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흥보신부님의 자료실

81. 미사7-성변화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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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02-09-19 ㅣ No.129

 

 

 

  너희를 위하여 이 피를 흘리는 것이다

 

 

 

  81. 미사7-성변화21

 

 

 

  우리 나라에 '목마른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번역된 저자 도미니크 라피르의 원작 '기쁨의 도시'(la cite de la joie)를 영화화한 '시티 오브 조이'(city of joy)를 보면, 한 시골에서 올라온 농부가 도시에서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갖은 수고를 다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그는 "자식의 지참금을 마련하는 것은 아버지의 의무이기 이전에 권리입니다!"고 한다. 사랑은 용서해 주어야만 하는 의무이기 이전에,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들에게 주어지고 그래서 또 한편 하느님의 자녀들이 가지는 권리다. 그러므로 그 주인공의 모습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우리가 아버지 하느님 앞에 죄없는 인간으로 서기 위해 우리를 위해 몸바친 주님의 사랑을 닮았다.

 

  마치 딸의 결혼 지참금이라는 멍에를 메고 죽어간 영화의 주인공처럼, 참으로 주님은 인간을 둘러싼 모든 제도적 사회적인 굴레의 희생자가 되어 주셨다. 철없는 자식을 달래기 위해 희생당할 수밖에 없는 아버지처럼, 주님은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다시 말해서 자기가 하는 일의 의미를 모르면서 무절제하고 대책없이 저지르는 인간의 죄악에서 인간을 살리기 위해 희생해 주셨다.

 

  그런데 반해 주님을 죽이는 이들의 행동은 참으로 철없어 보인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은 한 인간의 죽음 앞에서 애도를 표하기는커녕, 그저 조롱하고 빈정거린다(루가 23, 34ㄴ-39). 이들은 자신들이 죽이는 이가 주님이라고도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하는 행위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비인륜적인 모습인가에 대한 자기 인식마저 없다.

 

  이러한 인간의 행위에 대해 주님은 마치 어머니가 자식의 잘못을 비호하듯이 역성을 든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루가 23, 34) 그리고 주님은 자기 죽음의 의미를 알고 계시고, 자기 죽음으로 인간을 다시 구하실 수 있는 아버지께 기도하셨다.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46절; 시편 31, 5참조) 이 기도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시고 올리브산 게쎄마니 동산에서 "아버지, 아버지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라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루가 22, 42)라고 기도하셨던 것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비록 사람들은 예수님을 '유다인의 왕'이란 정치범으로 몰아 죽여 버렸지만, 실제로 예수님의 죽음이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계획에 의한 것이었다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주님께서도 당신의 죽음에 대하여 이런 의미로 생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바 있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바치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러나 결국 나는 다시 그 목숨을 얻게 될 것이다. 누가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바치는 것이다. 나에게는 목숨을 바칠 권리도 있고 다시 얻을 권리도 있다. 이것이 바로 내 아버지에게서 내가 받은 명령이다."(요한 10, 17-18)

 

  그리고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되돌이켜 보면, 우리는 예수님 죽음의 의미를 아주 명확히 볼 수 있다. "이것은 나의 피다.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마태 26, 28) "이것은 나의 피다.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마르 14, 24)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이 피를 흘리는 것이다."(루가 2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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