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연중 15주일(농민주일)

인쇄

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1-07-14 ㅣ No.15

7월 15일 일요일

 

연중 제15주일 (농민 주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농촌을 살리고, 물질 문명에 대조되는 정신 문화의 발전을 강조함으로써 우리 사회를 인간화하는 데에 기여하고자 1995년 7월 셋째 주일을 ’농민 주일’로 정하였다. 이 날은 농촌을 위한 특별 헌금을 한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가장 큰 계명입니다. 유다인들은 이미 그것을 알았지만 그들은 같은 핏줄,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만이 이웃이라고 믿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배타주의에서 벗어나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하느님 사랑이며 이웃 사랑입니다.

 

 

+ 입당송

 

 * 저는 의로움으로 주님 얼굴을 뵈오리다. 깨어나 당신을 뵈옴으로 흡족하오리다.

 

 

+ 본기도

 

하느님, 길 잃은 사람들에게 진리의 빛을 보이시어 올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시니,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는 모든 이가 그 이름에 어긋나는 것을 버리고 올바로 살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 길라잡이

 

예수님께서는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는 율법 교사의 물음에 답하시려고 한 예화를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대화 상대자는 생명을 위한 길이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요구를 실천하는 데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율법 교사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 무엇인지 구체적이고 분명한 대답을 예수님께 요구한다.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웃에 대한 편협한 생각을 드러내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길 가던 한 사람이 강도에게 습격을 당하여 모든 것을 빼앗기고 반쯤 죽임을 당한 채 길가에 버려졌다. 이스라엘의 종교를 대표하는 두 사람이 차례로 그 곳을 지나쳐 갔다. 그 사람의 이웃이 된 사람은 누구냐 하는 이론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종교의 대표인 두 사람은 아무도 그 상처입은 사람을 도와 주지 않은 것이다. 그를 돕고자 멈춘 사람은 외적으로는 윤리나 종교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은 어떤 사마리아인이었다. 그에게는 결의론적인 문제보다는 불행한 처지에 놓인 사람이 중요했다. 율법 교사는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은 그 사마리아인이었다고 고백한다.

이웃에 대한 놀라운 정의이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예수님께서 방금 전에 말씀하신 것을 다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우리는 더 이상 자기 기준에서 이웃을 정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이웃은 다른 사람에 대한 자신의 태도에 따라 결정된다. 이것은 복음이 가져온 가치 기준의 전도, 대전환이다. 이 전환만이 인간의 발걸음을 하느님께 향하게 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상처입은 인류와 동일시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인류를 불쌍히 여기셨다. 이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이웃이 되어 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침묵하고 계시는 동안, 우리의 능력으로는 그분을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하느님 말씀은 허공에 울리는 빈 소리가 아니라 인간의 귀에 울리고 인간의 마음을 파고든다. 하느님 말씀은 바로 우리가 가까이에 있다(제1독서).

 

골로사이인들은 자신들의 철학(영지주의)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하느님의 힘이 단계적으로 천사들, 사람들 그리고 물질로 확장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역시 이러한 단계 안에 넣으려고 했다. 비오로 사도는 그리스도를 하나의 철학과 동일시하려는 그들의 태도를 비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사고 체계 안에 넣어 생각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있어 왔다. 그러나 예수 그스도께서는 전혀 다른 차원의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인류의 원천이시다.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의미를 지닌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죽음에서 부활하신 유일한 분이시다. 그분과 함께 새로운 인류가 생겨났고, 이 새로운 인간의 역사는 변경할 수 없는 것이 되엇다(제2독서).

 

누가 이웃인가?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자신이 이웃이다. 이웃은 누구에게나 다가가는 사람이다. 멀리 있는 사람에게, 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이가 곧 이웃이다. 잘 조직되어 있는 자선 단체, 또 훌륭한 지향을 가지고 있는 종교 단체들의 활동이 있어도 인류는 억압받고 멸시받으며 길가에 버려져 있다. 인간은 더 이상 제도적이고 형식적인 신심만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 무관심 속에 버려진 형제들을 위하여 일어나고 또 그들을 일으키며, 강하고 참된 사랑을 실천하고자 헌신해야 한다. 사랑은 모든 장애를 이기며 친구와 적을 구별하지 않는다(복음).

 

 

 

<그 법이 너희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어, 하려고만 하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30,10-14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너희 주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 이 법전에 기록되어 있는 그의 계명과 규정을 지키고 너희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쏟아 너희 주 하느님께 돌아오너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내리는 이 법은 너희로서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거나 미치지 못할 일은 아니다. 그것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다. ’누가 하늘에 올라가서 그 법을 내려다 주지 않으려냐?

그러면 우리가 듣고 그대로 할 터인데.’ 하고 말하지 마라. 바다 건너 저쪽에 있는 것도 아니다. ’누가 이 바다를 건너가서 그 법을 가져다 주지 않으려나? 그러면 우리가 듣고 그대로 할 터인데.’ 하고 말하지 마라.

그것은 너희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너희 입에 있고 너희 마음에 있어서 하려고만 하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없는 이들아, 주님을 찾아라. 너희 마음은 살리라.

○ 주님, 저는 은혜로운 때에 당신께 비오니, 그 넓으신 자비, 진실한 사랑으로 저를 도우소서. 임의 자비하심 너그러우시니, 주님, 제 기도를 들어 주소서. 그 사랑 지극하시니, 저를 굽어살피옵소서. ◎

○ 가여울쏜 저는 애처로우니, 하느님 도와 주시어 일으키소서. 하느님의 이름을 노래로 제가 찬미할 제, 사은의 송가로 당신을 찬미하리이다. ◎

○ 없는 이 보고들 즐거워하여라. 주님을 찾는 너희 마음에 생기를 돋워라. 가난한 이의 소청을 들어 주시고, 사로잡힌 이를 어여삐 여기시는 주님 아니시냐. ◎

○ 하느님께서는 시온을 구하시리라. 유다의 고을들을 이룩하시리라. 당신 종들 후손이 대대로 이어받아, 그 이름을 받드는 자 거기에 머무르리라. ◎

 

 

 

<만물은 그분을 통해서 그리고 그분을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골로사이서 말씀입니다. 1,15-20

 

그리스도께서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이시며 만물에 앞서 태어나신 분이십니다. 그것은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 곧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왕권과 주권과 권세와 세력의 여러 천신들과 같은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모두 그분을 통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만물은 그분을 통해서 그리고 그분을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그분은 만물보다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속합니다.

그리스도는 또한 당신의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의 시작이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최초의 분이시며 만물의 으뜸이 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완전한 본질을 그리스도에게 기꺼이 주시고 그리스도를 내세워 하늘과 땅의 만물을 당신과 화해시켜 주셨습니다. 곧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의 피로써 평화를 이룩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알렐루야.

 

○ 주님, 당신의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시니, 주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고 계시나이다.

 

◎ 알렐루야.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 루가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5-37

 

그 때에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선생님, 제가 무슨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율법서에 무엇이라고 적혀 있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었느냐?" 하고 반문하셨다. "’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여 주님이신 네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였습니다." 이 대답에 예수께서는 "옳은 대답이다. 그대로 실천하여라. 그러면 살 수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율법 교사는 짐짓 제가 옳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 사람이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고 마구 두들겨서 반쯤 죽여 놓고 갔다.

마침 한 사제가 바로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는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또 레위 사람도 거기까지 왔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길을 가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그의 옆을 지나다가 그를 보고는 가엾은 마음이 들어 가까이 가서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주고는 자기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서 간호해 주었다. 다음 날 자기 주머니에서 돈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잘 돌보아 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아 드리겠소.’ 하며 부탁하고 떠났다.

자, 그러면 이 세 사람 중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 준 사람은 누구였다고 생각하느냐?"

율법 교사가 " 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강론

 

 

찬미예수님!

 

성서!  

한문으로 거룩한 책이라는 이 성서를 많은 사람들은 "사랑의 책"이라 부릅니다.

그 이유는 성서에서 우리는 우리 인생의 참 의미와 삶의 양식인 사랑을 늘 우리 인간의 삶과 동떨어지지 않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무한한 내어주심을 통해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은 복음과 독서 말씀을 통해서 당신 사랑의 참 의미와 풍성한 실천의 기쁨에로 우리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어느 시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모든 동물들은 자연을 먹고, 자연을 입고 ,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지만, 모든 사람들은 사랑을 먹고 , 사랑을 주며, 그리고 사랑과 더불어 살아간다."

 

제가 그리 텔레비젼을 자주 보지 않지만 좋아하는 프로가 두 개가 있습니다.

바로 " T.V는 사랑을 싣고"와 "동물의 왕국"입니다.

이 두 프로를 보면  방금 인용한 시인의 말이 커다란 공감을 가져오게 합니다.

 

T.V는 사랑을 싣고는 연예인, 유명인들 그리고 정치가나 예술가들이 등장하여, 자신들이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깊은 사랑의 추억을 주었던 분들을 찾는 감동적인 프로그램입니다.

사연중에는 어려웠던 시절 가난하여 수학여행비가 없어 애태우던 어린 학생의 책상서랍에 수학여행비를 남몰래 넣어주신 담임 선생님, 도시락을 못 싸올 때 늘 자신의 도시락을 나누어 주었던 여자 짝꿍 등 수십년이 지나도 자신이 어려울 때 받은 작고도 아름다운 사랑은 지금도 주름이 잡힌 매마른 얼굴을 감사의 눈물로 촉촉히 젖십니다.

 

이러한 사랑의 추억들\\ 특히 외롭고 힘든 십자가의 순간의 따스한 사랑은 비단 위의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출연자만이 소유한 것이 아니라 여기 있는 우리 각자에게 모두 간직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사랑의 은인들은 오늘 복음 말씀 안에서 "어떤 사마리아인"으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사마리아인은 누구입니까?

 

저의 어린 시절 저에게 잊지 못할 사랑을 주신 저의 사마리아인을 이 시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막 중학교를 입학하면서 동생의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동생의 입원 생활로 \\동생은 어머니와 병원에서 \저는 아버지와 집에서 이산가족 처럼 살았습니다.

온 가족이 동생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야 했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사춘기가 시작되는 저에게 관심을 주는 가족은 없었습니다.

친척도 있지만 너무 먼곳에 있고 친하지도 않아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점차로 학교성적도 떨어져가고 오락실 출입이 잦았지만 아무도 저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기억으로 새벽에 도시락 싸는 것이 너무나 귀찮고 지겨웠습니다.

생일이나 가족이 함께 모이는 명절 때면 오히려 더 외롭고해서 힘들었습니다.

병원에 가셔서 늦게 돌아 오시는 아버지의 어깨를 바라보면 무척이나 슬펐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설날 혼자서 라면을 먹고 있던 제게 누군가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이웃에 사는 아주머니셨습니다.

그 두 손에는 커다란 병에 식혜와 빈대떡이 들려있었습니다.

"힘들지 혼자 있니? 동생은 좀 어떠니? 이거 아버지 오시면 함께 데워 먹어라! 그리고 오락실 조금만 다녀! 오락실에서 살지 말고."

 

그 날 밤 저는 실컷 식혜를 먹었습니다.

먼 훗날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분은 레지오 활동하는 분이셨습니다.

 

저는 지금도 가끔 식혜를 먹을 때면 그 어느 설날 늦은 저녁의 식혜의 맛을 떠올리게 됩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날의 고마움은 제게 깊은 감명을 주었고 그 때부터 동생을 위해 묵주기도를 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저는 오늘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묵상하면서 그 사마리아인의 주머니에서 그 불쌍한 이를 위해 써달라며 꺼낸 돈 두 데나리온이 저에게는 바로 그 설날 저녁에 두병의 식혜가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참 많은 것을 하느님과 이웃들에게 거저 받습니다.

당신 아드님을 우리 죄사함을 위해 공짜로 주신 십자가의 선물의 사랑.\\

이 사랑은 우리가 살아가야할 구체적인 삶의 요소 요소에 숨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백성이며 자녀인 우리는 바로 이 사랑의 계명을 통해서 이 세상에서 하느님을 증거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신자로서 살아가면서 이 사랑의 의무가 자신에게 부담스럽게 느껴진 적이 없습니까?

그런 유혹을 받을 때 여러분이 하느님과 이웃에게 받은 두 데나리온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이웃사랑은 결코 어렵거나, 추상적인 것이 아님을 신명기는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내리는 이 법은 너희로서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거나 미치지 못할 일은 아니다.

그것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다.

’누가 하늘에 올라가서 그 법을 내려다 주지 않으려나?"\\

그러면 우리가 듣고 그대로 할 터인데’하고 말하지 말라, 바다 건너 저쪽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너희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너희 입에 있고 너희 마음에 있어서 하려고만 하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얼마전 기사를 통해 I.M.F의 한파로 점심을 못싸오는 어린 학생들의 수가 2만 8천여명에 이른다는 기사를 접하면서 무척이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구조조정, 경쟁력강화등의 이성적인 정책을 정부는 제시합니다.

국민 모두 이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까 고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의 어려운 이웃들을 대할 때 인간적 동정이나 연민이 아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이 많은 것을 하느님께 거저 받았으니 우리의 형제인 이웃에게 역시 거저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른 아침 도시락을 쌀 때 도시락을 가져올 수 없는 우리 자녀의 짝꿍을 위해 하나 더 싸줄 수 있는 작고도 따스한 정은 어떨까요?  

 

이제 사랑이신 예수님의 초대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이웃이 되어 준 사람이 누구였다고 생각하느냐?"

율법교사가 "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푼 사람입니다"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 예물기도

 

주님, 교회가 바치는 예물을 굽어보시고, 성체성사로 신자들에게 성덕을 더해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참새도 집이 있고, 제비도 새끼 두는 둥지가 있사와도, 제게는 당신의 제단이 있나이다. 만군의 주님, 저의 임금님, 저의 하느님, 주님, 당신의 집에 사는 이는 복되오니, 길이길이 당신을 찬미하리이다.

 

<영성체 후 묵상>

우리 그리스도인은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이해 관계에서 벗어나, 도움이 필요한 누구에게나 자신을 기꺼이 내어 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 마침기도

주님, 거룩한 선물을 받고 비오니, 성체를 자주 모심으로써 저희 구원의 열매가 날로 자라게 하소서. 우리 주......



122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