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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한없이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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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00-12-08 ㅣ No.51

 

  평화교리23 (2000/12/10)

 

  인간의 자존심과 시샘

 

 

  23. 한없이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사랑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의 근거는 인간 자신에게서 온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찾을 때 행복해진다. 그러므로 빨리 하느님의 간섭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라고 한다.

 

  그러나 인간이 하느님 없이 살 수 있을까? 인간이 하느님을 외면한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사라지시겠는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 사랑하면서, 자기 아기의 성을 남자나 여자로 결정할 수 있는가? "낳고 나서 보니 남자아이요, 여자아이더라!"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인간이 인간의 존재 근거라면 부모가 자기 자식을 때리든, 돈을 벌어 오도록 강요하든, 굶기든, 죽이든 윤리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 복제는 인간에게서 존엄성과 인간 생명의 고귀함을 빼앗아간다. 더 이상 인간은 인간 생명의 주체가 아니고, 필요에 의해 언제든지 만들어 내고, 뒤 바꿔쳐지는 기계 부속품처럼 되버린 것이다.

 

  그리고 또 한편 오늘 내가 찾아 얻은 행복이, 나와 함께 동시대를 사는 다른 이들에게도 행복일 수 있는가? 나의 행복이 남의 불행을 전제로, 또는 남의 불행을 밟고 일어서는 것이라면 정말 행복할 수 있는가? 또 오늘의 행복이, 나에게 내일은 불행으로 다가오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진정 "이기주의" 또는 "비인간적인" 모습이다.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할 때 행복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함으로써만 온전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창세기 2장과 3장을 보면, 첫사람 아담과 하와는 자기들이 원하는 바(하느님과 같아짐)를 이루려고 했지만(선과 악의 나무 열매를 따먹음), 결국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 행복을 누리기보다는 오히려 수치를 느꼈고, 지금까지 누리던 행복마저 잃어버렸다(낙원에서 추방됨).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하느님께 돌아가고자만 한다면 언제든지 받아 주시고, 또 그렇게 인간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간직하고 기억합시다.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를 통해,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집나간 작은아들이 돌아오기를 매일같이 기다리고 계신다고 말씀하신다(루가 15, 20절 참조).

 

  그래서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수치로 좌절하거나 삶을 포기하지 말고, 믿음과 확신을 갖고 꼭 되돌아가, 하느님께서 주시는 행복 안에서 다시 살 수 있다. "아버지, 저는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21절)

 

  그리고 한 때 부정부패를 일삼고 몰염치한 행각을 저지르며 반사회적인 상황을 연출한 이들도 받아들이고 용서해주자. 자신의 공의와 정의로 그렇지 못한 이들을 심판하기 보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주님의 아량과 사랑도 갖추어야 하겠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게 있고 내 것이 모두 네 것이 아니냐? 그런데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왔으니 잃었던 사람을 되찾은 셈이다."(31-32절) 우리는 우리의 마음속에 주님을 모시고 있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그래! 사람은 선물이다. 인간은 인간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을 내주신 하느님에 의해 그 존엄성이 주장될 수 있다. 그리고 존엄한 인간은 그 인간에게서 흘러나오는 사랑으로 존중받는다.

 

  그래서 인간의 사랑이 자기를 향할 때 그것은 이웃에 대한 미움이요, 죽음이 된다. 그러나 사랑이 이웃을 향할 때 비로소 사랑이 되며 생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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