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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03-02-12 ㅣ No.22

 

 

구약 모세오경 입문

 

 

-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구약성서 새번역''7, 임승필 역

 

 

 

    1. 오경의 통일성과 양성

 

    그리스계에 이어서 라틴계 그리스도교에서는 구약성서의 첫 다섯 권을 전통적으로 ‘오경(五經; Pentateuch)’이라 부른다. 여기에서 ‘경’에 해당하는 서양말(teuch)은 그리스말(teuchos)에서 나온 것인데, 이는 본디 책이나 두루마리를 담는 ‘상자’를 뜻한다. 그래서 오경의 원뜻은 ‘다섯 상자’가 된다. 흔히 ‘율법’으로 번역되는 히브리말 ‘토라’가 바로 이 다섯 권의 책을 가리키는데, 이 용어는 다섯 권의 책 각각이 아니라 전체를 가리키며, 법적인 의미에 한정되지 않고, 설화 부분들과 함께 이스라엘 민족의 선택과 구원의 역사까지 포함하는 폭넓은 개념이다. 또한 오경을 ‘모세의 다섯 책’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전통적으로 모세를 입법자, 곧 이스라엘 민족에게 율법을 중개해 준 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모세의 토라는 각각 고유한 문학적, 역사적, 사회적 구조를 지닌 여러 법전들, 그리고 이 법전들을 둘러싸고 있으면서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이루기 위하여 하신 일들을 하나로 이어 전하는 큰 설화들로 구성되어 있다.

 

    오경의 각 권에 붙여진 제목들 역시 그리스말에서 나왔는데, 이것들은 각 책의 내용에 대한 대략의 개념을 제공하려 하고 있다. 그래서 세상의 기원에 대한 책이라는 의미에서 ‘창세기’, 에집트에서 탈출한 이야기를 전한다는 의미에서 ‘출애굽기’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레위기’라는 제목은 제의법(祭儀法)에서 레위의 자손들이 수행하게 되는 일에 상응하는 것이고, ‘민수기(民數記)’는 이스라엘 민족의 인구 조사에서 유래한다. 끝으로 ‘신명기(申命記)’는(이에 해당하는 그리스말은 ‘두 번째 입법’이라는 뜻을 지닌다) ‘율법의 되풀이’라는 의미에서 이 제목을 달게 되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자기들의 전통에 따라 각 권을 시작하는 히브리어 첫 문장의 하나 또는 두 낱말을 제목으로 한다.

 

    이렇게 다섯으로 나누는 것이 토라 전체의 통일성을 손상시키지는 않는다. 이 통일성은 한 책에서 다음 책으로 이어지는 연속성에 의해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출애굽기는 창세 46장에 전개된 야곱 가문의 족보를 요약하고, 요셉의 죽음을 알리는 창세기 마지막 절(50,26)의 내용을 되풀이하며 시작한다(출애 1,6). 출애굽기 다음에 나오는 레위기에서는 시나이산에서 모세에게 주어진 율법의 계시가 계속되는데, 이 계시는 출애 20장에서 시작하여 민수 10장에 가서야 끝을 맺는다. 그리고 신명기는 전체적으로 출애 20장에서 23장에 이르는 법전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모세의 열정적인 담론으로서, 이는 선택된 민족이 약속의 땅에 정착하면서 곧바로 하느님의 뜻을 잊어버리는 위험에 부딪히게 될 때를 염두에 두고 한 말씀이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것처럼 성서의 책들이 장으로 나누어진 것은 중세에 와서야 비로소 이루어진 것으로서, 이는 성서를 읽고 연구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책 전체에 대략적으로나마 규칙적인 구분을 지으려는 노력이었다. 반면에 유다교 전례 봉독 때 이루어지는 단락 구분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성서 본문의 자연스런 구분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본문을 자연스럽게 나눌 경우 그 단락들의 길이는 매우 다양한 것으로 드러난다. 예컨대 요셉 이야기는 현재 여러 장에 걸쳐 전개되는 반면(창세 37과 390-50), 천사들과 사람들의 딸들 사이에 맺어진 혼인에 관한 일화는 단 몇 절일 뿐이다(창세 6,1-4). 어쨌든 오경에서 현대적인 법전이나 신학 논술에서처럼 엄격한 구성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아울러 오경에서 어떤 일정한 연대의 순서를 따라갈 수 있다 하더라도, 오경이 일차적으로 역사 안내서가 아님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2. 율법과 역사

 

    오경의 많은 설화들은 율법을 돋보이게 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예컨대 금송아지의 일화는(출애 32-34) 약속의 땅을 향해서 시나이산을 떠나라는 명령, 그리고 “너희는 신상을 부어 만들지 말아라.”는 계명과(출애 34,17) 함께 이루어지는 계약의 표명으로 끝을 맺는다. 다른 이야기들은 제도의 설정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예컨대 코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반역은(민수 16─17) 사제직 수행을 위해 아론 가문이 선택되는 것을 설명한다. 창세기는 무엇보다도 설화체로, 그리고 레위기는 특히 법률체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면서도 창세기에는 다른 책에서 볼 수 없는 할례에 대한 율법이 나오고(창세 17,9-14), 레위기에는 아론이 사제로 임명되는 이야기가 나온다(레위 8과 9). 유다교 전통은 토라의 법률적인 면에 먼저 주의를 기울인다. 반면에 그리스도교 전통은 설화적인 면에 더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결국 오경 안에서 하느님에 의한 인류 구원의 역사를 보게 된다.

 

    오경에 대한 문학적인 분석은 그 문학적인 유형들을 어느 정도 구분지을 수 있게 도와주고, 고대 근동의 문헌들에 대한 지식은 그 유형들을 특징지을 수 있게 해준다(형법, 혼인법, 족보 등). 그러나 본문의 분석 작업은 그 자체만으로는 전체의 전망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매우 다양한 유형들은 일정한 의도와 의미와 함께 배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율법 따로, 설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은 동시에 역사이다. 역사와 율법은 선택된 민족의 것이고, 이 민족의 하느님께서 이루어주신 것들이다.

 

 

 

    3. 오경의 여러 저작 단계

 

    주의깊은 독자는 오경이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드러내는 여러 가지 문학적인 면들을 보고, 비록 오경 전체에 대한 통일적인 안목을 잃지는 않더라도, 놀라움을 금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오경의 문체와 서술 방식이 다양하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독자에게는 이 다섯 권의 책이 일종의 전서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오경은 이스라엘의 여러 신앙 고백들이 수세기를 거치면서 각자 고유한 방식으로 정착된 전서인 것이다.

 

    이 때문에 어떤 법조문들은 서로 다른 문맥 안에서 되풀이되기도 한다. 예컨대 십계명은 두 번(출애 20; 신명 5), 축제 절기는 네 번 나온다(출애 23; 34; 레위 23; 신명 16). 설화 역시 마찬가지여서, 예컨대 창조(창세 1,1─2,4ㄱ; 2,4ㄴ-25), 하갈의 소박(창세 16과 21), 그리고 모세의 소명(출애 3 - 4와 6,2 이하) 이야기 등은 각각 이중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단순한 반복은 아니다. 각각의 병행 본문들이 독창적인 표지들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안식일 준수 계명은 어떤 때는 창조에 대한 회상에(출애 20,9-11), 또 어떤 때는 에집트 탈출에 대한 회상에 그 바탕을 둔다(신명 5,12-15). 같은 한 계명에 대한 이 두 가지 동기는 각각 자기의 고유한 권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의도에서 권위를 부여받은 것으로서, 서로 다른 이 의도들을 알아내는 것 역시 중요하다. 이러한 예는 다른 나라 임금 앞에서 자기 부인을 누이로 내세우는 선조들의 이야기에서 특히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이야기는 세 번 나오는데, 창세 12장과 20장에서는 아브라함과 사래, 창세 26장에서는 이사악과 리브가가 주인공이 된다. 이렇게 하나의 이야기가 서로 다른 두 개의 설화 형식으로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두 개의 전승이 뒤섞여 한 설화의 형태로 제시될 수도 있는데, 노아 홍수의 이야기가 그런 경우이다(창세 6,5 - 9,17). 이 본문이 지니는 혼합의 성격은, 문체가 서로 뚜렷이 다르기 때문에 분명하게 드러난다. 여기에서는 숫자를 각각 달리 열거하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창세 6,19에는 노아가 온갖 동물들을 그 종류에 따라 두 마리씩 방주에 데리고 들어가게 되어있지만, 7,2에는 정결한 짐승은 일곱 쌍씩, 부정한 짐승은 한 쌍씩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7,17에는 홍수 기간이 40일로 되어있지만, 7,24에는 150일로 되어있다.

 

    문학적인 다양성은 문체와 특수 용어의 사용에서도 드러난다. 가장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상이성은, 병행 이야기에서 특별히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하느님의 서로 다른 이름들이 쓰여진 것이다. 예컨대 하갈의 소박에 대한 두 이야기 가운데 한 곳에서는 ‘주님’을(히브리말로는 야훼; 창세 16,3-14), 다른 곳에서는 통상 ‘하느님’을(히브리말로는 엘로힘; 창세 21,9-19) 쓴다. 이러한 사실은 여러 전승들의 서로 다른 기원을 밝혀내기 위한 문학적 분석에서 결정적 구실을 수행한 바 있다. 이 첫 기준에 다른 상이성들도 더해지는데, 예컨대 계시가 내려진 산이 어떤 때는 시나이로(출애 19,1; 민수 10,12), 어떤 때는 호렙으로 불린다(신명기에서는 계속 이 이름으로만 불리지만, 출애 3,1에 이미 이 이름이 나온다). 또 이스라엘 땅의 원주민들은 때로는 가나안 사람들로(창세 12,6), 때로는 아모리 사람들로 불린다(신명 1,19). 이 밖에 다른 것들도 있지만, 특히 지금까지 말한 상이성들이 서로 조합될 때, 성서의 전승들을 이어받은 여러 종교 집단들의 고유한 언어 습관들이 더욱 명백히 드러나게 된다. 신명기 훈계의 열정적인 문체는 레위 1 - 7장에 나오는 제의(祭儀)를 규정하는 기술적인 성격, 그리고 하느님께서 몸소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라는 말씀과 함께 당신 백성에게 순종을 요구하시는, 레위 19장에 나오는 계명들의 간결하면서도 장중한 형식과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문체의 특수성들은 거기서 말하는 내용이 달라서만이 아니라, 유일하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생활화하는 방식에서도 서로 다르다는 사실로써 설명되는 것이다.

 

    끝으로, 더욱 예술적인 면에서, 절제되고 간결하게 표현된 아브라함의 소명과 같은 이야기를(창세 12,1-4), 소설과도 같은 이사악과 리브가의 혼인 이야기나(창세 24) 요셉의 모험 이야기와(창세 37과 39 - 50) 비교할 수도 있겠다.

 

    이 모든 문학적인 현상들에서 오경이 최종적으로 정착될 때까지의 기나긴 저작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처음에는 성소들 곧 순례지들을 중심으로, 지파들 또는 이들이 모여 이룬 집단들의 구두 전승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왔을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구원 역사의 큰 사건들을 기념하기 위해서 성소로 모여들었다. 예컨대 파스카 축제 때는 에집트 탈출을 회상하고, 초막절에는 광야에서의 생활을 기념하였다. 시나이 계약법의 수호자이며 해석자, 그리고 모세 전통의 상속자인 사제들은 이 특수한 전통들의 보존과 전승에 주의를 기울였다. 이 전승들은 점점 하나로 이어지는 설화들 또는 더욱 큰 문학적 집합체로 뭉쳐지고, 이를 통해서 지파들 사이의 유대를 더욱 견고히 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통일성이 견고해짐에 따라 하느님을 섬기도록 운명지어진 이 민족 전체의 역사를 회상하는 더욱 광범위한 종합이 필요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종교적인 전통들과 문학적인 전통들이 결합하여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오경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 안에는 옛 전통들의 흔적이 계속 남아있고, 그 덕분에 이 오경 저작 역사의 여러 단계들에 대하여 구상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흔적들은 오경의 최종 편집자들이 예로부터 중시되어 온 전통들에 얼마나 충실했었는지를 증언해 준다.

 

    최종 편집 과정을 거친 오경은 거대한 강에 의해서 형성된 충적지(沖積地)에 비유할 수 있다. 연이어 쌓인 지층들은 각기 자기의 특수한 기원에 대한 자취들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학적 지층들을 구분하고, 이스라엘 민족 안에서 그것들이 탄생하게 된 기원 환경, 또 문학적으로 정착된 주변 상황들에 대한 가설을 세우는 것이 문학적인 분석 작업에 속한다.

 

    계약의 역사와 그 제도들에 대하여 각기 고유한 전망을 지닌 네 가지 주된 흐름이 오경 전체를 이루는 데 이바지하였다는 주장에는 오늘날에도 일반적으로 의견을 같이한다.

 

 

 

    (1) 후대(後代)의 전승

 

    가. 사제계 전승

 

    가장 쉽게 밝혀낼 수 있는 문학적 지층은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현재 오경의 기본적인 구조를 이루는 전승이다. 이 전승은 칠일간의 세상 창조로 시작해서(창세 1,1─2,4ㄱ) 모세의 죽음에까지 이르며(신명 34,7-9), 하나로 이어지는 족보를 중심으로 역사를 이룬다(창세 5,1과 각주 참조). 그리고 이 전승은 노아의 홍수와 계약에 이어(창세 9) 아브라함의 계약을 전하고(창세 17), 또한 선조들의 이야기와 모세에게 내린 하느님 이름의 계시 외에(출애 6), 에집트 탈출을 이야기하며, 그뒤에는 시나이산에서 모세의 중개로 이루어진 율법과 제의적 제도의 계시로 폭넓게 전개된다(출애 25에서 민수 10까지).

 

    이 전승이 지니는 문체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반복, 일정한 경직성, 숫자의 정확성, 족보와 명부, 그리고 제의와 전례를 돋보이게 하는 모든 것을 선호한다는 점 들이다. 성소와(출애 25─31과 35 - 40) 제사(레위 1 - 7), 그리고 아론과 그 자손들로 구성되는 성직자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레위 8 - 10) 사제 집단에 고유한 증언을 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이유로 이 전승에 사제계 전승(또는 문헌)이라는 명칭이 붙게 된 것이다(서양말에서는 독일어 Priesterschrift의 첫 글자인 P로 표기한다). 이 문학적 지층은 오랫동안 오경 전체의 전통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여졌는데(특히 오경 전체를 연결하는 기본 골격이 되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이 전승이 일부 옛 자료들을 전하고 있기는 하지만, 가장 후대에 정착된 것으로 드러난다. 사실 이 전승이 여러 제의적 제도에 주는 이미지와 유배 이후 공동체의 조직은 서로 부합된다. 그리고 유배라는 커다란 단절을 겪은 뒤에 유다인들의 공동체가 다시 만들어진 것은 바로 이 전승 체계에 따른 것이고, 에즈라 개혁의 기초가 된 문헌은 글로 쓰여진 이 사제계 전승의 본문이었으리라 여겨진다(느헤 8; 느헤 8,18과 레위 23,36 비교).

 

    이 사제계 전승은 오랜 구두 전승을 바탕으로, 바빌론 유배 기간 중에 예루살렘의 사제들이 다시 세운 성전에서 제의를 복구하려는 의도에서 문서로 정착되었을 것이다. 이 전승은 하느님께서 온 우주의 주인이시며, 모든 인간은 하느님을 섬기고 찬미하기 위해서 그분의 모습에 따라 창조되었다고 증언한다. 하느님께서는 노아를 통해서 온 인류와 계약을 맺으시고, 그뒤에는 뭇 나라의 선조로 삼으시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그와 계약을 맺으신다. 그분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들 가운데서 레위인들을, 그리고 그들 가운데서 특히 아론과 그 자손들을 선별하시어 백성 전체의 이름으로 제의를 거행하도록 하신다. 그리고 모세와 대사제 아론의 중개로써 하느님과 인간들 사이에 구원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은 그 위에 하느님의 영광이 자리잡고 있는 제단에서이다.

 

    이렇게 동일한 핵심을 지닌 계약들은, 완성된 오경이 장엄하면서 질서 정연하게 정돈된 모습을 갖추게 해준다. 그러나 이것은 깊이 구상된 시각이며 본래의 사건들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후대의 시각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일종의 기획 문헌이 오경 전통에서 가장 오래된 자료들을 배치하고 재구성하면서 오경 전체의 최종 편집에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다.

 

 

 

    나. 신명기계 전승

 

    두 번째 문학적 지층도 매우 쉽게 밝혀낼 수 있다. 이 지층이 다른 것들과 덜 혼합되었으며 매우 특이한 문체로 특징지어지기 때문이다. 신명기에 모아들여진 것이 바로 이 전승이다(서양말에서는 라틴어의 Deuteronomium의 첫 글자인 D로 표시한다). 율법의 가르침에 집중된 이 전승은 세상의 기원에 대한 역사를 구상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쓰이는 문학 유형은 순종에 대한 호소, 경고, 그리고 위협과 약속을 내포하는 설교이다. 율법의 다양한 규정들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라는 핵심적인 계명에(신명 6,5) 연결되어 있다. 또한 율법에 대한 이러한 가르침은 지속적으로, ‘오늘’을 위한 현실성이 강조되는(신명 1,10) 역사적 사건들과 관련된다. 에집트 탈출(신명 16,3), 선조들에게 주어진 좋은 땅에 대한 약속(신명 4,31), 그리고 세상의 창조(신명 4,32) 등이 그것이다. 아울러서 이 가르침은 금송아지 사건을 비롯해서 백성이 광야에서 보인 불충함까지 상기시킴으로써(신명 9,7 이하), 이스라엘에게 삶과 죽음 가운데 하나를 신중히 고르게 한다(신명 30,15 이하).

 

    이 전승은 이스라엘의 성소가 하나뿐이어야 함을 강조하는데(신명 12), 이러한 사실은 이 문학 작품이 요시야 임금이 기원전 622년에 수행한 전례 개혁과 관련이 있음을 드러낸다(2열왕 22-23). 물론 이 개혁의 바탕이 된 ‘율법서’는 현재의 신명기가 아니라, 신명기의 모태가 된 짧고 초보적인 문헌에 불과했을 것이다. 어쨌든 이 전승이 레위인들(신명 18,1-8), 특히 율법의 보유자이며(신명 17,18; 33,8-11) 모세와 같이 설교자인(신명 27,9) 그들이 수행하는 일에 큰 관심을 기울인다는 사실은, 이 전승이 지방에 있었던 옛 성소들에서 봉직하면서 모세가 내린 가르침의 대변자였던 레위인들의 집단 안에서 전승된 것임을 드러낸다. 이 전승은 북부 왕국의 멸망(기원전 722년) 직후 유다 땅으로 도망한 북부 레위인들 사이에서, 또는 다른 학설에 따르면, 예루살렘 궁정과 가깝게 지내던 현인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문서화하였을 것이다. 그뒤 유배시대에 이르기까지 이 신명기계 문헌은 수차례에 걸쳐 발전되고 확장된다(신명 4,25 이하).

 

    오랜 기간 동안 계속된 이 신명기계 편집 작업은 신명기에만 관계된 것이 아니다. 이 작업으로, 그 문체나 용어에서 알아볼 수 있듯이, 출애굽기(예컨대 출애 12-13; 32-33) 그리고 심지어 창세기에까지(창세 18,17-19) 오래된 여러 단락들이 첨가된다. 또한 이 신명기계 작업은 여호수아서, 판관기, 사무엘서와 열왕기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에집트 탈출 이후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 것에서 시작하여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유다 왕국이 멸망하는 시점에까지 이르는 역사를 종합해 낸다. 이러한 대 종합의 서론이 신명기의 처음 세 장에 들어있다. 이렇게 하여 유일하신 하느님, 약속에 대한 그분의 성실성, 손수 땅과 그 제도들을 주신 민족에 대한 무상적 선택, 그리고 실천하는 이들에게는 생명과 기쁨의 원천이 되는 율법을 강조하는 성서 전통에 대한 신명기적인 모습은 구약성서 전체의 증언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2) 전대(前代)의 전승

 

    사제계 전승과 신명기계 전승보다 더 오래된 부분들을 고찰할 때, 비록 그 범위가 넓지는 않지만 그것들이 또 다른 기원에서 유래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문학적인 지층들을 가려내기가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어렵다. 그것은 최종 편집 과정에서 이 지층들을 권위를 지닌 부분들로서 전체 속으로 통합시키기 위하여 분산 배치시켰기 때문이다. 이들의 문학적 특징들에서 오경 전승의 첫 두 가지 형식을 알아볼 수 있다. 이들 가운데 하나는 상대적으로 잘 보존되어 있지만, 다른 하나는 단편적인 상태로밖에 남아있지 않다.

 

 

 

    가. 야훼계 전승

 

    그 첫 문학적 지층은 하느님을 태초부터(창세 4,26) 그분의 고유한 이름으로 부르는 전승에서 유래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 전승을 야훼계라 한다(서양말에서는 독일어식 표기인 JHWH 또는 Jahweh의 첫 글자인 J로 표기한다). 이 전승 역시 사제계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문학적인 지층처럼, 인간의 창조로 시작되는 태초부터(창세 2,4ㄴ-25) 모세의 죽음에까지 이르는 역사를 이야기한다(신명 34,5-6). 이 전승의 첫 부분은 삶을 누리도록 창조되었지만(창세 2) 하느님께 대한 순종의 거부와(창세 3) 폭행으로(창세 4) 낙인찍힌 인류라는 틀 속에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한다. 하느님께서 인내심을 가지시고 죄인인 인간들을 받아들이신다는 것이 노아와 그 자손들에게 보장되는데(창세 6─8), 이는 장차 그분께서 모든 민족들을 위해서 아브라함에게 내리실 복을 지향하는 것이다(창세 12,1-4ㄱ). 아브라함과 야곱 이야기는 하느님께서 하신 약속을 믿는 이들에게,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준다. 불타는 떨기 곁에서 이루어진 모세의 파견 장면을 시작으로(출애 3) 이 야훼계 전승은 하느님과 파라오 사이의 긴 대결, 그것에 이어지는 에집트에서의 탈출과 바다 횡단(출애 14), 그리고 시나이까지 이르는 광야의 여정 중에 일어난 몇몇 사건들을 나름대로 전하고 있다. 이 시나이에서 모세와 원로들은 하느님과 함께 계약을 맺는 잔치를 베풀고, 그분에게서 (아마도 출애 34,14-26 속에 축약된 형식으로 내포된) 율법을 받는다. 이 전승은 또한 시나이에서 약속의 땅까지 이어지는 광야 여정의 마지막 이야기(민수 11과 그 이하), 그리고 발람 이야기에서도 발견된다(발람의 네 번째 신탁: 민수 24,15-29).

 

    야훼계 전승의 서술에는 일정한 성소들, 그리고 씨족의 민속 설화와 관련된 구두 전승의 생생함과 다양성이 보존되어 있다. 이 전승은 구체적이고 화려하며, 다채롭고도 순진하기까지 한 문체로 특징지어진다. 이는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의 문체로서(창세 9,18-27에 나오는 노아의 아들들에 대한 이야기, 창세 11,1-9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 참조), 그 저자는 인간에 대해서 말하듯 하느님께 대해서도 표현력이 풍부한 용어들을 망설이지 않고 쓴다. “그들은 주 하느님께서 산들바람 속에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들었다”(창세 3,8); “주님께서 노아 뒤로 문을 닫아주셨다”(창세 7,16); “그(= 아브라함)가 눈을 들어보니 자기 앞에 세 사람이 서있었다”(창세 18,2). 이러한 야훼계 전승의 독창성은 이 다양한 이야기들을 약속에서 그 성취로 향하는 하나의 역사로 구성하는 데에 있다. 인간이 저지르는 죄악도,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단죄도 감추지 않고, 이 전승은 당신의 강복을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과 관련지으심으로써 그 복이 세상 모든 민족들에게 미치도록 하시는 하느님의 구원 행적을 증언한다.

 

    이 전승의 기원과 문서화한 시기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많다. 어쨌든 편집은 여러 단계를 거쳤을 수 있다. 자기 형제들을 다스리리라는 영원한 약속이 유다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은(창세 49,10; 그리고 37,26 참조) 이 전승의 기원을 유다에서, 특히 다윗 왕조와 가까운 집단에서 찾아야 함을 가리키는 지표일 수 있다. 야훼계 전승은 다윗 왕국에게, 수많은 민족들을 다스리는 나라가 된 것은 하느님의 약속 덕분이며, 이제는 스스로 세상의 다른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복을 전달하는 존재가 되어야 함을 상기시키려는 의도를 지닌 것으로 여겨진다.

 

 

 

    나. 엘로힘계 전승

 

    가끔 야훼계 문학적 지층과 결합된 여러 설화 단편들은 하느님에 대해서 말할 때, ‘야훼’라는 이름의 계시가 내려질 때까지, 그분의 일반적인 명칭인 ‘엘로힘’을 사용함으로써 구분된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 문학 지층에 엘로힘계라는 이름이 주어졌다(서양말에서는 Elohim의 첫 글자인 E로 표기한다). 이 전승은 또 다른 문학적인 특징들을 지니고 있어서, 몇 개의 중요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아비멜렉지방에 체류한 아브라함(창세 20), 아브라함의 제사(창세 22), 아마도 요셉 이야기의 많은 부분(창세 50,20 참조), 그리고 모세의 유년기(출애 2), 하느님 이름의 계시와(출애 3,14), 모세의 장인 이드로와 관련된 이야기(출애 18) 들이다. ‘계약의 법전’이라(출애 20,22─23,33) 불리는, 오경에서 가장 오래된 율법집이 바로 이 엘로힘계 문학 지층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이후에 계속되는 엘로힘계 전승을 구분해 내는 일은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이 전승을 야훼계 전승에서 나누어내는 것을 포기해야 할 정도이다.

 

    어쨌든 이 몇몇 이야기들은 특수한 전망을 드러낸다. 이것들은 먼저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거리가 있음을 드러내고, 인간적인 활동에 하느님 자신을 끌어넣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천사, 그리고 심지어는 인간을 그분 대신에 개입하도록 하며(창세 22,11-18; 32,23-33), 때로는 하느님께 무서운 면이 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 전승은 이러한 하느님 앞에 선 인간의 올바른 자세를, 흔히 밀접한 관계와 동시에 순종을 뜻하는 ‘경외심’이라는 용어로 상기시킨다(창세 20,11; 22,12). 그런데 이 용어는 엘리야 및 엘리사 예언자와 가까운 집단의 신심을 특징짓는 것이다(1열왕 18,3; 2열왕 4,1). 예언자의 모습은 모세의 구실(민수 11,25) 또는 아브라함의 구실까지도(창세 20,7) 서술하기 위한 본보기로 쓰인다. 그리고 이 전승의 흐름은 흔히 북부 이스라엘 왕국에서 유래한다고 말해진다.

 

    그래서 엘로힘계 전승은 기원전 722년에 일어난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 직후 유다에 받아들여졌다고 추측할 수 있다. 야훼계 설화의 마지막 편집자가 이 엘로힘계 자료들을 자기의 편집에 포함시켰으리라 여겨진다(그래서 서양말에서는 이 편집자가 때로 JE라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 자료들이 본디 서로 독립된 단락들이었는지, 아니면 원래 일관성 있는 작품으로서 그 가운데 많은 부분들이 이 편집 과정에서 희생되었는지 알 길은 없다.

 

 

 

    (3) 오경의 최종 저작 과정

 

    하느님 자신의 유일성에 기초를 둔 하느님 백성의 통일성은 결국 오경 전통의 이 다양한 자료들이 필연적으로 점진적인 결합을 이루도록 만들었다. 이 결합은 여러 세대의 편집자들이 작업한 결과이다. 이들은 전체를 다시 짓고 고쳤지만, 선조들의 유산을 하나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옛 증언들의 특수성을 가능한 대로 존중하도록 그들을 이끌었다.

 

    오경의 저작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 다른 가설들이 세워지기도 하였다. 어떤 신앙인들은 모세가 오경 전체를 작성하였다는 옛 의견을 따르는 반면, 어떤 학자들은 여러 율법집의 복합성을 무엇보다도 먼저 본디 독립적으로 존재했던 부분들의 배합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이러한 주장을 ‘단편 가설’이라 부른다). 또 다른 이들에 따르면 완성된 전체의 일관성은 무엇보다도 어떤 기초적인 문헌의 존재를 전제한다. 이 저술은 이후 오랜 기간을 거치면서 확대되었다는 것이다(이러한 주장을 ‘보충 가설’이라 부른다). 이러한 전망들 가운데서 그 어떤 것도 논의에서 제외될 수는 없지만,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연속적인 문학적 지층들을 관통하는 편집이 오늘날 오경의 통일성과 동시에 다양성을 설명하는 데에 가장 적합한 가설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 가설은 이 방대한 작품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줄 뿐더러, 이 작품의 메시지를 동일한 신비에 대해 여러 가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여 알아듣게 해준다. 곧 어떤 것은 더욱 심리적인 것으로(야훼계 전승), 어떤 것은 하느님의 초월성을 돋보이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으로(엘로힘계 전승), 또 다른 것은 법적 그리고 제의적인 현실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는 것으로(사제계 전승), 그리고 마지막 것은 하느님의 선택과 사랑을 보여주는 것으로(신명기계 전승) 드러내 주는 것이다.

 

 

 

    4. 오경의 의의

 

    (1) 역사의 종교적 의미

 

    오경은 역사와 동시에 율법으로 제시된다. 이 말은 오경이 교의신학적인 논술의 형식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시편의 기도들은 하느님을 찬미하며 그분의 도움을 간청하고, 지혜문학서들은 개인의 도덕적, 종교적 교육을 목표로 삼는다. 또한 예언서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힘차게 선포하고 이스라엘과 세상의 죄악을 강력히 고발한다. 이에 반해 오경은 우리에게 어떤 한 민족을 드러내 보여주면서, 하느님께서 이 민족을 어떻게 세우고 보호하셨으며 또 어떻게 기적적인 운명을 향해서 이끄셨는지 말해 준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이 민족, 그리고 이들을 통해서 온 인류와 맺고 유지하신 관계 속에서 이 책의 의미가 발견되는 것이다.

 

    오경의 백성은 거룩한 민족, 곧 전적으로 하느님께 봉헌된 백성이다. 이 백성의 모든 것은 하느님께 달려있다. 고대 근동의 종교생활에서 아무리 중요한 일을 수행한 제도라 할지라도, 예컨대 왕권조차도 이스라엘에서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지극히 높은 권위는 하느님의 말씀, 곧 모세가 그 중개자였고 사제들이 전승하였으며, 예언자들이 선포하였고 끝으로 율법서에 보존된 말씀만이 지니고 있다. 이 율법은 단순히 법적인 계율들이나 종교 의식, 또는 규정들로 귀착시킬 수 없다. 그것은 이 율법이 하나의 역사에서 탄생하였고, 또한 계속해서 그 역사 속으로 다시 끼어들기 때문이다. 율법은 한 민족을 택하시어 당신 모습에 따라 만드신(“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레위 11,45) 하느님의 교육이며, 결국은 이 백성의 종교적인 사고의 표현이기도 하다.

 

 

 

    (2) 오경의 그리스도교적 이해

 

    이스라엘 백성이 온 세상에 흩어짐과 더불어 율법서는 이 민족을 하나로 묶는 통일성의 기초가 되고, 이스라엘을 한 민족으로 존립시키는 요소로 대두된다. 그리하여 오경의 법률적인 면들이 강조된다. 토라, 곧 온 세상에 퍼져있는 유다인들의 일상생활을 주재하면서 이들이 한 민족이 되도록 해주는 율법에 대한 성실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랍비들의 이러한 해석이 보편주의를 거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이 보편주의는 유다 민족을 그 중심점으로 하면서 율법에 대한 성실성을 전제할 뿐이다. 이러한 전망 속에서 율법의 현실성이 돋보이게 된다.

 

    유다교가 지니는 이러한 항구한 가치 외에, 이제 그리스도교 해석에 따라서 또 다른 형태의 보편주의가 시작된다. 그리스도교에서는 구약성서의 약속들이 이미 지켜졌다. 곧 이 약속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고, 새로운 계약이 옛계약을 마무리지은 것이다. 첫 번째 계약의 율법은 이제 역사의 한때에 속한 것이었음이 드러나는 한편, 교회가 이방인들에게 개방됨과 더불어, 하느님의 말씀은 이 역사의 전체적인 지속성으로 세상에 내려진다는 생각이 강조된다. 이는 하느님의 백성을 이루는 하나의 과정으로서, 이 과정은 멈추지 않고, 완성될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다.

 

    하느님의 은혜는 영원하다. 그래서 유다 백성은 그분께 받은 것을 잘 보존해야 한다. 그러나 이제 그들만이 토라를 통해서 하느님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을 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완성하러 오신(마태 5,17) 예수님을 통해서 육화한 하느님 말씀을 알아듣는다. 이들은 율법 안에서 자기들의 역사를 발견한다. 이들 역시, 파스카날에 그리스도에 의해서 성취된 구원과 함께, 하느님 나라를 고대하며 살아가는 여정에서 공동체를 이룬다. 이들 역시 자기들의 생명이 계약으로써, 곧 그리스도께서 이들을 위해서 맺으신 계약으로써 결정되었음을 안다. 이들 또한 하느님의 말씀, 그리고 그분의 자비와 성실의 징표에서 양식을 얻는다. 오경이 증언하는 사건들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교회 안에 이루실 업적을 미리 알리고 보인다. 그리고 옛계약의 제도들 역시 새계약의 제도들을 준비하고 그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드러낸다. 성전과 전례에 대해서 말해진 것은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리스도의 몸, 곧 하느님의 영광이 그 위에서 빛을 내는 새로운 성소에 적용된다(요한 2,21). 그리하여 오경은 계속해서 오늘의 인간들에게도, 아브라함의 신앙을 함께 나누고, 온 인류를 위해서 이 선조에게 내려진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이들에게도 생명의 원천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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