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23/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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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3-07-15 ㅣ No.5458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23/07/24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살려면 이렇게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해왔던 것들이, 진정 그 방법밖에 없는 것이었을까 가끔 자문하게 됩니다.

 

오늘 독서를 보면 이스라엘이 드디어 이집트 땅에서 탈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집트 노예살이의 경계가 홍해 바다였으므로, 이스라엘은 해방과 주 찬미를 위해 홍해 바다에 빠져들 것인가? 아니면, 현실적으로 살려면 어쩔 수 없이 이집트의 노예살이를 계속해야 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귀로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돌리기 위해 향한 이 해방의 순간에 주님께서 함께해 주시고 대신 해결해 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워 주실 터이니, 너희는 잠자코 있기만 하여라.”(탈출 14,14)

 

뒤에서는 이집트 군인들이 이스라엘을 다시 잡기 위해 쫓아오고 앞에는 홍해 바다로 가로막힌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선택해야만 합니다. 자유를 가져다주는 현실의 죽음이냐, 굴종을 통해서라도 현실의 노예살이를 계속할 것인가?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일러라. 너는 네 지팡이를 들고 바다 위로 손을 뻗어 바다를 가르고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 가운데로 마른땅을 걸어 들어가게 하여라.”(15-16)

 

주님을 따른다고 해서 현실의 장막이 오늘 독서에서처럼 드라마틱하게 걷히고, 지금 당장 우리 앞에 평평대로가 펼쳐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때는 주위 환경이 아니라 스스로 죄악에서 탈출과 삶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해 장벽과 한계 속에 갇혀 있을 때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나 예언자는 스스로의 거부로 큰 고기의 배 속에서 사흘을 보내게 됩니다(마태 12,40).

 

주위 상황이 변화되며, 자신이 마음을 잡고, 주 하느님을 찬미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생명의 길을 열어주시고, 마침내 구해주시는 주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여, 기꺼이 주님의 길을 걸어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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