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의시간

앰블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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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7-06-04 ㅣ No.289

 

 

 

 

어제 외출을 하는데 제 앞으로

앰블런스가 요란하게 싸이렌을 울리며 네거리 빨간 불에서

조심조심 지나갔습니다.

 

 

어쩔수 없이 그 앰블런스 뒤를 따라가며...

누군지 모르는 저 급한 환자 곁에 주님께서 동행하시기를

화살기도로 청하면서 옛날 생각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며칠 후면 돌아가신 시아버님의 23주기가 됩니다.

 

 

23년 전,

쓰러지신 시아버님을 태우고 싸이렌을 울리며

급하게 달려가던 앰블런스에는

저도 함께 타고 있었습니다.

 

 

시아버님은 폐암으로 투병중이셨습니다.

다른 주 형님댁에 사시다가 UCLA 병원에 다니시러

저희 집으로 오셨습니다.

 

 

수술을 하시면 5년을 사실 수가 있고

수술을 안하시면 일 년도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님께서는 수술은 거부하시고

일본에서 명문이라는 약대를 나오신 약사이셨기에

당신 스스로 무슨 약을 제조하시어 복용하시면서

임상실험에 들어가셨습니다.

 

어쩌면...

그 약이 암을 완치시킬지도 모른다는

커다란 희망을 품으셨습니다.

 

 

저희 시아버님은 요셉 성인을 떠올리게 하시는

말씀이 적으시고, 매사에 조용하신 분이셨습니다.

 

처음 시집을 와서 아버님께 물이라도 한 그릇 드리면

한 손으로 받지 못하시고 어색하게 두 손으로 받으시며

저를 당황케 하시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쓰레기를 버리실 때에도

깨진 그릇이나 유리 조각이 있을 땐

상자같은 것에 넣으시고 끈으로 꽁꽁 묶어서

청소부가 손을 다치지 않게 배려를 하시던 모습도

제 기억에서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제가 어쩌다 어머님께 꾸중이라도 듣는 날엔

조용히 제 옆에 오셔서 위로의 말씀으로 달래 주셨고...

 

 

법 대로(?)

법 없이(?)도 사실 것같은 아버님도

고향이 이북 평안도 신의주 분이신지라

가끔 하시는 일이 잘 안될 때는 "에이 썅!" 하십니다.

그 말씀이 아버님과 너무 어울리지 않아서 우스웠습니다.

 

냉면을 너무 너무 좋아하셔서 여름엔 냉면과 사과만 있으면

반찬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저희가 처음으로 집을 장만했을 때는

일부러 오셔서 손수 뒷마당에 잉어 연못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어머님과 두 분이 연못을 만드시다가 아이디어 충돌로

옥신각신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이 다음 저 분들이 세상에 안계신대도 나는 저 모습을

  잊을 수가 없겠다......,''

 

하고 제마음 속에 새겨 놓았습니다.

그 때에 시부모님들께서는 신앙이 없으셨고

물론 저희도 하느님을 모르는 체 살고 있었습니다.

 

 

아버님이 병원에 입원을 하시고 계시는 병실에서

주일날 TV에서 목사님들이 예배를 드리는 방송이 나오면

(그때는 주일 아침이면 여러 공영 방송국에서 목사님들이

설교 방송을 하였으나 이제는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몹씨 언잖아 하시며 얼른 돌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곤 꼭

"목사들 다 사기꾼들이야!"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목사님들을 싫어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 당시 미국의 TV에서 설교를 하던 인기있던

어느 유명한 목사(이젠 이름도 잊었음) 부부가 사기로

부동산을 어떻게 했다는 뉴스가 오래동안

거의 매일 나온 탓일는지도 모릅니다.

 

그 목사님 부인은 화장을 대단히 진하게 하여서 인형같이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기도를 하면

온 얼굴에 마스카라가 번져서 까맣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굉장히 큰 사기극이었습니다.

 

 

아버님이 손수 만드신 약이 효과가 있었는지..?

수술하시지 않고도  5년을 사셨습니다.

처음에는 의사가 암이 줄어 들었다고 말할 때도 있었기에

우리는 정말 그 약이 조금쯤은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그러나 마지막 한 달은 다리에 수포가 생기고

체중도 많이 줄고 고통이 너무 심해지셔서

의사는 강한 진통제와 페니실린과 항생제를 한꺼번에

처방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버님은 그 약들을 보시더니

항생제와 페니실린은 절대로 함께 복용하는 것이 아니라고

안 드시는 것입니다.

 

저희 눈에는 이제 곧 돌아가시겠다 싶어서

조금 고통이라도 없어지게 약을 드셨으면 좋겠는데...

아버님께서는 고통이 그렇게 심하시면서도

그 약들은 몸에 해롭기 때문에 안 드신다는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죽음은 생각지도 않으시는 것입니다.

 

어머님은 아버님이 가실려고 정을 떼시는지(?)

아버님곁에 계시기를 피하시고 자꾸 무섭다고 하셨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는 정을 떼고 간다는 말이

그래서 생긴 모양입니다.

 

 

아버님은 너무 깔끔하셔서

자식들은 어려서 부터 집에 들어오면 손 부터 씻어야 함을

철저히 가르치신 분이십니다.

 

당신도 얼마나 청결하신지...

마지막까지 매일 면도를 하시고 머리도 단정하게 빗으시고

곱게 누워계셨습니다.

며느리 앞에 지저분할까 싶어서

환자이신 분이 누워계시는 방에 전혀 냄새가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돌아가시는 날,

제 친정 부모님들이 문병을 오셨습니다.

그래서 누워 계시던 시아버님은 일어나셔서

머리 손질을 하시려고 화장실에 들어가시더니

갑자기 코피가 난다고 저를 부르셨습니다.

 

친정 아버님이 이층으로 올라오셔서

시아버님을 부축하시는데 쓰러지셨습니다.

아버님은 그렇게 사돈의 품에 안겨 돌아가셨습니다.

 

시어머님은 아래층에 제 친정엄마와 계셨고,

저와 친정 아버님이 아버님의 임종을 맞은 것입니다.

사돈의 무릎을 베고 누우셔서...

 

저는 911에 전화를 하고

남편에게도 급히 전화를 하였습니다.

지금 기억을 떠올리니 다시 온몸이 떨려오기 시작합니다.

 

곧바로 경찰과 불자동차와 페라메딕(구급차)와 엠블란스가

요란한 싸이렌을 울리며 동시에 모여왔습니다.

여긴 911에 전화를 하면 불자동차가 제일 먼저 옵니다.

처음 당해 보는 일이라 얼마나 떨고 있었는지...

 

급히 페라메딕이 인공호흡을 시도하더니

엠블란스로 모셨습니다.

제가 엠블란스에 같이 탔습니다.

그 싸이렌 소리가  23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합니다.

 

병원에 가니

아버님은 이미 집에서 돌아가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제와서 후회가 되는 것은

아버님이 왜 그렇게 목사님들을 싫어하셨는지...

그때 저희 부부에게

사람인 목사가 하느님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 드릴 신앙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3년 후에 저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 아버님을 위한 미사와 기도를 드릴 때면

그 쓸쓸했던 장례식이 떠올라 마음이 아픕니다.

 

하느님을 알아뵙지 못하신 채로,

그 분앞에 엎드리셨을 불쌍한 저희 아버님을 생각하며

용서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청할 수 밖에는 없습니다.

 

아버님이 외면하신건 잘못한 목사님이었지...

절대로 하느님이 아니셨다고 애써 변명을 해드립니다.

분명히 하느님 대전에서 진정 황망하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영원에 대한 생각을 잊고

매일의 작은 걱정에 매여서

삶의 저편을 생각하지 못하고 살때가 많습니다.

 

저희 아버님.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소리를 귀여겨 듣지는 못하셨으나

아버님의 삶은 당신의 가르침에서 많이 어긋나시지는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저희 아버님에게도 자비를 베푸시어

아버님도 당신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정원에서

당신옆에 머물고 계실 것을 저희는 믿겠나이다......,

 

김혜경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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