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그저 무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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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4-12-04 ㅣ No.110

그저 무심코 / 김순현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그저 달은 환했다.

누가 손들어 부르지 않아도

바람은 무심코 대숲을 흔들었다.

무심 코에 걸려 대롱대롱

달도 대숲도 편안했다.


(내가 하는 모든 사랑도

그저 무심코에 굴복했으면...)


삶의 이유를 찾고

만남의 이유를 찾는 것은

얼마나 버거운 일이냐,

불쑥 던지며 다가드는

저 가벼운 하느작하느작


사제들이 가장 바쁜 이 시기 판공시기에 죄를 많이 듣고 사죄경을 수없이 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들이 죄를 지을 때 그렇게 고민 고민 했겠는가?

내 죄의 경험에 비추어 보고 이들의 고백을 들어보지만 그렇게 하느님 마음상하시기 위해 그리고 누구를 해치려 죄를 지었기보다 정말 환경과 상황과 자기 부족안에서 그저 무심코죄를 짓게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나 그늘이 있지만 그늘과 싸우지 않는것처럼 죄는 있지만 죄의식에 빠져서는 안될텐데


오늘 세례자 요한이 회개하여라!하고 외치지만 그것은 어떤 엄포나 명령이기보다는 정말 가벼운 초대! 부담없는 권고라고 생각되어집니다.

 

올해는 처음으로 제 주보성인의 회개하여라!라는 말씀이 예전에는 정말 근엄하고 꾸짖는 불교의 나한상의 모습에서 우연히 낙엽을 쓸고 있는 동자승의 미소처럼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회개의 초대는 웃으면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전 수녀님들과  그저 무심코 오른 산행에서 주지스님의 차대접을 받는 것이 기쁨인것처럼


사실 우리가 누굴 좋아하고 사랑하게 된 것도 그저 무심코 사랑하게 된것이고 ..........


그리고 그렇게 그저 무심코 마음이 가고 미소짓게 만드는 사랑과 만남이 영원한 사랑의 뿌리인 것 처럼!

 

그때 주지스님을 만났을 때 전 "성불하시길 기원합니다. 주지스님!"하고 합장인사를 하였더니  스님께서는 젊은 신부가 불계의 인사를 한것에 기특해 여기시는지 미소지으시며 "그럼 저는 무슨 인사를 올릴까요? 신부님 저는 천주교의 인사를 잘모르니! 음........ 회개하십시오!"

 

순간 어! 스님이 어떻게 나의 세례명을 아셨을까? 나의 주보성인의 표어가 아닌가?

 

물론 그분이 나의 주보성인 세례자 성요한의 삶이나 혹은 신자들끼리 "회개하십시오!"라는 말이 인사로 쓰이는지 어떤지는 모르셨을 것이고 내 생각엔 불교의 인사인 성불이 회개와 비슷한 의미라고 생각하셨는지 그저 무심코 떠오르는 인사를 하셨겠지만 그것이 오히려 나에겐 그저 무심코의 회개로 인도하는 향기가 되었다.

 

정말 진정한 회개에 그 죄의 이유를 찾음이 조건이겠는지?

그리고 그 이유를 발견한다해서 다시는 죄를 안짓게  된다는 보장은 없다.

정말 삶의 이유를 찾고 만남의 이유를 찾는 것이 그리고 죄의 이유를 찾는 것은버겁고 불필요한것처럼

우리의 사랑의 이유를 찾는 것 역시 바보나 하는 일이다.


 

그저 무심코 우린 사랑한 것처럼

그저 무심코 죄를 짓고

그저 무심코 죄를 고백하며

그저 무심코 살아간다면 어느날

그저 무심코 하늘나라에 가겠지요!


그저 무심코 죄를 지었기에 그저 무심코 용서받고

가볍게 죄를 고백하였으면

그러면 너무나 큰 가벼움과 평안함이 있을텐데

하느님은 다 용서해 주신다고 한다. 태양아래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늘이 있는 것처럼 하느님앞에 의인이 있을 수 있겠는가? 어린시절 개구장이 때 장마철에 진흙탕에서 구르고 동네친구들과 단체로 어머니들께 야단 맞는데 왜이리 재미있고 동료애가 넘쳐나는지? 아직도 그 친구들은 잘 만난다.

 

마음에 따라 나의 그늘인 죄도 정말  하느님과 공동체에 정을 쌓는 추억이 될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지은 죄도 그저 무심코에 굴복했으면

진정 내가 지은 죄가 그저 무심코에 굴복한다면

나의영혼은 늘 건강해 질것같다.

이강론은 정말 그저 무심코 쓴강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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