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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사회교리2-가톨릭 교회의 노동관(회칙 '노동하는 인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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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03-01-30 ㅣ No.154

 

 

 

  노동하는 인간은

 

 

 

  99. 사회교리2-가톨릭 교회의 노동관(회칙 '노동하는 인간'1)

 

 

 

  1. 서론

 

  인간의 생활은 노동으로 이루어지며, 노동에서 인간은 그 독특한 존엄성을 얻는다. 또한 노동은 노고와 고통을 동반하고, 국가 및 국제적 차원에서의 사회 불의도 안고 있다. 인간이 제 손으로 일하여 얻은 빵을 먹는다는 것도 진리이지만, '이마에 땀을 흘려' 얻은 빵을 먹는다는 것도 진리이다. 말하자면 개인적인 노력과 노고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각 사회와 전 인류의 생활을 어지럽게 하는 긴장과 충돌 그리고 위기들 속에서 얻는 빵을 먹는다는 말이다.

 

  요즘 기술, 경제, 정치적 분야에서 새로운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 새로운 발전은 자동화, 에너지 및 원자재 가격 상승, 한정된 천연 자원의 고갈 현상을 가져온다. 또한 수세기 동안 남에게 억눌려 온 민족들이 국제 협상에서 정당한 지위와 몫을 요구하며, 국가들 사이에서 부상하고 있는 사실도 포함한다. 이 모든 요구는 경제 구조와 노동 분배구조를 재조정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수백만의 노동자들에게 일시적인 실직이나 재훈련을 받아야 하는 불행을 안겨줄런지도 모른다. 또한 발전된 나라들에게는 이러한 변화가 생활 수준을 낮추고 경제성장을 더디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난한 나라에 사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는 위안과 희망을 안겨줄 수도 있다.

 

  교회는 노동하는 사람들의 존엄성과 권리에 대해 마땅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존엄성과 권리가 침해될 경우, 교회는 이 침해상황을 고발하고, 이러한 변화들을 이끌어 인간과 사회의 진정한 진보를 보장해야 하는 것이다(1항).

 

 

  2. 노동과 인간

 

  첫째 노동은 신성하다. 교회는 노동을 존엄(신성)한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노동의 주체인 노동하는 인간이 존엄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이 하느님 모습대로 창조되고, 노동을 하도록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초대받았으며, 우리 노동을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세상을 계속 만드시고 또 구원하시기 때문이다(4항).

 

  둘째 노동자. 특히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 그것도 노동자인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셔서 직접 노동하심으로써, 노동의 복음을 선포하셨다(6항).

 

  그러므로 인간이 '노동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이 '인간을 위해' 있다. 여러 가지 종류의 노동이 각각 다른 가치를 지닌 물건을 생산해 낸다 하더라도, 각각의 노동은 노동자의 존엄성에 의해서 평가되어야만 한다. 어떤 목적으로 노동하든지 간에 노동 그 자체로서는 의미가 없다. 사회가 인간의 노동을 아무리 하찮게 평가한다 해도 노동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인간이다(6항).

 

  셋째 올바른 가치 서열에 대한 위협. 인간만이 노동을 하는데, 인간은 노동을 통해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고, 노동을 통해 자기를 실현 완성시켜 나가며, 또한 사회 전체에 대하여 봉사한다.

 

  그러므로 노동의 대가(휴식으로서의 여가, 휴가 포함)는 자선이 아니라 정의의 실천이기에, 당연히 노동하는 인간의 현재와 미래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수준이어야 한다. 또한 인간의 노동을 '노동력'이라는 상품으로만 취급하는 유물론적이고도 경제주의적인 오류에서 벗어나야 한다(7항).

 

 

  넷째 노동자들의 결속. 인간의 노동을 생산의 도구로서만 보고 자본만이 생산의 유일한 기반이요 목적이라고 보았던 산업화 시기에는, 노동자들이 '하늘을 향해 복수를 요청하며' 자신들을 짓누르던 부당하고 악랄한 체제에 대해 반발하였고, 또 사회 도덕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정당한 처사였음이 인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단결 운동은 노동자들의 지위가 떨어지고 이들이 착취당하는 어디에서나, 그리고 가난과 굶주림이 있는 곳 어디에서나 마땅히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며 그리스도께 대한 충실성의 증거요, 그래야만 진정으로 '가난한 이들의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8항).

 

 

  다섯째 노고. 땀 흘려 일하는, 육체 노동자들뿐 아니라 학자 및 사회에 영향을 끼칠 결정을 내릴 책임을 지닌 정신 노동자들도 노고에 익숙해져 있다. 이러한 노고에도 불구하고 노동은 인간을 위해 좋은 것이다. 그것이 유용하고 즐겁기 때문만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표현하고 증가시키므로 좋은 것이다. 노동을 통해서 자연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충만해지고 '보다 더 인간답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근면의 덕을 제외하고 노동이 집단 수용소에서 강제 노동이라는 형벌로, 압박하고 착취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때 인간성의 격하를 가져온다(9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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