라는 말못할 나의 미약함의 열등감을 대폭감소시켜주었다.

즉 나는 대부분의 기도시간을 지향을 찾는데 주력하였다. 그랬더니 기도시간이 지겨워지지 않았다.

이런 기도에 대한 태도가 바뀐데는 아래의 문장이 영향을 주었다.

"하느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이 좋아하는 것을 하라!"는 어느 신부님의 강의가 마음에 와닿으면서

오늘 독서의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참으로 금과옥조의 말씀이 된다.

"나는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스러운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영적인 지혜와 통찰력을 내려주셔서 하느님을 참으로 알게 하시고 또 여러분의 마음의 눈을 밝혀주셔서 하느님의 백성이 된 여러분이 무엇을 바랄것인지 또 성도들과 함께 여러분이 물려받을 축복이 얼마나 놀랍고 큰것인지를 알게하여 주기시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믿는 사람들 속에서 강한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여러분에게 알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느님께서 잘 들어주실 우리의 기도지향이란 하느님이 좋아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도지향이 결코 하느님께 부담이 된다면 그것은 사랑하는 두 존재간의 대화는 아닌것 같다.

인지상정인 마음을 갖으신 하느님이라면 하느님을 우리가 헤아리는 것이 하느님이 우리를 헤아려주시는 비법이 될것이다.

기도지향을 찾는데 있어서 하느님을 위하는 삶의 노력보다는 하느님이 좋아하는 것을 찾는 마음을 갖는 노력이 하느님과 자기 자신과의 관계성을 개선시키는데 효과적이다.

내마음도 그렇다. 몇몇 지인들이나 친구들이 나를 위해서 무엇을 선물하거나 요리하거나 만들지만  내마음에 드는 것은 바로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입장을 우리가 헤아려 보자!

우리입장에서야 그분을 위해서 이러저러한 일을 한다지만 그분께서 그것을 꼭 좋아한다는 보장은 없다.

기도도 마찬가지이다.

이제껏 나는 기도를 할것인가 말것일가? 혹은 어느 형태의 기도를 할것인가?를 고민하였지

또 기도지향을 일단 정해놓고 줄기차게 했던 기억이 있지 그것이 내가 바랄 하느님의 뜻에 맞는지에 대한 묵상시간은 별로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 문화가 있었다.

"순이야 놀자! ...........순이야 놀자!" (리듬을 타면서 다들 아시죠! 누구야 놀자!) 그 친구 순이가 응답할때까지 줄기차게 불렸다.

그럼 친구 엄마가 이런 말을 하신다.

"윤석아 순이 지금 감기 걸려서 아프단다. 너도 감기 걸리지 않게 어려 집에가서 손씻고 이닦고 일찍자!"

"네 아줌마!"

혹은 반대로 "그래 순이 친구 윤석이 왔니! 아니고 귀여워라 순이 방에 있다. 아줌마가 간식준비할께 잘 놀아라 사이좋게!"

"네, 아줌마!"

이렇게 상황이 순이와 놀게 되었던 그렇지 않던 아이의 대답 즉 나의 대답은 같았다.

"네 아줌마!"

당연하다. "안돼요 아줌마"라고 말할수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친구야 놀자!는 기도하는 우리의 모습의 모범이라고 볼수 있다.

친구야 놀자라는 초대를 통해 친구의 상태와 바람을 알수 있다.

난 "친구야! 놀자!라는 노랫가락풍의 청유형 문장을 늘 뇌깔이며 온동네를 떠도는 개구장이 엿다.

늘 반복하는 누구야 놀자! 말속에는 친구야 지금 같이 놀고 싶은 데 너도 나랑 놀고싶지않니라는 말이 담겨져있다.

순이야 놀자!라고 부르면 늘 응답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그 대답에 멍한 침묵이 흘렸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없는 순이네

가계아주머니가 "순이네 이사갔데. 멀리 순이 이제 너랑 못놀아!"

난 가슴이 답답했고 눈물이 났다. 하루종일 울며 때를 썼다. 우리도 이사가자고!

그리고 그 이후론 순이야 놀자라는 노래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른이 되었다.

 

 

어린 아이의 문화였지만 동심에서도 어린 친구의 상태와 기호의 여부를 묻거늘!

우린 정말 하느님 앞에 일방적이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의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하느님의 백성이 된 여러분이 무엇을 바랄것인지를 알게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바오로 사도의 기도지향은 오늘에도 나를 향해 계속된다.

이런 문화는 어떨까?

"예수님 놀자!" "예수님 놀자!""예수님 나랑 뭐하고 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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