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신(神), 신기(神起),신명(神命),신비(神秘),신부(神父),신자(信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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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4-10-12 ㅣ No.59

신(神), 신기(神起),신명(神命),신비(神秘),신부(神父),신자(信者)


쁘로체시오를 하려고 복도에 섰다. 복도의 끝이 보이지 않게 신부들의 모습이 보였다.

서로 반가워 악수를 나누고 축하하려고 온 타교구(?) 신부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입이 째지도록 좋았다. 한마디로 신났다.


후배사제 한분(?)이 나에게 말했다.

“형 신나지?

원래 착좌식이 이런거야?

내 서품식때 보다 더 신나!”


나도 애지만 정말 애처럼 말하는 그 신부의 말이 맞았다.


우리모두 추기경님 말씀처럼 밝은 표정이었다.

그 신부의 말이 자꾸 멤돌았다. 쉽게 사용하였던 말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언제선가 쓰지 않게 되었던 말!


“신난다!”


‘신’(神)이 ‘일어난다, 거동하다’-기(起)는 뜻이다.


착좌식이 시작되었다. 주교님이 착좌하셨고 교황대사의 강복 그리고 주교단 전체의 강복이 이어졌다. 제단에서 흘러나오는 말로 표현못하는 감동이 이어졌다.


가슴이 뜨거워졌고 조금지나자 가슴이 져미었다.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


왜일까?


하느님의 축복과 소명을 주시는 말씀 즉 신명(神命)이 내렸기 때문이다.


그 신명이 단지 인간의 말이 아닌 말씀으로 선포되어 육화의 신비로 성화하신 우리들의 영혼과 육신을 흔들어 놓으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신명(神命)을 가슴으로 받았고 우리의 가슴은 진군하는 북처럼 울렸노라!


153이라는 숫자의 신비(神秘)는 바로 교구 창립에 대한 기우의 요소들을 일시에 잠재우고

하느님의 오른손이 바로 교구를 직접 창설하심을 알리는 천명(天命)이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신비란 천상적 진리에 대한 모호함이 아니라 놀라우신 하느님 사랑의 형용할 수 없는 탐복의 감탄사임을 익혔노라!


이제 이런 신명나는 하느님의 터전에서 우리 신부(神父)들은 우리가 누구임을 자각했노라!


형제 사제들이여 우리는 바로 ‘신나는 사람이다.’ ‘신바람을 일으키는 사람’ 우리가 바로 신의 아버지이다.


우리는 신명을 받은 사람이며 신명을 전달하는 신명어린 사람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으로서 이 모든 것을 증명하여 모든 이들에게 모든 것이 됨으로써


신명의 아버지가 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신비!라는 감탄사가 너무나 신나는 세상에 대한 찬사와 이 감동을 표현할수 없어 단어를 찾을 수 없어 그저 신비라고 밖에 표현 못하는 바로 그것에 대한 기쁨의 아우성의 구성요소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말씀이 생활이 되고 우리의 생활이 말씀이 될 때 우리를 믿고 함께 해줄 우리의 동반자가 있으니 우리는 그 사랑하는 짝을 신자(信者)라 부른다.


신자는 바로 우리의 신명을 함께 느끼는 우리의 감각기관임을 우리는 안다.


* 잠시 신명나서 아침에 몇자 주저리 지꺼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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