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23주일(가해) 마태 18,15-20; ’23/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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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3-08-30 ㅣ No.5506

연중 제23주일(가해) 마태 18,15-20; ’23/09/10

 

 

 

 

 

 

세상 사람들은 말합니다. “기도한다고 떡이 생기냐, 돈이 생기냐?” “기도하면 너희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냐?” “기도 안 하면 천벌이라도 받냐?” “기도하면 위험과 고통이 없어지냐?” “기도 시간을 꼭 정해놓고 해야 하냐?” “기도하는 것보다 그 시간에 어려운 사람을 찾아 위로하고 봉사하는 것이 더 낳지 않냐?” “왜 기도하냐?”

 

떡을 얻고 돈을 얻기 위해 기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우리가 살아나가는데 필요한 양식을 청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실 수도 있겠습니다. 주님께서는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는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마태 6,11) 우리 삶의 현실적인 필요는 우리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놀라우신 업적을 발견하고 깨달아 그에 대해 찬미와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께서 한 평생 애쓰셨던 하느님 나라의 건설에 우리도 투신할 때 곁들여 얻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1-33)

 

우리가 기도한다고 하느님께서 우리의 원을 들어주시고, 기도 안 한다고 들어주지 않는다면, 그리고 또 내가 달라는 대로 주고, 청하는 대로 해주신다면, 그분은 하느님이 아니실 것입니다. 세상에 나와 같은 들이 그렇게도 많은 데, 우리 중 어느 누구 하나 자신을 위해 달라는 대로, 청하는 대로 주신다면, 그분은 기도하는 이의 개인수호신이거나 그 민족신이거나 미신일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 싸우면, 자식들이 누구 편을 들어야 합니까? 자식들이 서로 싸우면서 자기편을 들어 달라면, 부모는 누구 편을 들어줄 수 있습니까? 사람들이 서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기도한다면, 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이기고, 지배하고, 이용하고, 괴롭히기 위해 기도한다면 하느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은 너나 나만의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 인류 모두는 물론이고 살아있고 존재하는 피조물 모두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기도 안 하고, 주일 미사 빠진다고 천벌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부모님께 안부 인사 제대로 안 드린다고 지금 당장 벌받아 죽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기도한다고 위험과 고통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한다고 우리에게 닥칠 어려움이나 사고나 죽음이 아예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을 믿는 이나 믿지 않는 이나, 하느님께 기도하는 이나 기도하지 않는 이나 똑같이 세상을 살면서 겪을 것을 그대로 다 겪을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 5,45) 물론 하느님께서는 필요하시다면 미리 그러한 일을 겪지 않도록 하실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겪는 모든 것을 다 겪어낼 수 있도록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우리가 슬퍼할 때 우리와 함께 아파하시고, 우리가 기뻐할 때 우리와 함께 기뻐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힘겨워 할 때 우리와 함께 힘겨워하시면서, 그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사도 성 바오로는 말합니다.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로마 8,26)

 

이웃사랑은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꼭 해야만 하는 아주 중요한 덕목입니다. 그러나 활동으로서의 봉사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활동에 앞서 그 활동의 원천이 되는 주님의 영과 힘을 기도 중에 얻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루를 시작하면서, 그리고 매일 하루를 마치면서 홀로 떨어져 기도하셨던 그 모습대로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사도들을 선택하실 때나 기적 등의 중요한 일을 하시기 전에 아버지께 기도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활동에 앞서 기도합니다. 베네딕토 성인도 수도회칙에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고 기록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활동이 무엇이며, 또 우리가 하는 활동이 주님의 뜻 안에 있기를 청하며, 우리가 주님의 도우심으로 온전히 활동할 수 있도록,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가 하는 활동을 통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 보여주시고 마침내 열매 맺어주시도록 기도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기도하는 것으로 여겨주기도 하지만, 봉사활동 자체가 기도를 대신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봉사활동과 신앙생활은 또 다른 형태이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하느님을 사랑합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신명기와 레위기를 인용하여 말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신명 6,5)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레위 19,18) 하였습니다.”(루카 10,27)

 

우리가 기도로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현실에서 이웃을 사랑하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웃은 사랑하지 않고 기도만 한다면, 이런 세인들의 비난이나 지적을 받을 수 있겠습니다. 성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은 이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1요한 4,21)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우리의 남편이나 아내, 그리고 자식과 부모 또 다른 어느 누구도 우리 인간 내부에서부터 샘솟는 목마름과 갈증을 온전히 채워주실 수 없고, 그 목마름과 갈증을 채워주실 수 있는 분은 주님 한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께 기도합니다. 이것을 해도, 저것을 해도, 이렇게 해 봐도, 저렇게 해 봐도, 채워지지 않고 해결되지 않는 우리의 욕망과도 같은 갈증과 인간 내부의 근원적인 목마름을 채워주실 수 있는 분은 주님이시기에, 우리는 주님께 기도합니다. 주님께서는 기도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루카 11,9.11.13)

 

그리고 이 갈증과 목마름은 마치 한 끼라도 못 먹으면 배고파 지치고, 먹을 것을 찾아 나서는 것처럼, 우리를 기도 중에 하느님 앞에 나아오도록 해 주고, 하느님 안에서 그 갈증과 목마름을 해결하여 오늘을 영적인 기쁨과 내적인 평화 속에서 살아나가도록 해줍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8-30)

 

우리는 살아가면서 현실의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기도 안에 숨는 것도 아니요, 육적이고 현실적인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기도를 통해 모든 것을 얻고자 함도 아닙니다. 또한 불안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면서, 내가 기도했다는 사실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심리적인 안정을 얻기 위해 기도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기도 중에 주님을 뵈옵고 주님과 함께하고,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들으며 그 말씀을 새기고, 그 말씀을 내 현실에서 내가 적용할 수 있는 만큼 적용하며, 주님과 함께 살아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 연구와 기도 중에 들은 주님의 말씀을 하나씩 하나씩 그리고 기도자가 실천할 수 있는 만큼 실천해 나가면서, 우리의 내적 영적 생활은 풍요해지고 성장할 것입니다. 그 풍요로움과 성숙은 하느님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우리 그리스도교인들의 사명을 살찌워 줄 것입니다.

 

육과 영으로 이루어진 우리 몸은 외적이고 육적인 현실 세상에서 살아갈 양식과 내적이고 영적인 신앙 생활을 영위할 양식을 다 얻도록 요구하고 있고, 그 양식들은 우리 인생을 살찌우고 풍요롭게 해 줍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우리 신앙생활의 기쁨을 여러분이 직접 진실하고 깊게 사시면서 체험하시고, 그 체험으로 주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며, 그 체험에서 오는 기쁨을 형제들과 나눕시다. 그래서 기쁨과 행복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통해, 많은 분들이 다가오는 1015일 예비자 환영식에 우리와 함께 주님 나라를 건설해 나가는 기쁨과 행복에 참여하게 되길 바랍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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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일 꽃꽂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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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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