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샨약 사목 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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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03-02-12 ㅣ No.83

 

 

샨약 사목 서간

 

 

-백광진 신부님의 인터넷 성서 자료 참조

 

 

 

바오로의 협력자 디모테오와 디도

'사목 서간'이라고 이름 붙은 바오로의 서간들은 디모테오에게 보낸 두 편지와 디도에게 보낸 편지이다. '영혼의 목자들' 곧 교회의 책임자들이요 신자들의 영성적 통솔을 관장하는 이들에게 보냈다고 해서 '사목 서간'이라고 일컫는다. 영혼의 목자들이 이 막중한 사명을 다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내용이다. 바오로의 두 충실한 협력자에 관해서는 우리도 이미 알고 있다. 디모테오는 리스트라 출신으로 유다인 모친과 이방인 부친 사이에서 태어났다. 바오로의 제1차 전도여행 때에 개종하였는데 제2차 전도여행중 바오로가 소아시아 교회들을 순방할 때에 그와 동행하였다. 디모테오는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에게서 이스라엘의 참 하느님을 배웠고(2디모 1, 5) 바오로에게서도 하느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을 배웠다. 당시에 그는 침착하고 신중하고 약간 소심하였으나 멋진 청년이었으며 교우들 사이에 평판이 좋은 젊은이였다(사도 16, 1-3).

  바오로는 디모테오를 이상적인 자기 협력자로 간주하고 그가 자기를 뒤따르고 자기와 더불어 복음전파에 수고를 바쳐주기 바랐다. 디모테오도 그 부름에 따라나섰으며 과연 스승의 지도를 받아 성서와 복음에 대한 지식을 깊게 하였고 사도직 사명에 평생을 바쳤다. 디모테오가 살던 주변에는 유다인들이 많았고 그들은 디모테오가 이방인 부친을 두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바오로는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이면 무조건 멀리하려는 유다인들과의 관계를 무난히 하려는 의도에서 디모테오에게 할례를 베풀었다. 우리가 아는 바로는 바오로가 이미 예루살렘 회의에 참석한 뒤이고 그 회의에서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모세 율법의 규정, 특히 할례를 준수할 의무가 없다는 결정이 나왔었다(사도 15장 참조). 그런 지경에 바오로가 디모테오에게 할례를 베풀었다고 해서 따로 파당을 만들거나 유다교로 후퇴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투쟁한 것은 모세 율법의 구속력을 해제시키기 위함이었지 무분별하게 그것을 배척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그는 히브리인들과는 히브리인으로 처신하고 이방인들과 지내 면서는 유다 규정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것은 모두를 가까이 하고 모두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전해주기 위한 처세였다.

  제2차 전도여행 때부터 디모테오는 늘 바오로 가까이 있었으며 바오로가 그를 자기 대리인으로 지명하여 어느 교회에 파견하면 쾌히 그 사명을 수행하였다. 제2차 전도여행시 바오로가 유다인 박해자들의 소동 때문에 데살로니카를 떠나야 했던 그 뒤로 디모테오는 다시 데살로니카로 파견되었다(1데살 3, 1 이하). 또 제3차 전도여행시에 바오로가 에페소에 체류하는 동안 디모테오는 사도 대신으로 고린토(1고린 4, 17; 16, 10)와 마케도니아(사도 19, 22)에 파견된다.

  로마의 제1차 수인생활 중에도 디모테오는 바오로 측근에 있었다(골로사이인들에게 보낸 편지,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 필레몬에게 보낸 편지 인사 부분 참조).

  '아들같이 사랑하는' 디모테오에게 보낸 편지들을 보면 디모테오를 에페소 교회에 자기 대리인으로 소개하고 있다(1디모 1, 3). 디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편지는(제1차 수인생활이 끝나고) 바오로가 자유로운 몸이 되어 있었고 동양, 정확히는 마케도니아에 와 있었던 것으로 시사한다. 그 무렵이 기원 후 64-65년이었던 것 같다.

  시대순으로는 디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편지와 둘째 편지 사이에 디도에게 보낸 편지가 나타난다.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2, 1-5)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2, 13; 7, 6; 8, 6 이하)에 디도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그것에 의하면 디도는 이방인 출신으로 예루살렘 회의 이전에 바오로와 알게 되었으며 '의견충돌'을 일으킨 당사자로서 예루살렘 회의에도 참석했던 것 같다.

  바오로는 드러내놓고 디도를 동반하고 다니면서도 그에게 할례를 베풀려는 의사는 조금도 비치지 않았었다. 예루살렘에서는 구원받기 위해서 모세법이 필요한지의 여부를 놓고 원칙상의 논쟁이 벌어졌다. 그러니까 디모테오의 경우와 디도의 경우는 전혀 사정이 달랐다. 여하튼 디도는 바오로의 소중하고 친근한 협력자로 계속해서 활약했다. 디도의 업적 하나로는 고린토 교회가 바오로에게 순종하고 신임하도록 사태를 호전시킨 일이 있다(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에 이 일이 언급되어 있다). 그 뒤로는 예루살렘 신자들을 위해서 마케도니아와 고린토에서 모금도 했다(2고린 8, 6; 16, 23). 사도의 제1차 수인생활 중에 디도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석방된 후 디도는 다시 바오로와 합류하여 그레데섬을 지나며 복음을 설교하였다. 그리하여 그 섬에도 최초로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이 형성되었다. 그레데섬을 떠나면서 바오로는 디도를 그 섬에 남겨두어 복음선교와 교회조직의 사업을 완수케 하였다. 바오로는 에피로(지금의 알바니아)의 니코폴리스에서 이 현명하고 지적인 협력자 앞으로 편지를 써서 니코폴리스로 자기를 속히 찾아오라고 지시한다. 디도는 바오로의 제2차 로마 수인생활 초기에 그의 곁에 머물러 있었음이 분명하여 조금 뒤 달마디아의 복음선교를 완수하는 사명을 띠고 바오로에 의해 그곳으로 파송 되었다(2디모 4, 10).

  로마의 제2차 수인생활 중에 바오로는 디모테오에게 둘째 편지를 보내 로마로 오라는 것과 오면서 무엇을 가져오라는 지시를 한다. 바오로의 이 마지막 서간을 보면 그는 이미 이승을 초월해 있으며 최고의 희생제사를 준비하면서 최후의 훈계를 내리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디모테오는 1세기 말엽에 순교하였으며, 디도는 바오로 사도가 자기에게 맡긴 그레데섬에서 기원 후 90년경 사망했다고 한다.

 

사목서간

1) 바오로는 사목 서간들을 통해 그리스도교 교리의 순수성과 총체성을 보존하고자 했다.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교리에 그릇된 사상이 침투될 염려가 항상 있었고 거의가 유다계 출신의 '거짓 교사들'에 의해서 그런 위험이 초래되었다. 그자들은 유다교, 그리스도교 그리고 심지어 이교의 이론들을 한데 뒤섞으려고 획책했다.

  바오로도 자기 협력자들이 온갖 오류를 터놓고 반박하고, 그들의 스승에게서 전수 받은 바를 설교하며,  신자들의 어리석음을 이용하여 그들을 유인하는(2디모 3, 6-7) 자들을 경계하도록 일깨운다. 분명히 교회는 "진리의 기둥이며 터전"(1디모 3, 15)이지만 신자 개개인은 '건전한 교설'에서 어긋나는 수가 있다는 것이 사목 서간들에 누누이 나온다(1디모 1, 10; 6, 3; 2디모 1, 13; 4, 3; 디모 1, 9; 2, 1).

  거짓 교사들은 어떤 음식을 못 먹게 하고 결혼을 금하면서(1디모 4, 1-5) "유다인의 꾸며낸 이야기"(1디도 1, 14)를 퍼뜨리고 다닌다. 그자들과 정반대로 디도나 디모테오는 신앙의 소박한 진리를 꾸준히 설교하여야 하며 허황 된 토론에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한다. 사도는 특별히 중요한 구절에 가서는 "…다는 말은 틀림없고 믿을 만한 것이다"(1디모 1, 15; 2디모 2, 13)라는 표현을 거듭 쓴다. 그리고 수시로 간결한 교리 문장이 나오는데 이것들은 당시의 신자들이 암기하여 배웠고 설교나 공동기도에서 암송하던 문장들이었을 것이며 따라서 상당히 중요하다고 보여진다. 몇 가지만 예거하면 다음과 같다(1디모 3, 16; 6, 13-16; 디모 2, 11-15; 3, 4-7; 2디모 2, 11-12).

  1디모 3, 16을 살펴보자. 이 구절은 초대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찬미하여 노래를 부르던 찬미가라는 것이 여러 학자들의 주장이다. 이 구절에서 예수를 '종교의 비밀'(종교의 진리: 공동번역본)이라고 일컫는다. 신인 그리스도께서 참 종교의 비밀(심오한 진리)이시라는 것이다. 그분에게서 우리와 하느님과의 관계가 실현되는데 그 까닭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이 우리에게 오셨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느님께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3, 16은 6개 소절로 되어 있다. 육과 영, 천사와 사람, 세상과 천상 영광이 대구(對句)를 이루면서 앞서 말한 '종교의 비밀'되시는 분이 인간세계에도 천상세계에도 존재하시는 분이며 이성을 갖춘 모든 피조물의 흥미의 중심이심을 피력하고 있다. 처음 두 소절("그는 육신으로 나타나시고 영으로 의로움을 입증하셨으며": 새 번역본)에서 '육'과 '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중의 조건을 가리키는 말들임에 틀림없다. 그분은 우리 인간 본성의 허약하고 무거운 '육'을 취하여 우리에게 나타나셨고, '영'으로 즉 그리스도는 부활의 순간부터 신화(神化)되고 영적이고 영광을 입은 조건을 갖추고서 존재하고 계시다는 의미이다. 그 분은 '영'으로 당신이 정당함을 입증하셨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당초에 말씀하신 대로 참으로 메시아요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입증하셨으며 동시에 당신의 가르침과 구속사업의 신적 가치를 보증하신 것이다.

 

2) 바오로의 두번째 염려는 디모테오와 디도가 부심 하던 문제로서 사도의 직분을 계승할 책임자들을 교회 내에 세우는 일이었다. 가르치고 성사를 집전 하고 신자들을 통솔하는 직책을 맡기는 일이었다.

  교회 지도자의 자질, 디도와 디모테오가 갖추어야 할 품성이 1디모 3, 1-7과 디도 1, 6-9에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우선 신앙과 그리스도교 신자생활의 '교사'이다. 따라서 교리를 받은 그대로 순수하게 가르쳐야 할 것이다(1디모 6, 20; 2디모 1, 13; 3, 14). 그들에게는 절대적인 교리상의 확고함이 요구된다(디도 1, 9; 2디모 2, 2). 그래야만 신적 계시의 '위탁물'이 변질되지 않고 전달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들은 또한 '목자'이니 신자들을 인도하고 신자가 각자의 신분에서 다 해야 할 본분과 도리를 일깨워줄 의무가 있다(1 디모 6, 17-19; 디도 2, 1-10).

  그들은 또한 '사제'로서 공식예배를 집전 하는 책임자들이다(1디모 2, 8-11).

  끝으로 그들은 자기 후계자들을 세울 책임이 있다. 그 책임자들-보조자〔부제〕는 종속적인 기능만을 했다-을 '감독'(episcopos)과 '원로'(presbyteros)라고 호칭하였는데 일정한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대해서 권위를 행사하였다. 이것은 바오로가 사도로서 모든 교회들에 대해 권위를 가졌었고, 바오로의 대리인들이 받은 바 사명에 따라 일정한 권위를 갖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사목 서간에서 '원로'-이 말에서 가톨릭이 '사제'라는 용어를 연역해서 쓰고 있다-와 '감독'-가톨릭은 이 말에서 '주교'라는 용어를 연역해서 쓰고 있다- 이 어떻게 달랐는지는 알 수 없다. 바오로는 같은 인물들을 지칭하는데 이 두 용어를 섞어 쓰고 있을 따름이다(디도 1, 5-7참조; 사도 20, 17. 28). +

  바오로는 생전에 자기가 친히, 또는 서간을 보내서, 또는 자기 대리인들을 시켜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을 다스렸다. 교회마다 일단의 원로들이 있어서 질서 잡힌 행정을 수행하는 사제권을 갖고 있었다. 사도가 자리를 비우면 원로들 중의 하나가 사도의 책임을 맡았다. 후대에 가서는 그 우두머리에게만 '감독'〔주교〕의 칭호가 돌아가고 나머지 원로들은 그냥 '원로'〔사제〕라고 부르게 되었다. 1세기 말엽에 가서야(사도 요한이 아직 생존해 있었다) 비로소 교회들은 한 '감독'을 우두머리로 하고 그 밑에 '원로'들과 '보조자'(diakonos)들을 두어 보필하는 제도를 확립하였다.

  초대교회에는 '여자 보좌'〔여부제〕도 있었다. 자선사업, 세례를 준비하는 여자와 소녀들을 교육하는 직책을 도맡은 나이 많은 여성들이었다. 1디모 3, 11을 보면 '여자 보조자'라는 단어는 쓰지 않으나 대략 그 직책에 요하는 성품을 열거하고 있다.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16, 1) 에서는 로마의 신자들에게 페베라는 '교회의(여자)보조자'(공동번역본은 "교회에서 봉사하는 여교우"라고 풀었다)를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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