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흥보신부님의 자료실
74. 미사2-참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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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74. 미사2-참회
미사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참회예절을 갖게 된다. 어떻게 보면 이 참회예절은 주님을 만나러 달려온 사람에게 또 다시 만나기 위한 준비를 시키는 듯할 정도로 중복되고 불필요한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미사경본의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부분을 신약성서에서 루가 복음 18장에 나오는 '예리고의 소경'의 외침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38절) 또한 마태오 복음 15장의 '가나안 여자의 믿음'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제 딸이 마귀가 들려 몹시 시달리고 있습니다."(22절) 인용된 이 두 성서구절에서 드러나는 자비를 청하는 기도는 일견 반성의 의미로서의 참회를 가리키는 것은 아닌 듯하다. 오히려 간절한 바람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주께 자비를 청하는 예리고의 소경이나 가나안 여자에게 주님은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루가 18, 42) "여인아! 참으로 네 믿음이 장하다."(마태 15, 28)하고 칭찬하신다. 주님은 그 둘에게 '내게 비는 너의 청은 참으로 내게 대한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라는 인정 아래 자비를 베풀어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왜 주님 앞에 서서, 주님께서 자비를 베풀어주시기를 청하는 우리의 모습을 참회로 규정지었을까? 우리는 여기서 예리고의 소경이나 가나안 여인이 주님을 뵈옵고 바로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루가 18, 38)라든가 또는 "제 딸이 마귀가 들려 몹시 시달리고 있습니다."(마태 15, 22ㄷ) 라고 말하지 않고, 먼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루가 18, 38. 39ㄴ; 마태 15, 22ㄴ)라고 청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두 사람의 입장을 '첫번째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루가 5, 1-11)의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밤새 한 마리도 못잡은 어부들이 돌아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아라."(4절)고 하신다. 그랬더니 "과연 엄청나게 많은 고기가 걸려들어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 되었다."(6절) 그러자 "이것을 본 시몬 베드로는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8절) 그렇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자신들이 할 수 없었던 일이 기적처럼 펼쳐지자 겁을 집어먹고, 또 두려움에 빠져 스스로가 죄인임을 인정한 것이다.
이렇게 주님을 만났을 때 초라하고 가소로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인간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자비를 청하게 된다. 이 모습은 또한 루가 복음 18장에 나오는 '바리사이파 사람의 기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주님을 만나는 기쁨은 바로 이 자비를 청하고, 또 그 청을 들어주시는 주님의 자비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참회는 단순히 자기 잘못에 대한 반성이거나 그 반성을 끌어내기 위한 일종의 인위적인 예절로서의 프로그램이 아니다. 참회는 인간이 주님 앞에 서고 주님을 만나게 될 때, 인간이 구조적으로 가지게 되는 감정이요, 본능이다. 아울러 이러한 참회를 가져오게 하는 것은 바로 참회자의 믿음이요, 그 믿음은 바로 주님께 대한 확실한 선체험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주님을 이미 체험하지 못했다면, 주님을 체험한 사람들의 신앙고백을 전해들음으로써 주님을 믿고 기다리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 미사 때에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주님의 전번 은총사건의 체험이거나 또는 주님께서 선조들이나 다른 이들에게 베풀어주신 은총사건, 특별히 그리스도교 신자 일반으로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사건의 체험에서부터 미사는 시작한다. 이렇게 참회는 주님을 맞이하는 과정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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