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흥보신부님의 자료실

69. 병자 성사 생활2

인쇄

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02-06-27 ㅣ No.117

 

 

 

  나에 대한 희망을 잃지 말라

 

 

 

  69. 병자 성사 생활2

 

 

 

  주님은 병자성사를 통해 "나에 대한 희망을 잃지 말라!"고 우리를 부르신다.

 

  "우리는 이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로마 8, 24) 우리의 희망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 내가 남을 위해 헌신하다가 내가 쓰러지면 누가 나를 돌볼 것인가?"하는 이런 기본적인 계산도 못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들이 생각하는 것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스러운 자유'이다.

 

  성령은 이러한 영광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서 두려움을 몰아내 준다. "성령께서도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는 우리를 대신해서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깊이 탄식하시며 하느님께 간구해 주십니다."(로마 8, 26)

 

  그리고 성령은 우리를 이끄시고 채워 주신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 28)

이러한 믿음과 희망 때문에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기에 인내롭게 기다릴 따름"(로마 8, 25)이며, 주 그리스도를 따라간다. 이것이 희망을 이루는 삶이요, 희망의 성사를 받는 이들의 은총이다.

 

  이 희망의 전망 안에서 우리의 질병과 고뇌를 보자. 질병은 우리 인간의 한계를 더욱더 절박하게 느끼게 한다. 그러나 한편, 질병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은, 그 고통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도록 초대하고 있다. 이 모습은 질병이 한 개인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사회적인 연대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게 한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께서 죄를 지어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믿음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질병과 그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더이상 죄의 벌이라고만 받아들일 수 없다. 오히려 인간의 고통을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으로 채우"(골로 1, 24ㄴ)는 행위로 받아들일 수 있다.

 

  또한 그 고통의 순간에, 우리는 더욱더 주님을 가깝게 만날 수 있다. "나는 이를 위해서 내 안에서 강하게 활동하시는 그리스도를 힘입어 애써 노력하고 있습니다."(골로 1, 29) 그리고 고통을 인간의 처참한 모습만으로 볼 필요는 없다. 고통은 인간을 정화시키는 순간이기도 하다. "내가 굉장한 계시를 받았다 해서 잔뜩 교만해질까봐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로 찌르는 것 같은 병을 하나 주셨습니다."(2고린 12, 7.)

 

  어떤 병자는 "막상 아프다보니 기도는 생각조차 안났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한 번은 아파서 뒹굴고 나서, 십자고상을 바라보게 되었어요. '십자가에 저렇게 생으로 매달렸었다니!' 하는 생각에 순간 눈물이 흘러 나왔어요. 그후엔 고통이 올 때마다 십자가를 바라보게 되었고, 그때마다 내가 주님과 합쳐지는 것 같았어요."

 

  "우리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뻐합니다. 고통은 인내를 낳고…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 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로마 5, 3. 5)

 

  고통은 오히려 우리를 더욱더 하느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겪는 고통이 구원을 향한 주님의 고통과 연결될 때, 그 고통은 좌절이 아니라 희망의 서곡이요 주님의 부르심이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기에 인내롭게 기다립니다."(로마 8,25)

 



42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