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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하느님의 나라의 최우선권과 그 나라의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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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00-12-01 ㅣ No.50

 

  평화교리22 (200/12/03)

 

  나만 손해지

 

 

  22. 하느님의 나라의 최우선권과 그 나라의 건설

 

  사람들은 말한다. "자기 하나 변한다고 세상이 변합니까? 구조가 변해야지!" 또는 "예수님의 말씀이 좋은 줄은 알지만, 나 혼자 실천하다 보면 나만 뒤떨어지고, 살기조차 어려워진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라. 이런 것들은 모두 이방인들이 찾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 31-33)고 하신다.

 

  세상을 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인들은 "예수님께서는 이럴 때 어떻게 하실까?", 또는 "예수님께서는 내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실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면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하느님 나라를 건설해 나가야 한다.

 

  여기 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자.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기업가는 노동자를 고용하여 임금을 지불하고, 노동자는 기업가에게 노동을 제공하여 임금을 받는다.

 

  이때 "자본(돈)이 제일 중요하다." 즉, 자본이 노동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자본주의자)은 임금을 '상품을 만드는데 드는 비용'으로 본다. 그래서 기업가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가능하면 (비용으로 취급되는) 임금을 줄이려고 한다. 또한 기업의 주인은 기업가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노동이 자본보다 우선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노동주의자)은 임금을 '노동자가 기업가에게 제공한 노동의 가격'으로 본다. 그러므로 자기의 노동이라는 상품을 가능한 한 비싼 가격에 팔고자 한다. 또한 자기가 일해서 기업이 돈도 벌고 커졌으니까 기업의 주인은 노동자라고 생각한다.

 

  한편 이렇게 여러 가지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달리 사는 사람들 속에서 과연 신앙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신앙인은 임금을 비용으로도 또 가격으로도 보는 동시에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얻어먹으리라"(창세 3, 19ㄷ)는 성서의 말씀에 따라 임금을 생계비라고 본다. 즉, 임금은 노동을 하는 기업가와 노동자 모두가 '인간답게 사는 데 필요한 만큼 가져야 할 것'이라고 본다. 또한 '노동을 통해 사회에 봉사한 수고료'요, '그 노동한 사람의 미래를 보장하는 몫'으로 본다.

 

  그러므로 임금을 결정하는 기준은, "그 사람의 가족이 몇이고, 그 집안에 환자가 몇이며, 교육을 받아야 하거나 보호를 받아야 할 사람이 몇인가", 또 "그 사람이 인간답게 사는 데 얼마나 필요한가"를 직업의 종류와 직책보다 우선 생각한 후, 그 기업의 이익 수준을 고려하여 책정하게 된다. 그래서 또한 기업의 주인은 하느님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만드실 때, "인간 어느 누구 하나에게가 아니라 인류 공동체에 자연을 양식으로 주셨고, 다스리도록 맡기셨으며, 그렇게 하신 분은 주인이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창세 1, 26-30 참조).

 

  오늘날 이러한 정신이 각종 수당과 사회 보장 제도로 스며들어 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만들어 우리에게 다스리라고 맡겨 주신, 그 하느님의 뜻과 목적이 이루어지는 하느님 나라"를 가슴 깊이 새기고, 그대로 살려는 노력을 하자. 그래서 주님의 빛으로 이웃과 자연과의 관계를 맺어 하느님 사랑의 인류 공동체를 형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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