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의시간

소문과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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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7-06-30 ㅣ No.338

<소문과 실제>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마태 16,13-19)



  우리는 흔히 자신이 잘 모르는 사항에 대해 궁금해 하면서도 직접 알아보려고 노력하지 않고 풍문에 떠도는 말로 쉽게 단정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 결과 ~라 하더라는 소문이 그럴싸하게 포장되어 진실인양 전해지게 됩니다. 요즘은 인터넷이라는 풍문 전파 장치가 생겨서 그 위력이 전에 없이 강해 졌습니다. 간혹 잘못된 소문으로 인해 피해를 크게 당하는 경우도 생겨납니다. 심지어 그런 점을 역이용하는 광고기법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워낙 정보가 열려있는 오늘 날에는 누구라도 조금만 노력하면 진실을 밝혀 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정확한 소식을 알 수 있는 경로가 적어 아마도 예수님이 어떤 사람이라는 헛된 소문이 분분했을 겁니다. 그 소문이라는 것이 워낙 자기들 구미에 맞게 각색되는 지라 별별 이야기가 다 떠돌았을 것입니다. 그 당시 베드로는 스승이신 예수님 면전이라 말을 꺼내지 못했지 아마 귀신들린 사람이라는 둥, 사탄이라는 말까지도 돌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베드로는 자기 생각에 그럴듯한 내용만 아뢴 것입니다.


  그 소문들이 모두 죽었던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AD28년경 헤로데 안티파스에 의해 반란모의 죄로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엘리야는 죽지 않고 하늘에 들어 올려졌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날에 다시 땅으로 내려와 종말을 알려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예레미야도 BC587년 바빌론유배 이전에 이집트에 납치되어 끌려갔는데 생사를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그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었던 예언자가 환생한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즉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여긴 것입니다. 이처럼 보다 확실한 신원을 알려하기보다 들리는 풍문을 손쉽게 믿었던 것입니다.


  사실 제자인 베드로도 예수님께서 직접 묻기 전까지는 예수님의 신원에 대해 이럴까 저럴까 추측할 뿐 헷갈려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먼저 나서십니다. 질문을 통해 보다 확실하게 고백하도록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질문을 받게 되어야 그 사실에 대해 좀 더 심사숙고하게 됩니다. 그 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도 질문을 받고나서야 자기 의견을 밝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인간들의 심리를 너무나 잘 아셨습니다. 복음서를 읽을 때마다 새삼 느끼는 일이지만 정말 예수님께서는 아주 뛰어난 심리학자이십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인류의 역사적인 스승들이 남긴 언행록을 살펴보면 제자들과 질문을 받고 답하는 형식의 책이나 경전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스승들은 대부분 제자들이 궁금해 하는 질문을 받고 답해 주시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경우는 전혀 다릅니다. 언제나 예수님께서 먼저 질문을 하십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내용들을 질문을 통해 이끌어 주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고자 하는 내용이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하느님에 관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스승들처럼 제자들이 청하는 질문을 기다릴 수 없는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올바른 관계로 이끌어 졌습니다. 오히려 당돌하게 예수님께 먼저 의문을 표한 사람들은 모두 그릇된 오해로 빠졌습니다. 그들은 선입관과 편견을 지니고 질문했으며 그 잘못된 생각을 바꿀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하느님에 대한 잘못된 소문으로 처절한 고통을 당한 뒤에 모든 것을 아주 절실하게 고백한 책이 있습니다. 바로 욥기의 경우입니다.


“당신께서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소문으로 겨우 들었었는데, 이제 저는 이 눈으로 당신을 뵈었습니다.”(공동번역 욥기 42,5)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아주 강했던 욥은 마지막에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야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잘못 이해했던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제대로 뵙고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그래서 저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며 먼지와 잿더미에 앉아 참회합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어느 학자는 “그래서 저 자신을 먼지와 잿더미라고 앉아 고백합니다.”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그동안 하느님께 원망하고 분노를 표현하면서까지 하느님을 떠나지 않고 매달렸던 욥이 최후에 얻은 결론은 인간인 우리가 하느님이 될 수 없으며 우리는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분만이 살아계시며 전지전능하신 주님이라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욥은 그 사실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뉘우침과 전 인격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이 그 대답을 고백하시길 바라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신이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주님이라는 것을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욥이 일생에 걸쳐 갖은 고생을 해가며 얻어낸 결론을 예수님께서는 당신 사랑으로 도달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 가지입니다. 욥처럼 욥이 겪었던 불행과 고난, 모욕과 고통을 겪고 난 뒤에 주님을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고백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주님의 사랑을 즉시 받아들여 고백할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욥과 같은 불행한 처지에 당하면 어떻게 변할지 모릅니다. 그 누구도 욥처럼 하느님을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매달릴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밖에서 ~라 하더라는 소문을 듣고 간과하여 넘어가는 우를 다시는 범해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알아내도록 연구하고 체험하고 매달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하느님이시라는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아멘.


  
Music : Sarah Brightman - This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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