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열정과 냉정사이- 조진섭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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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4-10-18 ㅣ No.167

인적이 드문어느 바닷가에 한 남자가 등대를 지키며 살았다.

그에게는 한 달 동안 바다를 비출 수 있는 기름이 매달 주어졌다.

그런데 하루는 한 여자가 찾아와 자기의 아이들이 추위에 떨고 있으니

불을 좀 피울 수 있게 기름을 꿔달라고 했다.

 

며칠이 지나자 이번엔 어부가 찾아와

고기잡이에 필요한 기름이 부족하니 꿔달라고 했다.

등대지기는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도리일 것 같아

모두에게 필요한 만큼씩의 기름을 주었다.

 

때문에 그 달 말 며칠은 등대의 등불을 켤 수가 없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달 마지막 날 밤에 큰 사고가 일어났다.

세 척의 배가 등대 앞 바다의 암초에 부딪혀

침몰하거나 대파된 것이었다.

 

그 사고로 백여 명의 목숨을 잃고 말았다.

생존한 항해사들은 입을 모아 등대가 뱃길을 비춰주지 않고

꺼져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인재(人災)라고 증언했다.

 

등대지기는 조사를 받게 되었고 재판정에 서게 되었다.

등대지기는 왜 기름을 다른 곳에 쓸 수 밖에 없었는지를 자세하게

진술했다. 그러나 판사의 판결은 냉정했다.

 

"당신에게는 오직 한가지 일만이 주어졌을 뿐입니다.

그일은 매일 밤 등대의 불을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의 그 일에 수많은 뱃사람들이 목숨을 맡기고 바다로 나가 있었습니다.

그 외에 사사로운 일들을 위해 쓰라고 정부에서 당신에게

월급을 주고 기름을 준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당신은 이번 사고에 대한 책임을 면할수 없습니다."

 

 _무소유의 행복 가운데서 / 우덕현 -

 

등대지기의 인간적인 사랑은

자체로는 비난받을 일이 아니겠으나

사랑은 결국 어둠이 아닌 빛이 되는 사랑이어야 할 것이다.

 

나 역시 오랫동안 분별이 모자랐던

어리석은 등대지기였음을 새삼 깨닫는다.

 

무분별한 열정보다 때로는 자신의 존재성과 위치를 위한 엄격한 냉정이 필요하다. 지금 나는 무엇을 할때인지를 구별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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