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흥보신부님의 자료실

30. 예수님의 수난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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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01-02-24 ㅣ No.58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01/02/18)

 

 

  30. 예수님의 수난 배경

 

  세상을 보면 좋은 일에는 함께 하자고 나서는 사람이 적지만, 사람 잡는 일과 눈앞의 이익에는 발 벗고 나서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이해관계 앞에서는 복음도 주님도 없다. 아니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을 구하시기 위해 인간으로 오셔서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쁜소식을 전하시고, 식사를 거를 정도로 애써 일하셨다. 그렇지만 그런 예수님께 대한 사람들의 대답은 "십자가에 못박으시오!"였다. 왜 그들은 예수님을 죽일 정도로 미워했는가?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례자 요한이나 엘리야 그리고 예언자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마르 8, 28 참조).

 

  "세례자 요한"은 당시 백성들의 부패를 힘있게 비판하고,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가라는 회개의 설교로써 유다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소리를 전한 예언자다.

 

  그는 헤로데가 그의 동생의 아내를 자기 아내로 빼앗아 데리고 산다는 것을 옳지 않다고 외쳤다. 그래서 백성은 세례자 요한이 '어떻게 하면 현실에서 하느님을 섬길 수 있는지'를 제시한, 하느님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마태 14, 2-12; 마르 6, 17ㄴ-19; 루가 3, 10-14 참조).

 

 

  "엘리야"는 왕비 이사벨을 따라 다른 나라 신과 다른 종교의 문화를 섬기던 아합 왕과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절대적인 우위권을 증명해 보인 예언자다.

 

  농경 사회에서 농사의 풍요를 주는 바알신과 유일하시고 주인이신 하느님 중 어느 분을 섬겨야 하는지를 증명하고, 참 신앙의 길을 걷도록 요청한 예언자다. 그는 죽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으므로, 다시 내려와 백성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구원하리라는 기대를 받던 하느님의 사람이다.

 

  엘리야는 현실적으로 이득이 될 것이라고 생각되는 길과 신앙이 가리키는 갈림길 사이에서, 참 신앙의 길을 걷도록 한 예언자다(1열왕 18, 20-40 참조).

 

 

  그리고 "옛 예언자 중의 하나"로 거론되는 인물은 '모세'를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모세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집트 노예살이에서 해방시켜 준 예언자로서, 하느님과 얼굴을 대면할 정도로 가까웠던, 그래서 그의 죽음도 확실히 알 수 없는 하느님의 사람이다. 그러므로 마지막날 하느님의 이름과 권능으로 구원하러 오리라고 기대되던 성조다.

 

  예수님을 이 예언자에 비유한 것은 마치 로마의 식민지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모세처럼 젖과 꿀이 흐르는,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다주리라는 정치적이고도 현실적인 메시아(구세주)관에서 비롯되었다(출애급기 참조).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백성들의 바람, 즉 로마 식민지로부터의 해방과 물질적인 풍요와, 축복의 세상으로 데려다 줄 메시아에 대한 기대를 채워 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당대 종교와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과 죄인들을 축복하시고 함께 어울림으로써, 당시 사회와 종교의 가치관과 질서를 흔들어 놓았다.

 

  그리고 유다인 지배자들은, 예수님께서 성전 정화 사건으로 그들의 부정수입을 방해했고, "하느님과 나는 하나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10, 30; 14, 6)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없애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제자들 역시 예수님께서 현실의 정치적인 왕이 되었을 때를 기다렸으나, 박해의 표적이 되자 배신하고 떠나게 된다.

 

  이교인 지식인과 점령군 지도자들도 자신들의 정치적인 이해 관계 앞에서 진리를 포기하고 예수님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

 

  오늘 우리는 무슨 이유와 이해관계 때문에 주님을 버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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