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의 방-old

어느 선교사 사제의 편지..(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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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7-01-15 ㅣ No.32

친애하는 친구에게.

나는 중앙 아프리카의 한 수도원에서
일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비행해 왔다네.

내가 온 '부카부'의 수도원은 1966년 하데비히 수녀에
의해 세워져 1982년 2월 16일에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공인 받은,
예수 부활을 증거하고 전교 하는 수도원으로서 하데비히 수녀는
그 해 8월22일 만장일치로 초대 수녀원장으로 뽑힌 분이라네.

이 역사 짧은 수도원은 불과 16년 사이에 1백 여 명의
수녀지망자들과 50 명의 수련수녀들, 그리고 10명의 수녀들을
수용하고 두 채의 수도원 건물을 갖출 만큼 성장했다네.

하느님은 우리에게 이 새로운 아프리카 오지의
수도원에서 일할 좋은 기회를 주신 셈이지.

그런데 한편으로는 하느님은 우리에게 먼저 치명적인 불행을 겪게 하였다네.

그것은 우리가 탄 조그만 두 개의 프로펠러가 달린 포교전용 비행기가

마지막 1천4백Km의 여정을 남겨둔 때 일어난 일이었다네.

우리 비행기는 6시간30분 이상을
원시림이 빽빽한 아프리카 밀림지역 상공을 날아가야 했는데
'키부'에 갈 때까지는 모든 상태가 좋았었다네.

우리가 내릴 '부카부'의 '키부'호수도 안개와 구름사이를 통해 멀리 보였다네.

그때 우리 비행기가 갑자기 어딘지 모를 고장을 일으킨 걸세.

공항관제탑에서는 아무런 지시도 들리지 않았는데
아마도 연료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기내의 전력이 약해진 탓이었던 모양이야.

약 3분 간 우리는 목표인 호수를 찾기 위해
구름사이를 뚫고 급강하면서 산과 분화구 사이를 날았지.
그러나 열 번 스무 번 이상 시도했지만 우리는 계속 헛돌기만 했어.

우리는 몇 번이나 이리저리 비행했지만
언제나 가파른 경사지와 빽빽한 원시림 밖에 발견할 수가 없었다네.

그 때 나는 묵주기도를 드리면서 성모님의 도움을 애원하기 시작했었지

그 때 우리는 구름사이로 조그만 땅이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네.
우리는 산비탈에서 불과 20m 떨어져 아슬아슬하게 날아
통나무집 곁을 지나 낮게 하강할 수 있었지.
통나무집에는 흑인 가족들이 놀라 뛰어나와 대피하는 모습도 보였어.

그러나, 우리 비행기는 바나나 나무 꼭대기를 미끄러지듯 부딪히며
이리저리 공중에서 지그재그로 날았어.
아무런 비행상황도 모른 채 장님처럼 산 사이를 장님비행을 얼마 동안 했을까?

근 한시간 반 동안이나 장님비행을 한 뒤에
우리는 이제 최후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지.

기름은 얼마나 남았을까?

나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하데비히 수녀원장과 유럽에 남아있는 동료친구들을 생각했었지.

그 순간에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비록 죽음을 걱정하지만,
어떤 환난 속에 빠지더라도 나의 피난처는 성모님이라는 생각을 했다네...

하나의 서약과도 같이. 그 때 문득 구름사이로 조그만 틈이 보이면서,
햇볕 속에 우리가 그렇게도 목마르게 찾아 헤매던
'부카부'에 있는 '키부'호수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아! 드디어 우리는 급강하, 호수를 찾아내었고
호숫가를 따라 간신히 공항으로 날아갈 수가 있었던 것일세,

우리가 공항에 착륙했을 때
우리는 겨우 10 분 간 더 날을 수 있는 연료만 남기고 있었다는 군.

나는 과연 마리아에게 무엇을 서약해야 할 것인가!

나는 성모님에게 우리가 아프리카에서 일을 할 동안
최선의 봉사를 다할 수 있도록 해주시고,
우리를 격려해 주시며 날마다
묵주기도를 올리게 해달라는 기도의 말씀을 드렸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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