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흥보신부님의 자료실

34. 부활하신 주님

인쇄

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01-03-16 ㅣ No.62

 

감자가 싹이 나고, 잎이 나고…(01/03/18)

 

 

 

  34. 부활하신 주님

 

 

  우리가 어릴 때 하던 놀이가 있다. 묵찌빠. 그 놀이를 하면서 우리는 이런 노래를 불렀다. "감자가 싹이 나고, 잎이 나고…" 겨울 내내 죽은 것만 같았던 감자에서 새 싹이 자라나듯이, 죽어서 무덤에 묻히신 주님께서 새 생명을 지니고 오신다.

 

  첫째,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 부활은 생명이라는 빛이다. 어둔 방구석을 아침 햇살이 구석구석 비춰 보이게 하고 새 날을 만들어 주듯이, 부활은 인간의 죽음이라는 어둠에 생명의 빛을 던져 준 사건이다.

 

  둘째, 우리 인생의 흔적 안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지울 수 없듯이, 사랑은 밑지고 죽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죽지 않으며 끝내 엄연히 살아 있다.

 

  사랑이신 주님을 인간이 죽였고, 또 주님께서는 인간들의 원의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이셨다.

 

  주님께서는 아버지를 사랑하여 아버지의 뜻을 선택하셨고, 인간을 사랑하여 인간의 증오마저도 수용하셨다.

 

  주님께서는 바로 그 사랑 때문에 죽음의 세력을 이길 수 있었다. 악을 품은 사람들은 주님을 죽여 없애 버리면 될 줄 알았지만,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쳐부수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우리의 주님이 되셨다.

 

  셋째, 부활의 첫인사는 "평안하냐?"였다. 사랑을 받으면, 또 사랑을 받아들이면 참으로 편안하다. "그러니 너희는 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듯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내가 이 말을 한 것은 내 기쁨을 같이 나누어 너희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요한 15, 9ㄴ-12)

 

  넷째, 우리는 한편 주님의 사랑 안에 늘 머물러 있지 못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벗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사랑은 없다"(요한 15, 13)라고 하시면서 "이제 나는 너희를 종이라 부르지 않고 벗이라고 부르겠다"(요한 15, 15)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벗이 될 수 없는 불충한 우리를 벗으로 만들어 주셨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시고, 또 우리도 그렇게 벗을 위해 목숨을 바치면 다시 살수 있다는 것을 당신 부활로 확실히 보여주셨다. 그래서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어 구원된 것이다.

 

  이러한 일방적인 사랑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우리 구원의 '주님'이 되셨다.

 

  다섯째,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내세운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세상에 나가 언제까지나 썩지 않을 열매를 맺어라"(요한 15, 16)고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셔서 제일 먼저 여자들에게 나타나셨다. 당대 여자들은 법적으로 '증인'이 될 수 없었는데도 예수님께서는 여자들을 당신 부활의 증인으로 제자들에게 파견하셨다.

 

  특별히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다.

 

  사람들이 '갈릴래아는 구원에서 제외되었다'고 할 정도로 소외 받고 가난한 이들이 사는 이방인의 도시인데,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그곳에서 제자들을 만나기를 원하신 것이다.

 

  우리 신앙인이 믿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우리도 가서 사랑으로 주님의 부활을 증언하기로 하자! 세상 끝까지 복음을 선포하여, 이 땅에 다시 오실 주님을 설레임 속에서 맞이하기로 하자.

 

 



175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