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흥보신부님의 자료실

96. 순례하는 교회8-신앙고백과 재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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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03-01-04 ㅣ No.151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96. 순례하는 교회8-신앙고백과 재수임

 

 

 

  가끔 교회의 지도자들이 갖추어야할 자격을 생각해 볼 때마다 부족함과 부당함을 느낀다. 그런데도 주님은 우리를 당신의 목자직에 참여하도록 부르신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같은 질문을 세 번씩 되풀이하신다. 그런데 그 질문은 점점 더 간결해지고 단순해진다. 첫 번째는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요한 21, 15ㄱ) 이고, 두 번째는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하느냐?"(16ㄱ), 세 번째는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17ㄱ)다. 이 세 번의 질문은 베드로가 마치 회개의 결정과 다짐 그리고 결단을 내리는 자기 정리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듯하다.

 

  베드로는 응답 속에서 더욱더 주님께 솔직하고 진실하게 다가간다. 첫 번째 질문에서 베드로는 "네, 주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15ㄴ) 라고 대답한다. 자기 기분에는 '그런 것 같고', '그럴 것 같고', 또 아니면 앞으로 '하면 될 것 같다'고 느낌을 표현한다. 두 번째 역시 "네, 주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16ㄴ) 라고 응답한다. 첫번째 응답과 같지만 두번째의 이 응답은 "내가 완전히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 기억과 생각 속에서는"(적어도 내가 보기에는…)이라는 단서 안에서 자신의 현실을 드러낸 것이다.

 

  세 번째,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예수께서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는 바람에 마음이 슬퍼졌다. 그러나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일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하고 말하였다."(17ㄴ) 이 베드로의 표현은 개인적으로는 섭섭하고 자신의 마음을 주님께서 몰라준다고 생각한다면 억울하기까지 할지 모른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 세 번째의 질문을 받으면서 자기 배반의 과거를 떠 올렸으리라. 실제로 그가 자신의 본모습을 대면하는 순간 그는 자기 자신이 초라해 보였고("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루가 5, 8 참조), 자신의 초라한 모습은 그를 슬프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주님께서 자비를 베풀어주시기를, 곧 사람에게 내리시는 생명의 말씀을 청하고 귀 기울이게 만들고 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가 슬퍼하게 될 줄을 아시면서도 이렇게 세 번씩 질문을 던지면서까지 나약한 인간 베드로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단 하나. 그것은 베드로를 사도로 파견하기 위해서이다.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15ㄱ. 16ㄱ. 17ㄱ)

 

  이제 네가 나를 따르지 않고 갈등과 좌절의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의 그 비참함과 고통과 파멸의 순간 안에서, 네가 나를 찾고 따르지 않으면 네가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 알았다면, 너는 나를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한다. 진정 나를 따름으로써 세상에서 나를 증거하고 복음을 선포하며 사람들을 구하는 길은 바로 '구원을 위한 희생' 곧 '십자가의 길'이다.

 

  그러면서도 이 길은 고통과 괴로움을 자신의 몸으로 마저 다. 채우고 일어서서 같은 고통과 괴로움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나아가는, '상처받은 치유자'가 걷는 길이다. 주님 안에서 같은 고통을 겪는 이들과 함께 연대하여 세상의 죄악을 없애기 위해 짊어지는 순교의 길인 것이다. 평신도 사도의 길. 누구에게서도 환영받지 못할지 모르나, 주님의 나라를 만드는 파견자, 사도가 걸어갈 길이다.

 

  그렇지만 이 길은 이데올로기나 자기 성취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주님을 사랑함으로써 주님의 포로가 걷는 복된 삶이다.

 

  이 성서 구절과 연관하여 시편 139, 1-18과 23-24(주님은 나를 샅샅이 아시나이다.) 그리고 예레 20, 9(7-18 하느님께 불평을 털어 놓다)을 보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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