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2018. 9. 24(월) 한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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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18-09-24 ㅣ No.3656

2018. 9. 24() 한가위

1독서: 요엘 2,22-24.26ㄱㄴㄷ / 2독서: 묵시 14,13-16

복음: 루카 12,15-21

수색 예수성심 성당 박재성 시몬 부제님 강론

 

 

 

찬미 예수님,

오늘은 우리나라 최대의 명절인 추석입니다. 아무쪼록 오랜만에 만난 가족끼리 먼저 말하기보다 듣는 것을 실천하여 싸움보다는 웃음이 피어나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추석이 되면 우리는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하고 인사를 합니다. 풍성하다는 의미는 넉넉하고 많다는 의미입니다. 과거에 대부분 사람들이 농사를 짓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풍성한 한가위는 곡식이나 과일의 수확이 가득하길 기원하는 인사입니다. , 풍년 기원 인사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농사를 짓는 이들이 많지 않습니다. 직장을 다니고 돈벌이를 하는 것으로 변했습니다. 그럼에도 인사말은 그대로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풍성한 한가위라는 것은 무엇을 기원하는 것일까. 이 때만큼은 먹고 살 걱정에서 벗어나 몸도 마음도 넉넉하게 지낼 수 있기를 기원하는 인사말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성경에서도 배불리 먹는 것은 축복이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인 요엘서를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타작마당은 곡식으로 가득하고 확마다 햇포도주와 햇기름이 넘쳐흐르리라. 너희는 한껏 배불리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한 주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리라.”(요엘 2,24.26) 오늘날에도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축복입니다. 우리 모두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집에서 자길 바라며, 그렇게 되면 저는 좋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모두 잘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먹는 것을 넘어서 모두 집이 있어서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처럼 음식걱정, 집 걱정이 없어야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잘 살기 위한 바탕, 풍성하기 위한 준비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음식이 많은데 넘쳐나서 쓰레기가 되면 풍성하다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집이 큰데 사람이 오가지 않으면 이 또한 풍성하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풍성한 한가위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욕심을 말씀하십니다. 복음에 나오는 부자는 잘 살기 위한 바탕을 이룬 사람입니다. 그는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습니다.(루카 12,16) 그런데 그 다음에 그가 한 것을 보면 그는 자신이 가진 곳간이 있었음에도 그것을 헐고 더 큰 것을 짓겠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스스로에게 ,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루카 12,19)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자신의 재화만 늘리고, 자신만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기려는 사람을 성경에서는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루카 12,21)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가 재화는 있지만, 부유하다고 불리지 못한 이유는 그가 가진 것이 하느님에게서 온 것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생명까지도 하느님에게 온 것이기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은 하느님께 받은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를 잊으면 내 주위가 황폐해지고, 기억하면 내 주위는 풍성해 집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내가 가진 것을 더 채우려는 욕심보다는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나누는 것이 필요합니다. 바로 이것이 풍성한 한가위가 되는 방법입니다. , 우리 중에 누구라도 바탕은 잘 마련이 되어야 합니다. 이는 그저 나눔이라는 마음 뿐 아니라, 실천적인 노력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자비롭게 봐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자비를 행해야 할 것입니다. 이 한가위 명절 연휴에 비단 어려운 사회복지 시설을 꼭 일일이 다 찾아다니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홀로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께 그리고 가족 없이 지내는 일가친척들에게라도 인사를 다님으로써, 외로운 예수님을 달래드리기로 합시다. 더 이상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은인들과 은사들에게도 안부 전화라도 하면서 우리의 시간과 정성을 나누기로 합시다. 풍성한 한가위가 되기 위하여 복음의 부자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날에 하느님께서는 낫을 휘두르시어 당신의 말씀이 잘 뿌리내린 이들을 모으실 것입니다. 그리고는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고생 끝에 이제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묵시 14,13)

 

진정 하느님께서 우리를 자비롭게 대해 주시기를 기도해야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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