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흥보신부님의 자료실

68. 병자 성사 생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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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02-06-22 ㅣ No.115

 

 

 

  난 곧 죽을 거야

 

 

 

  68. 병자 성사 생활1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신의 미래에 대해 더 불안해하고, 자기가 처한 현실 상황이 불안정하다고 느낀다. 왜 그런 것일까?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것이 믿음직스러운 것보다는 의심스러운 것이 많은 이유일까? 아니면 자신이 지금까지 추구해 온 것이 허망해진 탓일까?

 

  "난 곧 죽을 것이니까 아무런 욕심도 없다."고 말하면서도, 오히려 수전노 같아지고, 점점 독재를 부리게 되고, 작은 일에도 섭섭해하며, 화를 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긴 인생 경험을 통해 꾸준히 인격적인 성장과 성숙을 해왔기 때문에, 더욱더 온유하고 너그러우며 내적으로 풍요로워져야 할 텐데 말이다.

 

  누구나 먹고, 자고, 입으면서 산다. 어떤 이는 "먹고, 입고, 자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일한다."고도 한다. 심지어는 사는 이유가 "먹고살기 위해서"라고까지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과 안정되지 않은 생활은, 단지 나이가 들어 무료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이 의·식·주 해결에 대한 불안감에 있다.

 

  오늘 지금 먹으면, 언제 또 먹을지 모른다는 심리적인 부담은, 육체를 더욱더 고달프고 궁폐스럽게 한다. 젊을 때보다 끼니 때를 늦추기가 더 힘들고, 옷이나 잠자리를 더 챙기게 만든다. 이러한 불안은 그야말로 보장되어 있지 않은 미래에서 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기대하는 것은, 자기 생명이 붙어 있는 한에는, 굶지 않고 길거리에 내팽개쳐지지 않고 사는 것이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거기에 병마저 걸리게 되면 그의 처지가 어떻게 되는가? 자신이 병고에 시달려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의 투병에 함께 해 줄 이가 있는가? 머리에 떠올리기도 싫은 상황이다. 그러나 그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내가 떠올리려 하지 않아도, 나의 현재를 강한 힘으로 지배하고 있다. 우리가 떠올리려고 하지 않는 정도의 그 이상으로 반비례하여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우리의 두려움이 몰고 오는 힘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희망이 있습니다."(로마 8, 20ㄴ) 희망은 무엇인가? 죽음으로 사그라지고 말 육체가 소멸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질병이 없어진다는 말인가? 먹고 입고 잠잘 곳이 보장된다는 것인가? 빠르게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변화하는 사회보장제도나 보험이, 이 불안을 우리에게서 지워줄 수 있단 말인가?

 

  성서에서 말하는 희망은 무엇인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다는 부활과 구원의 희망은 무엇인가? 그 희망은 우리가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서, 허망해하는 현세적이고도 물질적인 보장이 아니다. 인간은 먹어야 살고, 언젠가는 죽는다. "피조물이 제 구실을 못하게 된 것은 제 본의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로마 8, 20ㄱ)

 

  그런데도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희망은 "피조물에게도 멸망의 사슬에서 풀려나서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스러운 자유에 참여할 날이 올 것"(로마 8, 21)이라는 희망이다. 멸망의 사슬에서 풀려난다는 것은, 어차피 죽을 운명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날과 우리의 몸이 해방될 날"(로마 8, 23)을 맞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몸이 해방된다는 것은, 우리 육체의 유지와 안락함에 대한 걱정과 관심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가 더이상 육체로 인한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죽은 후의 영혼만이 있는 날로부터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아직 병들거나 늙지 않았어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날부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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