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가해) 요한 3,16-18; ’23/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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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3-05-27 ㅣ No.5408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가해) 요한 3,16-18; ’23/06/04

 

 

 

 

 

 

 

오늘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을 맞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무엇을 하시면서 하루를 보내실까?’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탁자에 동그랗게 모여 앉으셔서, 세상 각지에서 올라오는 갖가지 기도요청과 청원들을 마치 결재하듯이 하나하나 처리하시면서 하루를 보내실까?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우리 각자가 겪고 있는 아픔과 고민, 슬픔과 괴로움을 위로해 주시느라, 그리고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긴장과 갈등, 전쟁과 폭등 때문에, 밤잠을 못 이루시면서 애타게 바라보고 계실까?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도 인간 세계와 대자연의 사건 사고와 상황에 대한 애정과 혼신뿐만 아니라 쉬기도 하실 텐데, 무엇을 하시면서 쉬고 계실까? 장기를 두실까? 주사위 놀이를 하실까? 사람들의 재롱을 마치 텔레비전에서 바라보듯이 바라보시면서 쉬실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라고 하시면서, 아버지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 아들 예수님을 보내주셨음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삼위일체 대축일을 맞이하면서, ‘삼위일체 하느님 사랑에 참여하는 것을 우리 신앙의 목표로 삼고 있는 우리의 신앙 생활을 되돌아봅시다. 우리가 성당에 와서, 주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이런 기쁨과 평화를 찾고 또 누리고 있는지 확인해 봅시다.

우리는 성당에 와서 미사를 드리면서, 말씀의 전례를 통해 주님의 말씀을 깨달아서 기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내 일상에서 실현하면서, 주님과 함께하는 잔잔한 기쁨을 누립니다.

그리고 마침내 주님의 말씀을 실현하고 나서, 오는 충만한 기쁨에 젖습니다.

그런가 하면, 주님의 말씀을 이루려고 노력했지만,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실패와 좌절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위로해 주시는 주님의 사랑으로 평안함을 느낍니다.

주님을 모시고 주님과 함께했던 순간의 기쁨과 평화를 간직하고, 세상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 속에서 주님과 함께할 때의 그 기쁨과 평화를 기초로 하여, 흔들리거나 당황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주님과 함께 우리 인생의 과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어서 기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예기치 않게 다가온 사건과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면서 겪는 당혹감과 혼란 속에서, 과연 왜 주님께서 이 일을 우리가 겪도록 하셨는지 되묻고 그 답을 어렴풋이나마 깨우치게 되었을 때 기쁨이 샘솟습니다.

우리가 겪은 사건과 상황 속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누구와 함께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하시는지를 되새기게 되면서 불안을 씻고 위안을 얻습니다.

그 사건과 상황 속에서 세상의 유혹을 물리치고 주님께서 일러주시는 방향과 방법을 실현했을 때 겪게 되는 박해와 어려움 속에서 주님의 힘을 얻어 자부심을 품고 굳건해집니다.

또는 그 사건과 상황 속에서 주님의 뜻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누구의 일방적인 피해나 어려움 없이 제대로 풀어지고 무난히 해결되었을 때, 주님께서 함께해 주시고 보호해주시며 이끌어 주셨다는 체험으로 환희와 감사의 기도를 올립니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17)

우리 생애의 순간순간 고통과 번민과 괴로움 속에 갇혀 헤매일 때마다, 주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청하여, 주님의 사랑과 위로를 받으며, 우리의 억울함과 외로움과 한없는 갈증을 채우며 주님 안에서 기쁨과 평화를 누립니다.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하고, 우리가 해서는 안 되는 일마저 한 후, 주님의 십자가 아래 머리를 조아리며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청하며, 주님께서 우리 대신 우리가 다 못한 일을 몸소 완성해 주시고, 우리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 이들을 주 친히 어루만져주시고, 돌봐주시기를 청하며, 부끄럽고 민망하지만, 주님께 맡겨 드리며, 주님의 가호 아래 오늘도 잠자리에 듭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그저 내가 필요할 때마다 주님을 찾고 기도하며 매달리고, 내가 청하는 대로 이루어지면 기쁘고, 안 이루어지면, 주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는가보다 여기거나, 내가 버림받았다고 위축되거나, 주님께 기도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느끼거나, 주님은 우리의 현세 생활과는 관계없이 동떨어져 계신 분이라고 여겨, 공허하고 외로워하며 주님과 교회와 멀어지고 맙니다.

또 다른 분은 미사 성제와 기도를 진지하고 열정을 다해 드리며, 자신의 생애에 적극적으로 주님을 초대하고 만나면서 힘을 얻고, 믿음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복음을 나누고 실현하면서 기쁨과 평화를 찾고 누리는 신앙생활에 맛들이지 못하고, 신앙생활의 영적투쟁과 거룩해지는 성화에 대한 특별한 의미나 예수님 따름과 하느님 나라 건설이라는 평신도 사도직의 복음화 소명 없이, 그냥 오늘 미사에 참례하고, 신자 누구누구와 함께 만나서 이야기하고, 같이 지역 활동이나 취미활동을 하고, 함께 어울리면서 종교생활을 하는 수준에 머물고 맙니다. 간혹 그러다가 성당에 친하게 만날 사람이 없(어지)거나, 함께할 활동 내용이 마땅치 않으면, 성당에 나오는 게 재미가 없고 무료하다는 함정에 빠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구역반이나 단체 소공동체에서 복음을 나누면서 복음 말씀을 통해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을 느끼며 설렘과 환희를 느낍니다.

복음을 나누면서, 우리에게 건네주시는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새 생명을 느끼고 받아 누리게 되어서 기쁩니다.

복음에 비춰진 형제자매의 삶에 대한 나눔을 들으면서, 그 형제자매와 함께하시며, 그를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시며, 그와 함께 활동하시는 주님을 발견하고, 우리 인간을 향한 주님의 현동과 사랑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어서 같이 기쁩니다.

 

일례로, 성모의 밤을 하면서, 아버지 하느님께 순명하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아들 예수님과 함께하시는 성모님의 일생에 대한 새로운 느낌이나 체험을 하게 되어서 기쁩니다.

또는 신자들의 신앙 활동에서 만난 주님에 대한 증언을 전해 들으면서, 발표자의 활동 안에 함께하시면서 몸소 열매를 이루신 주님의 현동을 발견하게 되어 기쁩니다.

발표자의 주님께 대한 체험이 나의 신앙생활과도 공유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성모의 밤을 마치고, 어려운 이웃과 주님과 교회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꽃선물을 나누면서, 사랑의 선물을 나눠주는 나와 우리의 선물을 기꺼이 받아 주시는 대상자와 우리를 사랑의 나눔으로 하나 되게 해주시고 나눔을 통해 기쁨이 발생하도록 기회와 체험을 선사해 주시는 주님과의 삼위일체적 일치와 친교를 누립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기쁨과 평화가, 우리가 성당에 오셔서 찾고 누리는 기쁨과 평화입니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18)

우리가 성당에 오면서 갈구하는 기쁨과 평화가 형제자매들과의 만남과 친교에 그치지 않고 삼위일체이신 주 하느님과의 진정한 만남과 친교에서 오는 것이면 더 좋겠습니다.

인간적인 기쁨과 행복을 넘어 한층 더 성화된 거룩한 기쁨과 행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이 이루어져서 기쁜 것과 내가 얻어서 갖게 되는 행복감 이외에도, 내 것을 양보하고 희생하며 나누면서 오는 기쁨과 행복도 얻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인간적인 기쁨과 행복을 넘어, 주 하느님과 함께하면서 누리게 되는 참 평화와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주 하느님과 함께하게 되시기를 빌겠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의 기도와 활동과 행사에,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께서 현존하실 수 있도록 노력하고, 그런 관점에 집중하여 미사와 기도와 만남과 모임과 행사를 기획하고 행사에 참여합시다. 우리가 바라는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통한 삼위일체 하느님과의 친교와 그 사랑 안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천주교회에 나와서 천주교회의 전통과 문화를 따라 종교 생활과 종교활동도 하지만, 우리 주 예수님의 뒤를 따라 성령의 인도로 신앙생활을 해나가면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사랑의 일치 안에 참여하는 기쁨과 평화를 누립시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참고로, 위 강론 원고는 지난 525() 서울대교구 사제를 대상으로 한 3차 본당사목포럼에서 발표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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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대축일 꽃꽂이

https://bbs.catholic.or.kr/home/bbs_view.asp?num=1&id=192476&menu=frpeterspds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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