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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베드로의 첫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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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03-02-12 ㅣ No.88

 

 

신약 베드로의 첫째 편지 해제

 

 

-진 토마스,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신약성서12 야고보서 베드로 전 후서 유다서, 분도출판사, 1987

 

 

 

베드로의 첫째 편지

베드로의 첫째 편지를 통독해 보면 서간이라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1,1-2의 인사말과 5,12-14의 끝맺는 인사말 이외에는 서간으로서의 구체적인 내용이 엿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는 주로 고난을 당하는 문제에 관해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유다른 것이 아니라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일반적인 고난에 대한 이야기다. 필자가 수신인들에 대해 직접 아는 바 없거나 혹은 수신인들이 너무 광범위해서(1,1 참조) 그렇게 일반적인 내용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요컨대 필자는 신도들이 처해 있는 역경을 거론하면서 보편성을 띤 문제들을 다루고 있으니, 본서를 일종의 "회람서한"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1. 주 제

필자는 5,12b에서 독자들에게 "여러분을 격려하고, 이것이야말로 하느님의 참된 은총임을 증언하기"위해 이 글을 썼다고 한다. 그러니까, 첫째 목적은 "격려하는" 것이고, 둘째 목적은 "하느님의 은총을 증언하는" 것이다. 이 은총은 하느님께서 옛날부터 예언자들을 통해 약속해 온 것이고(1,10 참조), 이제 실제로 각 사람에게 내려주셨다고 한다(4,10). 필자는 이런 은총뿐 아니라, 주님의 재림 때 주어질 구원의 은총(1,13), 곧 "상속받을" 은총에 대해서도 말한다(3,7). 또한 고난 속의 신도들을 지켜 주는 은총을 말하기도 하고(5,10), 심지어 고난 자체를 은총이라고도 한다(2,19-20: 참조 4,14"행복하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필자는 고난을 당하셨다가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자주 독자들의 눈앞에 부각시킨다(1,11ㆍ18-21: 2,4-6ㆍ21-25; 3,18; 4,1; 4,13).

  필자의 주장에 의하면, 신도들이 세속사회에서 소외되고 백안시되는 것은 소명과 그 소명에 상응하는 신앙생활 때문이니, 조금도 괴이한 일이 아니다(4,12). 신앙 때문에 사회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도들이 희망과 신념을 잃을 위험이 있기 때문에 필자는 무엇보다 먼저 그들을 격려하려는 것이다. 그가 묘사하는 신앙생활은 어려운 처지를 경건하게 또 참을성 있게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생활이다(1,6; 2,18-20; 3,1-6; 3,13-5,11). 그 어려운 처지의 구체적인 예로, 국가 권력자들에 대한 충성 문제(2,13-17), 노예생활의 역경(2,18-25). 신자와 비신자간의 혼종 결혼에서의 갈등(3,1-7), 그리고 교직자들이 그 직분 때문에 직면하는 유혹 등에 대해서(5,2-7)말한다.

  요컨대, 신도들은 그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꾸준히 선을 실천해 나간다면 바로 거기서 믿음과 희망이 구체화된다는 것이다(2,15ㆍ20; 3,6ㆍ17; 4,19). 사회적인 제도로 말미암아 생기는 고통이나 긴장을 불가피한 것으로 보는 필자는 그 제도 자체를 비판하지 않고 오히려 신약성서의 다른 서간에서와 비슷하게(로마 13,1-7; 에페 5,21-33; 6,1-4ㆍ5-9; 골로 3,18-25; 4,1; 1디모 6,1-2참조) 어떻게 살아야 그리스도를 닮을 수 있는지를 밝힘으로써 독자들의 믿음과 희망을 굳게 하려고 한다.

 

2. 수신인

본서는 "본도와 갈라디아와 갑바도기아와 아시아와 비티니아에"있는 교회들에게 보낸 글이다(1,1). 당시 이 다섯 지역은 로마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다시 말해서 리시아와 밤필리아와 길리기아를 제외한 소아시아(오늘의 터키) 전역에 산재한 모든 교회, 그러니까 바울로의 선교무대보다 좀더 넓은 지역의 여러 교회에 속하는 이방계 신도들이 수신인이다. "어두움 속에서 당신의 놀라운 빛으로 여러분을 부르신 분"(2,9), "전에는 여러분이 백성 아닌 백성이었지만 이제는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다"((2,10), 특히 "여러분이 지난날 이방인들의 뜻을 따라 행한 것"(4,3)등의 표현들이 그 사실을 입증한다. 유대계 신도들의 과거는 이렇게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3. 서간의 역사적 배경

신도들이 처해 있는 역경은 슬픔(1,6; 2,19), 시련(1,6; 4,12), 고난(2,19ㆍ20; 3,14ㆍ17; 4,1ㆍ19; 5,10), 헐뜯음(4,14) 같은 말로 표현되고 있는데, 이것은 국가적 차원의 박해를 암시하는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필자는 그런 대규모의 박해에 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2,13-17에서 국가 권력자들에게 충성을 다하라고 말함으로써 논리적으로는 그들을 모범적인 사람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2,14 참조). 그러니까 교회와 국가간에 어떤 알력이 있었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 것이다. 본서에 묘사된 신도들의 역경은 그들이 세속사회에서 신앙생활을 해 나가면서 겪게 되는 일반적인 어려움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신앙과 상반되는 일에 있어서는 이전과 같이 다른 시민들과 어울릴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신도들을 증오하고 갖은 구실을 달아 헐뜯는 것이다. 그것은 이를테면 소수파가 흔히 다수파에 의해 적대시되는 경우와 같은 곤경이다.

  국가 권력에 의한 조직적 박해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 신앙 때문에 법정에 설 때 쉽게 차별과 선입견의 제물이 되었던 모양이다. 4,15-16의 "여러분 중 아무도 살인자나 도둑이나 악인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가 되어 고난을 당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당하면…"이란 말로 미루어, 신도들은 이따금 중상과 모략 때문에 재판을 받았을 뿐 아니라, 고발이 근거 없는 무고로 밝혀져도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사회의 적대적 분위기 때문에 유죄 판결을 받았던 것 같다.

  사실 타치투스(55?-117)의 「연대기」에는 "그리스도인들은 인간말짜"라고 한 말이 있고(XV,44,2), 또한 수에토니우스는「네로」란 책 16,3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흉악한 새 미신을 믿는"무리라고 했다. 필자는 일반 시민들의 적의를 이렇게 설명한다. "여러분은 지난날 이방인들의 뜻을 따라…방탕, 욕정, 술주정…우상숭배를 하며 살아 왔습니다. 이방인들은 여러분이 (이제)자기들과 함께 방탕에 휩쓸려 살지 않기에 괴이하게 여기고 욕합니다"(4,3-4). 필자는 자기가 묘사한 역경을 어떤 특정 장소에 국한된 것으로 보지 않고 그리스도인들이 어디서나 겪고 있는 보편적 현상으로 본다(5,9b 참조). 그것은 어느 시대의 일일까?

  사도행전과 데살로니카 전서에도 역시 일반 시민이나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몹시 적대시해서 당국자들이 개입했다는 말이 나온다(사도 13,50; 14,19; 16,19-20; 17,5-9ㆍ13; 18,12-13; 19,23-24; 1데살 2,14). 하지만 그런 사례들은 특정 지방에 국한된 것이었는데 반해 본서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백안시되는 일반적인 세태를 말하고 있다. 그런 상황은 네로 시대(54-68년) 이후로 추정할 수 있다. 네로는 로마시에 불을 지른 뒤 자신에 대한 시민들의 의혹을 피하려고 "악인으로 백안시되고 있는 사람들, 곧 시민들이 그리스도인이라 부르는 사람들"에게 그 방화 책임을 뒤집어씌웠었다(타치투스, 연대기 XV, 44,4). 황제 자신이 로마에서 신도들을 박해했으니, 식민지의 당국자들이 그들을 낮게 대우해 주었다고 볼 수는 없다. 필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적의는 날이 갈수록 심했을 것이다. 따라서 네로의 탄압 조치(65년) 이후부터 본서가 말하고 있는 상황이 온 제국 안에 파급되었으리라고 추론할 수 있다. 한편 도미티아누스 황제(81-96) 치세 말경에 두번째 대 박해가 있었다. 특히 소아시아 지방에서 심했는데 이 때에는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박해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필자는 황제 숭배와 관련된 박해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오히려 권력자들을 모범적인 사람들로 생각케 하는 말을 하고 있으니, 본서에 묘사된 상황은 그 박해 전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65년 이후 90년까지 사이의 세태를 말하고 있을 것이다.

 

4. 집필 연대와 장소

1) 연대

첫째로, 해제Ⅲ에서 살핀 바와 같이 본서에 묘사된 상황은 65년부터 90년까지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둘째로, 로마를 가리키는 "바빌론"이란 별명은 서기 70년 후에 쓰이게 된 것이니, 이 편지가 그전에, 즉 베드로가 죽기(63-64년)전에 집필되었을 것 같지는 않다. 셋째로, 90년 이후에 야기된 신앙 문제, 예컨대 주님의 재림이 지체되는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있으니, 이 편지는 그 전에 집필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집필 연대는 70년부터 90년 사이의 어느 시기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2) 장소

5,13에서 "바빌론"을 집필 장소로 말하고 있다. 당시 "바빌론"이란 도시는 두 곳에 있었다. 하나는 나일강 어귀의 삼각주에 위치한 도시로서 별로 알려지지 않았고, 다른 하나는 유프라데스 강변에 위치한 저 유명한 고도 바빌론이었다. 그러나 베드로가 그런 먼 곳에서 활동했다는 전승은 없다. 이 서간이 베드로의 친서가 아니라 하더라도 필자가 굳이 그 지명을 택할 만한 이유를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일찍부터 에우세비오스는(교회사 Ⅱ,15,2)본서의 "바빌론"을 로마시의 별명으로 보았고, 대부분의 현대 학자들도 그렇게 본다. 사실 서기 70년 이후의 유대교 문헌에서 로마시를 가리켜 바빌론이라 부른 사례가 눈에 띄고(제4 에스드라 3,1ㆍ28ㆍ31; 아랍어 시빌의 신탁Ⅴ, 159), 이 별명은 그리스도교 문헌에도(묵시 14,8; 17,5; 18,2)나온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별명을 유대인들로부터 이어받은 것 같다. 짐작컨대,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파괴된 후 유대인들은 로마를 모든 악의 원천으로 보고 바빌론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5. 필자 문제

현대의 성서학자들은 대부분 본서의 베드로 친서성을 극히 의심스러운 것으로 본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필자는 자신을 베드로로 소개하지만(1,1), 갈릴래아 출신의 어부로서 그렇게 세련된 그리스어를 구사할 수 있었을까? 그의 그리이스어는 바울로의 문체보다 휠씬 빼어난다. 그런데 사도행전에서는 베드로를 "무식하고 평범한 사람"이라고(4,13) 말하고 있다. 둘째로, 필자가 자신의 주장대로 팔레스티나 사람, 즉 아랍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이라면 구약의 성구를 언제나 70인역에서 인용하고 있는 것도 이상하다. 셋째로, 필자는 예수의 말씀들을 직제자 곧 목격자로서 전하지 않고, 언제나 정형화된 전승에서 이어받은 대로 인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필자가 베드로 아닌 다른 사람임을 암시한다. 넷째로, 필자가 바울로의 서간을 인용한 대목은 없지만, 바울로 계열의 전승을 잘 알고 있고 또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갈라디아서 2장의 말로 미루어 베드로는 바울로의 영향을 그렇게 깊이 받았을 것 같지는 않다. 다섯째로, 필자가 사도 베드로이면 자기 본명인 시몬을 사용하지 않고 예수께 받은 별명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것도 역시 이상하다. 끝으로 바빌론이라는 로마의 별명이 서기 70년 이후에 쓰이게 되었다면 아무래도 사도 베드로를 이 서간의 필자로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실바노가 본서의 필자일까? 사실 실바노를 필자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충실한 교형으로 여기는 실바노를 시켜 나는 여러 분에게 몇 마디 썼읍니다"(5,12)라고 한 말을 실바노가 자신을 필자로 암시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하긴 앞에서 베드로에 관해 말한 사항들이 실바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는 디아스포라 출신으로 그리이스어에 능통했을 뿐 아니라, 팔레스티나 교회에 속한 사람으로서(사도15,22의 "실라"참조) 초창기 교회의 전승을 익히 알고 있었을 것이고, 또한 바울로의 협조자로서(1데살 1,1; 2데살 1,1; 2고린 1,19 참조) 바울로의 사상에도 친숙했을 것이다. 그리고 실바노는 수신인 교회들도 거의 다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널리 알려진 사람이 왜 자기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느냐 하는 의문을 풀기 어렵다. 그리고 특히 실바노가 바울로의 협조자인데도, 바울로가 세운 여러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바울로에 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점도 이상하다.

  요컨대 필자는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말할 수 있는 것은, 필자는 로마 교회의 신도로서 바울로 계열의 전승뿐 아니라 팔레스티나 교회의 전승도 잘 알고, 곤경에 처해 있던 소아시아의 교회들을 격려하고 용기와 희망을 주기 위해 이 서간을 집필하였으리라는 것뿐이다. 필자는 아마 자기 서간의 권위를 높이고 더 큰 효과를 거두기 위해 사도 베드로의 이름을 빌어 썼을 것이다. (위서, 즉 가명작품에 관해서는 사목서간 해제 16면을 보라.)

 

6. 필자가 사용한 전승사료

1). 바울로 계열의 서간과의 관계

  (1) 문헌상의 의존관계

  이 베드로 전서에는 로마서 몇 에페소서와 상통하는 점들이 눈에 띈다. 우선 로마서의 훈계적 문단인 12-13장의 내용과 비슷한 대목들이 여러 군데 있다(1베드 1,14와 로마 12,2; 1,22와 로마 12,9-10; 2,5와 로마 12,1; 2,13-17과 로마 13,1ㆍ3-4ㆍ7; 3,9와 로마 12,17; 4,10-11과 로마 12,6). 그리고 1베드 2,4-10의 구약 인용문도 로마 9,25ㆍ32-33과 비슷한 맥락을 보여 준다. 이런 유사점들을 문헌상의 의존관계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훈계적 자료나 구약을 인용한 증언들은 주로 구전전승으로 전해 온 것이었으니 양쪽 필자는 같은 구전전승들을 알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

  에페소서와의 관계는 일곱 군데에 엿보이는데 그 중 네 군데는 정형화된 훈계적 표현들이다(1베드 1,14-18 및 4,2-3과 에페 4,17 및 5,8; 2,1과 에페 4,25ㆍ32; 3,1과 에페 5,22; 5,8-9와 에페 6,11-13). 그 밖의 공통점으로는 교회론적인 상징(2,4-6과 에페 2,20-22), 그리스도론적인 정형문(3,22와 에페 1,20-21), 그리고 서간 서두의 형식문(1,3-4와 에페 1,3ㆍ14) 등이다. 이런 유사점들도 문헌상의 의존관계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같은 전승을 이용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사목서간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1베드 1,3-5와 디도 3,4-7; 2,1과 디도 3,3; 2,9와 디도 2,14; 3,1-6과 1디모 2,9-11).

  (2) 본서의 바울로적 사상

  위에서 말한 관계 이외에도 본서는 술어와 신학사상에 있어서 바울로적 사상과 유사한 점들이 있다. 바울로 계열 서간 이외에는 이 서간에서만 "그리스도 안에"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3,16; 5,10ㆍ14). 그리고 "부르시다"(1,15; 2,9ㆍ21; 3,9; 5,10), "나타나심"("아포칼립시스" 1,7ㆍ13; 4,13), "봉사하다"(= 섬기다 1,12; 4,10)등의 술어도 역시 바울로와 같은 뜻으로 사용한다(4,10-11의 봉사와 은사와의 관계 참조).

  그러나 바울로와의 차이점도 있다. 예를 들면, 바울로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신도들이 겪는 고난을 "십자가"또는 "십자가에 처형된다"는 말로 표현하는데(로마 6,6; 1고린 1,13ㆍ23; 갈라 5,24 기타) 반해 본서의 필자는 같은 내용을 언제나 "고난을 당하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신앙의 공동체를 바울로와 같이 "교회"("에클레시아")라 하지 않고, 언제나 성서적 상징어(예컨대 2,5의 "거룩한 제관","영적인 집")로 교회의 신비를 지적하고 있다.

 

2) 야고보서 및 히브리서와의 관계

여러 대목에서 야고보서와 비슷한 점도 엿보인다(1베드 1,6-7과 야고 1,2-3; 1,23-2,2와 야고 1,18-22; 1,24와 야고 1,10-11; 2,1과 야고 1,21; 4,8과 야고 5,20; 5,5-6과 야고 4,6ㆍ10; 5,9와 야고 4,7). 이런 유사점들도 문헌상의 의존관계보다 같은 훈계적 전승사료를 사용한 데서 기인한 것으로 추측된다.

  히브리서와의 유사점은 특히 특수한 표현들에서 엿보인다. 예컨대 양쪽이 다 신도들을 "나그네"(1베드 1,1; 2,11과 히브 11,13)라 부르고, 세례 때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 새 계약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피의 뿌리심을 받았다"(1,2와 히브 12,24)라 말하고, 그밖에 "살아 있는 말씀"(1,23과 히브 4,12), 예수께서 "단 한 번 고난을 당하셨다"(3,18과 히브 9,28), "축복을 상속으로 얻는다"(3,9와 히브 12,17), "그리스도 때문에 욕을 당한다"(4,14와 히브 13,13)등의 같은 표현을 쓰고 있다. 이것도 문헌상의 의존관계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고, 양쪽의 필자가 서로 비슷한 상황을 비슷한 표현으로 묘사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3) 공관 복음서 전승과의 관계

본서의 필자는 공관 복음서의 기초를 이룬 예수 전승에서 비롯한 예수의 말씀, 용어, 사상 등을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수의 말씀들을 직접 인용하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주로 구전전승을 이용한 것 같다. 예컨대, 목자의 표상을 사용하고(2,25; 5,2ㆍ4; 참조 마르6,34=마태 9,36; 마태 25,32; 마르 14,27=마태 26,31), 예수의 죽음을"값을 치르는 것"(=속량)으로 설명하고(1,18ㆍ19; 참조 마르 10,45. 정 양모 역주, 마르코 복음서 121면; 루가 1,68; 2,38; 24,21), 예수와 제자들의 수난과 죽음을 "고난을 당한다"고 표현하고(2,19ㆍ20ㆍ21ㆍ23; 참조 마르 8,31 병행; 마르 9,12병행; 루가 24,26ㆍ46)있는 점등을 지적할 수 있다. 끝으로, "깨어 있으라"(5,8), 걱정하지 말고(5,7), 착한 관리자가 되라(4,10-11)는 권고의 말들도 예수 전승에서 이어받은 것이다. 요컨대 이 서간의 기본 사상은 예수 전승과, 바울로 계열의 전승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을 뿐 아니라, 헬라계 교회들의 영향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아마 그 여러 전승들은 로마에서 종합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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