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님께 드리는 사랑의 편지

[반성] 너무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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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 [agneskim] 쪽지 캡슐

2000-03-13 ㅣ No.1355

 

†찬미예수님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음~

이번에 받은 답장에선 왠지 할아버지와 저와의 넘을 수 없는(?) 벽의 두께와 높이를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갑자기 할아버지께서 말씀을 높이시니... 소녀 어찌해야 하올런지???  -_-;;

할아버지 제게는 그냥 말씀 팍~팍~ 놓아주십시오.  *^^*

아녜스는 그 편이 훨~씬 좋습니다.

(혹시 제가 다른 이들보다 쪼끔~ 나이 많은 아가씨여서 그런 것은 아니시죠??)

 

다른 이에게 쓴 답장에 할아버지께서 요즘 무척 바쁘시다보니 게시판에 들러 할아버지 앞으로 올라 온 편지를 하나하나 확인하여 답장하기도 힘드시다는 말씀을 읽고 죄송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아버지를 힘들게 하는 사람 중에 저도 끼어있으니까요.

 

할아버지~

저에게 답장 쓰실 땐 그냥 "잘~ 보았다."라고 한 줄만 쓰셔도 괜찮습니다.

뭐~ 좁은 소견에 삐치긴 하겠지만 워낙~ 기억력이 없어 왜 삐쳤는지도 금방 잊어버릴테니까요....  m^^m (제 친구들은 모였다하면 서로에게 DMZ 또는 단무지라고 합니다.  자신은 결코 아니라는 말과 함께.... 뭐~ 풀이를 하자면.... 할아버지와는 정말 거리가 먼~ 단어들이죠...)

 

조금이라도 할아버지께서 편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재의 수요일에 재를 받았어야 했는데 제가 사정상 (일단 잠도 많고.. 개강을 하는 바람에...) 재를 받지 못했습니다. (사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게으름입니다)

 

그래서 혹시~ 하고 일요일을 기다리다 학생 미사에 갔습니다.

 

그런데... 우히히~ 지성이면 감천(??) 이라고 보좌신부님께서 특별히 중고등부 학생들을 위해 머리에 재를 뿌려 주신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학생들만 줄 것이니 어른들은 나오지 마십시오"는 말씀을 하셨는데...

 

제가 또 눈치 살피는데는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이다보니... 주일학교 교사들도 나가고 앞자리에 앉은 어른들도 몇 명 나가길래...

에라~ 나가자! 하고 나갔습니다.

 

순서를 기다리는 내내 두근두근 떨리는 맘과 함께 어른이니 들어가라고 하시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정말 무슨 면접 시험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드디어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이 제 얼굴을 보시더니...

중고등부 선생님 한 명을 불러서는 뭐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잠시 후 주송자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시간 관계상 어른들은 나오지 마시고 학생여러분만 나와 주십시오~"     ???!!!

아~ 마침내 올 것이 왔구나...

흑흑흑...

하필 제 차례에서 신부님~~~ 아이고~ 찔려라~

정말 눈치도 때와 장소를 가려서 살펴야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전 그냥 기도손 예쁘게 하고 계속 서있었습니다.

"저~ 어른은 들어가시죠~"하고 신부님께서 말씀하실까봐 얼마나 떨리던지...

그리고 그냥 들어가면 할아버지... 제가 또 안 어울리게 눈물 많은 여자이다 보니 창피해서  울지도 모르거든요...

아~ 창피스러워~  

등에선 식은땀이 흐르고 왜 그리 덥고 얼굴은 달아오르던지... 정말 그 때 제 모습은 마치 불타는 고구마 같지 않았을까 합니다.

 

한참 조마조마했는데... 신부님께선 그냥 주셨어요. *^^* (너무 감사했죠...)

그렇지만 뒤돌아 오는 동안 내내 아이고~ 부끄러워라~ -.-;;

할아버지 정말 창피해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아이고 아이고 이참에 보좌신부님께 미운 털 하나 깊~이 심어드렸습니다.

 

저는 여기 저기 미운 털만 심고 다니고...

사실 낮에는 직장으로 또 밤에는 학교로 열심히 뛰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고 위안을 해보지만... 새벽미사에 참례할 수도 있었는데... 제가 너무 게을렀습니다.

아마도 저의 게으름을 주님께서 이번 일을 통해 깊이 반성할 기회를 주신 듯합니다.

 

사순 기간 동안 부지런한 아녜스가 되자는 실천사항 한가지를 세우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그럼 할아버지 안녕히 계십시오.

 

게으름을 깊이 반성하며 불광동에서 김희정아녜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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