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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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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03-02-12 ㅣ No.79

 

 

신약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해제

 

 

-이성근,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 2001

 

 

 

갈라디아서는 근본적으로 논쟁적인 편지이다. 바울로 사도는 갈라디아 공동체에서의 긴박한 상황과 문제에 직면하여 그것을 해결하고자 이 편지를 저술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편지는 바울로 사도의 사상과 감정을 풍부히 담고 있으며, 사도의 열정적인 성격을 잘 반영하고 있다.

  신학적인 면에서 갈라디아서의 가치는 매우 크다. 바울로는 갈라디아인들에게 자신이 선포한 복음을 설명하면서 자신의 신학을 대표하는 중요한 개념들과 용어들을 선보이고 있으며, 나중에 로마서에서 이를 더욱 신중하고 체계적으로 발전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관점에서도 이 편지는 매우 중요한데, 바울로 사도의 일대기와 초대 그리스도교에 관련된 직접적인 자료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바울로 사도의 연대기와 그에 따른 편지들의 작성연대를 추정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사료이다.

 

1. 친저성

갈라디아서의 연구에 있어서 가장 논란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이 저자 문제이다. 이미 초대 교부시대부터 이 편지는 바울로의 친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교회 저술가들도 이를 인용하였으며(로마의 클레멘스,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폴리카르포), 가장 오래된 라틴어ㆍ시리아어ㆍ이집트어 번역본에도 다른 바울로 서신들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테르툴리아노에 의하면 마르키온의 정경목록에서 이 편지가 바울로 서간 중 첫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무라또리 단편에서는 다섯번째 자리에 나온다. 갈라디아서의 본문은 바울로 서간의 가장 오래된 필사본인 P에 전문이(로마서, 히브리서, 두 편의 고린토서 뒤에)실려 있다.

  지난 세기에 바우어(B.Bauer)가 친저성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주장했지만 이는 다른 어떤 학자들의 호응도 받지 못했으며, 통일성을 부정하는 다른 견해들도 정설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고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갈라디아서는 그 사도적 권위, 통일성 그리고 친저성에 관해서 논란이 된 적이 없으며, 다른 바울로 서간들과 비교해 보아도 그 필체와 문체가 바울로의 것이 확실하다.

 

2. 갈라디아 지역의 역사적 배경과 복음화

그리스도교 초기 시대에 "갈라디아"라는 용어는 소아시아의 중북부 고원 지역을 지칭하였다. 갈라디아인들은 본래 아시아의 인도-아리안 지파였고 동부 유럽 다뉴브 강 유역에서 살던 켈트족, 골족과 관련되었다(갈라디아인이라는 이름은 켈트인의 또 다른 표기이다). 기원적 279년경 그들 중 일부가 다뉴브 강 하류 지역과 마케도니아 지방을 침공하여 그리스 반도까지 남하하였다. 기원적 278년 에톨리안족에 저지당한 그들은 헬레폰네스를 넘어 소아시아 지방까지 쫓겨갔다. 그들은 그곳의 모든 지역을 방랑하다가 기원전 239년 페르가뭄 왕국의 앗달루스 1세에게 패하여 땅의 경계를 상가리우스 강과 할리스 강 사이의 세 도시, 즉 안키라, 페씨누스, 타비움 주위에 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해서 주변 국가들과 분쟁을 일으키다가 결국 기원전 189년 로마의 총독 만리누스 불소(Manli-nus Vulso)에게 정복되었다. 로마는 그들을 페르가뭄 왕국과의 절충지대로 활용하며 그들에게 획기적인 자율권을 부여하였다.

  아민타스(Amyntas) 왕이 죽자 갈라디아는 안키라를 수도로 하는 로마제국의 속주가 되었다. 여기에 소아시아 중남부의 몇몇 지역, 비시디아, 프리기아, 리가오니아가 합병되었다. 따라서 고유한 의미에서의 갈라디아(북부 갈라디아)와 나중에 같은 로마의 속주에 합쳐진 지역(남부 갈라디아)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종교적 관점에서 갈라디아는 자신들의 신앙에 충실하면서도 지역 종교들의 여러 요소들을 받아들였다. 갈라디아 속주에는 많은 유대교 공동체가 있었는데, 특히 남부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로마의 속주 갈라디아에는 그리스도교의 메시지가 매우 일찍 전해졌다. 사도행전은 첫번째 선교여행 때, 바울로가 바르나바와 함께 갈라디아 남부 지역에 갔었고(밤필리아, 비시디아, 리가오니아), 거기에서 비시디아의 안티오키아, 이고니온, 리스트라, 데르베와 베르게의 공동체를 세웠다고 전한다(사도 13,13-14,26). 두번째 선교여행 때 바울로는 실라를 대동하여, 전에 세웠던 공동체들을 방문하면서 이 지역을 다시 횡단하였다(사도 16,1-5). 또 같은 기회에 총독부의 아시아(에페소)에 가는 것을 성령이 막으셨으므로 바울로는 북부 갈라디아를 횡단하였다.(사도 16,6). 그가 이 북부 갈라디아 지역을 복음화한 것은 바로 이때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왜냐하면 바울로가 에페소에 가기 전인 세번째 선교여행의 초기에 "모든 제자들을 굳세게 하면서"(사도 18,23) 갈라디아를 두번째 횡단하였다고 루가가 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지역에서 사도가 어떤 활동을 했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3. 내용과 구조

갈라디아서에는 논쟁적인 저술답게 비난, 꾸중, 숙고, 논쟁과 자서전적인 단서들, 성서 주제들, 권고들을 담고 있다. 따라서 그에 대해 많은 가설들이 제기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구조를 밝히는 것은 특별히 어려운 일이다. 서간체를 바탕으로 하여 서론(1,1-10)과 본문(1,11-6,10)그리고 추신(6,11-18)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서론의 길이에 대해서는 일치점을 찾지 못하는데 어떤 학자들은 처음의 다섯 절로 제한하는 반면, 다른 구조들이 제시되었다. 주로 주제적인 기준에 근거하여 많은 학자들이 서로 길이가 다른 두 부분, 세 부분 혹은 네 부분으로까지 나눈다. 그러나 가장 일반적인 이론은 삼중 구조로 보는 것인데, 자서전적인 단락(1,11-2,21), 교의적 단락(3,1-4,31)그리고 권고적 단락(5,1-6,10)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편지의 구조를 밝히려는 또 다른 시도는 동양의 고유한 사고방식인 교차대구법적인 전개로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푸이예(A.Feuillet)에 의하면 바울로는 자신의 이론을 1,10-11(A)과 1,12(B)에 전개하였고, 이를 1,13-2,21(A1)과 3,1-6,10(B1)에서 발전시키고 있다. 블릭(J.Bligh)은 사도가 전체적인 교차대구법의 구조를 사용한다고 주장한다.

  현대의 많은 학자들은 바울로가 그리스 수사학의 법칙을 따랐다고 생각하는데, 세 가지 근본적인 유형 중의 하나를 바탕으로 자료들을 배열하였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법률적" 유형으로서 공격할 때나 변호할 때 사용하였고, 또 하나는 "토론적" 유형으로 설득하거나 단념시키는 데 이용되었고, 다른 하나는 "웅변적" 혹은 "증명적" 유형으로 특히 칭찬이나 비난 형태의 교육적인 분야에서 사용되었다. 이 시도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갈라디아서에 접근하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사실 바울로가 결정적으로 그리스 수사학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것이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편지의 몇 부분에서 "수사학 규칙들을 학문적인 엄격함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사용했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여러 가설을 고루 존중하면서 다음과 같은 삼중 구조를 제시해 볼 수 있다.

        서론(1,1-10)

        1. 서문(1,1-5)

        2. 권고와 편지의 주제: 유일한 바울로의 복음과 이에 충실해야 하는 갈라디아인(1,6-10)

        본문(1,11-6,10)

        1. 자서전적 서술(1,11-2,21): 바울로가 선포한 복음

           1) 계시에서 기인한 복음(1,11-24)

           2) 예루살렘의 "중요한 인물들"이 인정한 복음(2,1-10)

           3) 베드로 앞에서도 옹호된 복음(2,11-21)

        2. 교의적 논제(3,1-4,31)

           1) 갈라디아인들의 그리스도적 체험(3,1-5)

           2) 성서적 주제: 아브라함의 예(3,6-29)

              a) 오직 신앙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축복(6-14절)

              b) 약속을 무효로 만들 수 없는 율법(15-18절)

              c)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감시자"로서의 율법(19-29절)

           3) 자유와 하느님의 자녀 됨(4,1-31)

              a) 그리스도와 성령의 활동(1-7절)

              b) 갈라디아인들의 경험(8-20절)

              c) 새로운 성서 주제: 두 계약(21-31절)

        3. 권고(5,1-6,10)

           1) 사랑을 통해 활동하는 신앙에 항구할 것(5,1-12)

           2) 자유와 성령 안에서의 삶(5,13-6,10)

              a) 율법의 성취인 사랑(5,13-15)

              b) 성령을 따르는 삶(5,16-24)

              c) 형제적 일치와 종말론적 기다림(5,25-6,10)

        추신(6,11-18)

 

4. 수신인과 저술시기

바울로는 자신의 편지를 구체적인 설명 없이 "갈라디아의 여러 교회들"(1,2)에 보내고 있고, 그 구성원들을 그냥 "어리석은 갈라디아 사람들"(3,1)로 간단히 표현하고 있다. 그의 활동을 시간과 공간 안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공동체들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바울로가 자신의 첫번째 선교여행 동안 갈라디아 속주의 남부지방에 설립한 공동체들을 지칭하거나(사도 13,13-14,26), 원래의 갈라디아(북부 갈라디아)에 좀더 나중에 설립된 공동체들을 가리킬 수 있다(사도 16,6).

  역사적으로 볼 때 교부시대부터 시작하여 중세, 근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주석가들은 갈라디아서가 소아시아 북쪽에 위치했던 골족, 혹은 켈트족의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라고 받아들였다. 이 "북부갈라디아설"에 반대하여 1748년 쉬미트(J.J.Schmidt)가 "남부갈라디아설"을 주장했는데, 이 이론은 후에 레넌(E.Renan), 잔(T.Zahn), 람세이(W.M.Ramsay)같은 학자들이 지지하였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 이론을 지지하는 학자들이 있다.

 

1) 남부갈라디아설

이 이론에 의하면 바울로는 안티오키아ㆍ이고니온ㆍ리스트라ㆍ데르베, 즉 자신이 첫번째 선교여행 때 설립하였고(사도13,14,51; 14,6) 두번째 선교여행 때 다시 방문한(사도 16,1-2) 공동체들에게 이 편지를 쓴 것이다. 이 이론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바울로는 어떤 지역의 이름을 거론할 때 로마의 공식적인 속주명을 사용했지 지방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아카이아"(로마 15,26), "마케도니아"(1데살 1,7-8), "아시아"(로마 16,5) 등이 있다.

  (2) 바울로가 갈라디아를 가로지른 여행에 대해 전하고 있는 사도 16,6과 사도 18,23 어디에도 북부 갈라디아에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설립했다는 암시를 찾을 수 없다.

  (3) 북부 갈라디아 지역의 언어는 예로니모 시대까지 켈트어 형태였기 때문에 바울로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 지방 언어를 모르면서 편지를 보냈을 수 없다.

  (4) 갈라 3,2-3.13-14.23-24; 4,2.5; 5,1의 본문은 독자들이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었음을 암시하며, 그들은 오직 남부 갈라디아의 헬레니즘화되었던 도시에만 존재하였다.

  (5) 특별한 소개 없이 바르나바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2,1.13)은 그가 독자들에게 이미 알려져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의 독자들이 바울로가 바르나바의 도움을 받아 설립한 공동체들의 구성원들이라고 한다면 이것도 쉽게 설명이 된다.  

  (6) 바울로가 갈라디아 공동체들의 위기 소식을 듣고도 즉시 방문할 수 없었다는 사실도 의미가 있다. 당시 바울로가 갈라디아에서 먼 곳, 즉 마케도니아나 고린토에 있었다면(즉, 두번째 선교여행중에 있었다면) 이 또한 어렵지 않게 설명이 된다.

  (7) 바울로는 갈라디아 공동체들의 선동자들을 "거짓 형제"(2,4)나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2,12)과 동일시하고 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의 대결(사도회의)에서 바울로에게 패한 후, 그가 첫번째 선교 여행 중에 세운 공동체들에 자신들의 사상을 전파했으리라는 것을 배제할 수 없다.

  이 이론에 따라 수신인들이 남부 갈라디아인들이라면 갈라디아서는 데살로니카 전서보다도 앞서는 바울로 서간 중 가장 오래된 편지일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에루살렘 사도회의 조금 전이나 직후, 즉 두번째 선교여행 초기(49년)나 혹은 좀더 뒤에 두번째 선교여행이 끝나고 바울로가 고린토를 떠날 준비를 하는 동안(52년)에 씌어졌을 것이다.

 

2) 북부갈라디아설

전통적인 입장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남부갈라디아설의 근거를 반박하면서 북부갈라디아설을 옹호한다. 이 이론을 지지하는 근거 역시 다양하며 논리 정연하다.

  (1) 1,21에서 바울로는 "시리아와 길리기아"를 언급하는데 이는 지방 이름이지 속주명이 아니다. 또 1,17에서는 "아라비아"를 언급하는데 그 지역은 서기 106년에 가서야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그리고  "갈라디아"가 어디를 지칭하는지에 대해 의심을 갖더라도 "갈라디아인들"이 지칭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야만족의 이름이며 바울로 자신도 비시디아나 리가오니아처럼 헬레니즘화한 도시의 주민들에게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이름이다.

  (2) 사도행전이 북부 갈라디아에서의 공동체 설립에 대해 침묵하고 있지만 사도 18,23은 이미 그곳에 공동체들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전제하고 있다. 또한 사도 16,6의 자연스러운 귀결은 바울로가 리스트라와 이고니온에서 프리기아와 "갈라디아 지방"으로 옮겨갔다는 것이다.

  (3) 북부 갈라디아인들의 언어를 바울로가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그는 선교 여행중에 갈라디아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통역가를 이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사도 14,11 참조).

  (4) 갈라디아서의 내용에서 독자들이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볼 수 없다. 4,8; 5,2-3; 6,12-13에는 오히려 대부분의 독자들이 이방계였음을 암시한다. 또한 유대인들이 살았다고 알려진 안티오키아나 리스트라 등에서는 율법과 그리스도교의 문제가 그다지 일찍 불거지진 않았을 것이다. 1,6에서는 갈라디아인들이 유대교 관습에 매력을 느낀 것이 최근의 일임을 암시하고 있다.

  (5) 바르나바에 대한 언급 자체도 그다지 큰 의미는 없다. 바울로는 남부 갈라디아의 공동체들에게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게파/베드로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6) 바울로의 적대자들 역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첫번째 선교여행이 끝날 무렵에 그들은 예루살렘과 안티오키아 주변의 집단이었던 반면, 갈라디아의 선동가들은 바울로가 세번째 선교여행중 에페소의 복음화에 열중하고 있는 동안 고린토와 필립비에 있었던 집단과는 달리 광범위하고 공격적인 그리스도교 선교 운동에 속했던 사람들이다.

  (7) 편지의 저술시기를 두번째 선교여행으로 앞당겨 잡으려는 것은 갈라디아서에 나타나는 개념들과 용어들이 세번째 선교여행이 끝날 무렵에 씌어진 로마서의 그것들과 비슷하다는 사실에 대치된다.

  오늘날 대다수의 학자들은 둘째 이론을 지지한다. 갈라디아서는 따라서 바울로가 자신의 두번째 선교여행중에 설립한 북부 갈라디아의 공동체들에게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갈라디아서와 다른 편지들의 연대기적 관계를 설정하기가 매우 힘들고, 결과적으로 저술시기를 알아내기도 어렵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바울로의 선교여행을 기초로 하여, 학자들은 에페소, 마케도니아, 고린토 등을 저술장소로 주장한다. 정확한 저술시기에 대한 이론도 다양한데, 일반적인 바울로의 연대기를 바탕으로 54년(가장 개연성 있음)에서 57년 사이로 추정된다.

 

5. 바울로와 갈라디아 교회들의 관계

갈라디아서는 편지의 수신인이 된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많은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 바울로를 만나기 전에 그들은 하느님을 몰랐고 거짓 신을 섬겼으며(4,8), 그들의 종교는 자연의 강한 원소들을 섬기는 것이었으며(4,3.9), 그것들에 종살이를 하였다(5,1),

  바울로는 육체적 질병 때문에 그들의 지역에 머무르게 되었고, 그것을 기회로 그들을 복음화하기 위해 헌신하였다(4,13). 그들을 위해 수고와 고통을 겪었고(4,11,19), 아마도 모세의 율법에 대한 준수를 포기하는 수준까지 그들의 풍습과 관습에 완전히 따랐던 것 같다.

  그가 비참하고 고통스런 상황에 처한 것을 본 갈라디아인들은 그를 매우 관대하게 "하느님의 천사처럼, 그리스도 예수"처럼 맞아주었고, 그를 위해서는 눈이라도 빼줄 수 있을 정도였다(4,14-15), 그들은 그의 설교를 믿음으로 들어주었고(3,2,5), 세례로써 그리스도교에 입교하였다(3,27). 그들은 성령에 대한 깊은 경험을 하였고(3,2.4-5), 성령은 그들 가운데 기적적인 표지로써 자신을 드러내셨다(3,5). 그렇지만 성령은 무엇보다 그들에게, 아들이 사랑과 친밀함과 신뢰를 표현하기 위해 아버지를 부르는 "아빠", "아버지"라는 호칭으로 하느님을 부를 수 있게 해주었다(4,6). 그들은 이렇게 모든 면에서 하느님의 자녀가 됨으로써(3,26)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에 들어가게 되었다(4,9).

  갈라디아인들은 이렇게 영적인 사람들, 즉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이 되었다(6,1). 특히 거짓 신들(4,8), 세상의 원소들(4,3,9), "육"과 그 정욕과 사욕(5,24)에 예속되는 것을 피하고, 구원을 위해 세워진 모든 율법 준수를 포기함으로써(3,13)자유를 획득하였다(5,1,13). 그 결과로 서로를 온전히 섬길 수 있었고(5,13), 모든 것이 나아졌다(5,7).

  그러나 편지가 씌어졌을 무렵에는 다른 복음으로 돌아서고 있고(1,6), 성령으로 시작하여 육으로 끝내기를 바라는(3,3) 어리석은 사람들이 되었다.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이교에로 돌아가고 있다(4,9). 그것은 하느님의 영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5,8), 마술에 홀린 결과이다(3,1).

  그래서 이 편지는 이교 기원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것이며, 바울로는 그들에게 사도적 활동의 어렵고 미묘한 순간에 복음의 메시지를 선포한 것이다. 그들은 열광적으로 그리스도교에 호응하였고, 그것으로 바울로와 밀접히 결속되었다. 이 사실은 당시 이루어지고 있던 변화를 더욱 극적으로 만드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단순히 사도가 선포한 복음뿐 아니라 그의 인격까지 거부하고 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6. 바울로의 적대자들

갈라디아인들이 바울로 사도에게 등을 돌린 것은 그들의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그들 사이에 침투한 익명의 인물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따라서 이 편지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적대자들의 정체를 밝히고 그들의 사상을 가능한 한 재구성해볼 필요가 있다.

 

1) 편지에 나타난 선동가들의 특징

바울로는 갈라디아 공동체에 침투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밝히거나, 그들의 이론을 직접 서술하지도 않고, 그들과 직접 대화하려고 시도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갈라디아인들이 그들의 편에 섬으로써 저지르는 잘못에 대해 설득시키기 위해 개입함으로써, 선동가들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편지에 포함된 강조점들과 논쟁적인 주제들 혹은 주장뿐 아니라 가끔은 모호하기도한 언급들(비난, 논쟁적인 욕설, 역설적인 소견, 수사학적 질문들)에서부터 출발하여 그들의 사상을 재건할 수 있을 것이다.

  적대자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시키려 하고(1,7), 갈라디아인들을 진리의 길에서 막고 있는 사람들이다(5,7). 그들이 공동체에 가져온 혼란은 엄중한 심판과(5,10) 파문을 받을 만한 것이었다(1,8,9). 실제로 그들은 구원을 받기 위해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가져야 함을 부인하지는 않지만(2,16,17), 갈라디아인들로 하여금 할례를 받고(5,6,11-12; 6,12)모세의 율법을 지키도록 강요하면서(4,21), 이 단계가 의화를 얻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5,4). 그러나 그들은 갈라디아인들에게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면서도 할례를 받은 다음에는 모든 율법을 지킬 의무가 있다는 것을 설명하지 않았다(5,2-4). 더구나 그들 자신은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서도, 갈라디아인들이 할례받았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박해받지 않기 위한 목적으로만 할례를 주장하였다(6,12-13). 더구나 그들은 특정한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키도록 가르치는데, 그것은 갈라디아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면서 벗어났던 이세상의 원소들에 다시 예속시킬 위험이 있었다(4,9-10; 참조 4,3).

  바울로와는 다른 교의를 가르치면서 적대자들은 갈라디아인들을 사도와 갈라놓기 위해 노력하였다. 갈라디아인들을 위해 배려했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이해관계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들은 갈라디아인들이 자기들에게 열성을 보이도록 따로 떼어내기를, 즉 바울로에게서 분리시키기를 원하였다(4,17). 그래서 바울로에 대한 비난과 비방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바울로는 진짜 사도가 아니라 사람들이 보낸 단순한 설교가이고(1,1), 그가 할례로부터의 해방을 설교한다면 그것은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고 하는 것이며(1,10), 그의 교의는 단순히 사람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고 사람의 기준에 의한 것으로(1,11-12), 베드로나 예루살렘의 저명한 사람들의 설교 수준에 못 미치는 것이다(2,1-10). 더구나 그 자신이 할례를 완전히 거부한 것은 아니며(5,11), 그의 이론으로 비윤리적이고 자유방임적인 길을 열었다(5,13,19-21,24-26)고 주장하였다.

 

2) 선동가들의 정체

편지에서 바울로가 언급하고 있는 사항들에서 출발하여 학자들은 새로운 선동가들의 정체를 규명하려고 시도하였다. 교부 시대부터의 전통적인 견해는 그들이 유대주의적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라는 것이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도 이런 전통적인 해석에 지지를 보내고 있지만 그들의 종교적ㆍ문화적 기원과 갈라디아에서 소요가 일어나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상당히 다른 의견을 보이고 있다.

  제일 먼저 문제를 제기한 것은 튀빙겐 학파였다. 바우어(F.C.Baur)는 그들이 예루살렘 출신의 열성적 유대계 그리스도인들로서, 당시 바울로의 선교 방법에 완전히 동조하지 않고 있었던 예루살렘 사도들의 묵인하에 바울로의 교회에 침입하여 이방인들에게도 율법의 계명들을 요구함으로써 복음화 사업을 완성하려하였다고 주장하였다. 후에 쉬베글러(A.Schwegler)와 젤러(E.Zeller)는 바울로의 적대자들의 배후에는 예루살렘 교회의 전체 지도층이 있었으며 그들 중에는 베드로와 야고보가 포함되어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이 이론을 반박하고 나선 것은 라이트후트(J.B.Lightfoot)였는데, 그는 새로운 선동가들이 예루살렘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활동은 예루살렘 사도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들 나름대로의 노선을 택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이론을 수정한 것은 호르트(F.J.A.Hort)였는데, 그에 의하면 그들은 야고보 계통의 사람들로서 팔레스티나 밖에 있는 공동체 안에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관계에 대해 사목적으로 걱정하던 야고보가 자신의 대리인으로 파견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야고보의 관심사를 잘못 이해하였을 뿐 아니라 이방계 그리스도인들도 할례를 받고 유대교식 생활방식을 영위해야 한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하는데 이용하였으며, 그래서 그들의 활동은 예루살렘 사도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하였다고 보았다.

  뤼트거트(W.Lutgert)와 로페스(H.Ropes)는 갈라디아에 두 종류의 적대자들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즉, 바울로의 메시지 중 유대교적 특징을 과장하는 유대주의 그룹과 자유에 대한 가르침을 과장하는 영적 근본주의로 구성된 영적 그룹이 있었으며 이들은 서로 대립하고 있었다. 유대주의 그룹은 바울로가 예루사렘 사도들로부터 너무 독립되어 있다고 비난하였고, 반대로 영적 그룹은 바울로가 사도들과 유대교의 윤리적 전통에 너무 얽매여 있다고 비난하였기 때문에 바울로는 이 두 그룹의 비난에 대해 한편으로는 자신의 사도적 권위와 복음의 정당성을 옹호하고(1,1-5,12), 다른 한편으로는 윤리적 극단주의를(5,13-6,10)견제해야 했다. 로페스는 이런 뤼트거트의 이론에 동조하면서 그들은 유대인도, 유대주의자들도 아니고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 있는 히브리 요소에 매료된 이방인들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이론은 학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그것은 바울로가 갈라디아인들에게 적대하는 두 그룹을 상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뭉크(J.Munck)는 문제의 핵심이 바울로의 메시지에 있던 것이 아니라 구세사와 관련된 것임을 주장했다. 즉, 예수의 재림 때 이루어질 유대인들의 완전한 구원 이전에 많은 수의 이방인들이 먼저 신앙을 갖게 될 것인지가 문제의 핵심이므로 갈라디아의 선동가들은 유대교 유대주의자일 수 없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대한 바울로의 가르침을 곡해하고 구약 독서에 과도하게 사로잡힌 이방인들이었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이 주장도 설득력을 잃고 있는데, 그것은 뭉크가 자기 이론의 근거로 6,13을 제시하면서, 그들이 할례를 주장하는 것이 박해를 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6,12의 내용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쉬미트할스(W.Schmithals)는 갈라디아의 적대자들이 유대계 그리스도인들로서 열광적인 영지주의자들이라고 본다. 그들은 사실 자유를 육에 따라 살기 위한 구실로 삼는다(5,13). 할례를 강요하지만 그것은 기회주의적인 것이고, 모든 율법을 준수하도록 요구하지도 않은 것 같다(참조 5,3; 6,12-13). 바울로가 1,11-24에서 반박하고 있는 비난은 그가 예루살렘의 사도들보다 못하다는 비난이 아니라 그들이 자랑하는 영적이고 은사적인 현상들이 없었다는 비난인 것 같다. 사실 그들은 윤리적 자유방임주의를 예식적 의식주의와 혼합시키고, 그리고 할례의 마술적이고 자유론적인 개념과 우주 원소의 경배 의식을 혼합시킨다. 이 이론은 일리가 있지만 많은 약점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그 이론이 근거하고 있는 자료들은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바울로가 그토록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그리스도교 안에서의 율법의 역할이 논쟁의 진정한 핵심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주웨트(R.Jewett)는 바울로의 적대자들을 당시 팔레스티나에서 일어나고 있던 젤롯 운동, 특히 벤띠디우스 꾸마누스(Ventidius Cumanus)가 총독으로 있는 동안(48∼52년) 일어났던 젤롯 운동을 배경으로 설명한다. 66년 유대전쟁 발발 때까지 젤롯 운동이 일어나 이스라엘에서 모든 이방 요소들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며, 이방인들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유대의 유대교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는 율법주의적인 운동이 일어났는데 그것은 율법을 모르는 이방인들과 교제한다는 의혹을 피하고,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요구함으로써 젤롯당의 복수를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주웨트는 갈라디아의 유대주의자들은 바울로에게 반대하려던 것이 아니라 바울로의 메시지를 보완하여 갈라디아의 개종자들을 완전함으로 이끌려고 했으며, 이것이 그들에게 매력을 느끼게 하였다고 보았다.

  위에서 보았듯이 갈라디아에서의 선동가들의 정체와 소요의 배경에 대한 학자들의 주장은 매우 광범위하다. 위의 이론들은 나름대로 지지를 받아왔고 또 수정, 변경되어 왔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그들의 정체를 학문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최소한 그들의 일반적인 윤곽에 대해 묘사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그들이 율법주의적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전통적 해석을 따르고 있다. 그들은 유대교적 방향의 그리스도교 선교운동을 전개하던 사람들로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할례와 율법 준수의 필요성까지 제거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율법과 할례 그리고 전례력의 원리를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들고 왔으며, 그것이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에 온전히 참여하기 위한 것이고 아브라함의 축복에 참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였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바울로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메시지를 완성하기 위한 것이며 갈라디아의 그리스도인들을 완전함으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을 수도 있다.

  비록 그들이 예루살렘 교회나 그 지도자들과 연관이 있었는지 그리고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는 명확하지 않고, 바울로가 주장하는 대로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려는"의도가 있었던지도 분명하지 않지만, 바울로가 소요 상황에 직면하여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핵심을 이 기회에 분명히 밝히고 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바울로와 갈라디아 공동체 사이에 있었던 분쟁의 결과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편지의 어투로 보아서는 거의 완전히 결별할 지경인 듯하다. 사도가 갈라디아인들이 자신과 자신의 복음에서 완전히 멀어짐으로써 마지막 행보를 옮기지 않도록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증명된 것이 아니다. 로마15,25-26에서 바울로는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에서 행해진 모금을 이야기하면서, 그 모금이 이미 시작되었던(1고린 16,1 참조)갈라디아를 언급하지 않는다. 더구나 그가 기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갔을 때, 갈라디아 교회의 대표가 동행하지 않았다(사도 20,4 참조). 이는 이 지역들이 그 계획에 참여하기를 거부하였으며, 이는 그들이 바울로와 그의 복음을 버렸음을 의미할 수 있을 것이다.

 

7. 메시지: 그리스도의 유일한 복음

갈라디아 교회에 침투한 유대교 풍습을 주장하는 설교가들에 대해 바울로는 순수하게 그리스도론적인 열쇠로 대항한다. 그들의 의도와 그들 주장의 궁극적 기원이 무엇이든지간에 바울로는 그리스도에 의해 실현된 하느님 계획의 빛에 의해 율법의 역할에 대한 분명하고 결정적인 심판이 내려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1) 우리들의 구속자 그리스도

갈라디아서에서 바울로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완성에 도달했음을 밝히고 있다. 그는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이 이루어지게 한 "후손"이다(3,16).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을 보내셨고, 그분은 한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셨습니다. 그것은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이 구속되도록, 그리고 우리가 아들 자격을 받도록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4,4-5). 부활하신 분(1,1)은 "우리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따라 우리를 이 악한 세대에서 건져내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주셨습니다"(1,4). 그분 안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얻었고, 그 자유를 잃는 것은 우리를 다시 노예로 만드는 것이다(2,4-5; 참조 4,7,9).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저주가 되시어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구속하셨습니다"(3,13).

  그리스도가 주신 자유는 지상 예루살렘과 그 자녀들이 매여 있는 종살이와 대조된다(4,21-31). 우리의 충만하고 결정적인 해방은 그분 덕분이다(5,1,13). 모든 사람은 그 자유를 얻을 수 있지만 예수의 인격과 업적에 밀접하게 연결됨으로써만 얻을 수 있다. "내게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말고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나는 세상에 대해 못박혔고 세상도 나에 대해 못박혔습니다"(6,14).

 

2) 신앙을 통한 의화

그리스도께 의지하여 그의 죽음과 삶의 경험에 참여하는 것은 "믿음"이라는 용어를 통해 표현된다. "사는 이는 더 이상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 살아가는 것은 나를 사랑하고 나를 위해 당신 자신을 넘겨주신 하느님 아드님께 향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2,20). 신앙은 업적이나 지성적 동의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하느님의 구원적 주도권에 근본적으로 열려 있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신앙을 통해 사람은 "의화"를 얻는다. 유대교 풍습에 대한 분쟁의 자극을 받아 바울로는 이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우리는 사람이 율법의 행실로써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향한 믿음을 통해 의롭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그것은 율법의 행실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통해 의롭게 되기 위해서입니다. 누구도 율법의 행실로써는 의롭게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2,16). 성서 언어에서 의화는 사람으로 하여금 의로움을 얻게 하는, 즉 의로운 사람, 하느님의 친구가 되게 하는 재판을 의미한다. 신앙을 통해 그리스도께 의지함을 통해서만 그는 죄에서 해방되고 하느님과의 친교에 들어간다.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기에 신앙은 필연적으로 사랑을 만들어낸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이 중요합니다"(5,6).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업적은 이렇게 충만하고 효과적인 것이기에, 그분의 업적과 비슷하게라도 필적할 만한 어떤 현실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율법은 이제 그 의무를 다하였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율법을 완전히 포기하게 된다. 이점에 대해서 사도는 이보다 더 격렬할 수 없을 정도로 표현한다. "누구도 율법의 행실로써는 의롭게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2,16)."사실 나는 이미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 죽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느님을 위해 살기 위한 것입니다."(2,19). "사실 사람이 율법을 통해 의로워진다면 그리스도께서는 결국 헛되이 돌아가신 셈입니다"(2,21). "여러분이 만일 할례를 받는다면 그리스도는 여러분에게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5,2). "여러분 중에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와 인연을 끊은 것이며 은총으로부터 떨어져나간 것입니다"(5,4). 결정적으로 그리스도를 선포하면서 동시에 율법의 준수를 요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1,7)하는 것이다.

  실제로 율법은 하느님 계획에 부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율법은 "약속된 후손이 오실 때까지 사람들의 범법 때문에 곁들여진 것이요, 천사들을 통해 한 중개자의 손을 거쳐 제정된 것"(3,19)이다. 따라서 율법은 오직 간접적으로만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구원을 가져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죄를 늘리기 위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율법이 존재하던 시기는 약속을 준 시점과 그 실현 사이의 중간시기이다. 이것은 율법이 그 본성상 생명을 줄 수 없다는 사실에 기인한다(3,21). 바울로는 여기에서 율법이란 진정한 믿음의 행동과 상관없이 인간이 하느님의 마음에 들기 위해 오직 자신의 힘만으로 지키기를 요구하는 일련의 규정들일 뿐이라고 생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렇게 이해된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의 감시자였는데,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기 위해서"였다(3,24). "감시자"는 엄한 규율을 가지고 어린아이를 선생으로서 지도하는 노예였다. 율법은 인간을 지킬 수 없는 규정들의 노예로 만들어서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하였다. 사랑의 규정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율법"은 전혀 다른 경우이다(5,13-14). 이 율법은 성령이 함께하고 인도하기 때문에 충만히 그리고 아무 어려움 없이 준수될 수 있고(6,2 참조), 오직 성령에 따라 걸어가는 사람들만이 준수할 수 있는 것이다(5,18-23).

  율법에 반대하는 바울로의 논쟁은 따라서 분명히 그리스도론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행해진 그리스도의 업적을 축소시킬 수 있는 위험을 피하고 싶은 것이다. 특별히 이교에서 개종한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와 율법을 채택하는 것은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이야기 상대가 되기 위해서 그리스도만으로 충분치 않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를 거부하게 만들고 그의 십자가를 쓸모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3) 믿는 이들 마음속에서 활동하시는 성령

그리스도의 구원업적은 성령을 통해 실현된다. 갈라디아인들은 율법을 지키는 행실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에 귀기울임"으로써 성령을 받은 것이다(3,2-3). 특별한 표징이 동반된 그분의 도래는 그들의 삶에 깊이 각인 되었다(3,4-5). 그들이 하느님을 아버지로 경험했다면, 그것은 성령의 덕분이다. "과연 여러분은 아들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셨으며 그 영은 '아빠 아버지!'라고 외치고 계십니다"(4,6). 마지막으로 믿는 이들에게 육의 욕정과는 반대되는 영감을 주면서 하느님을 향한 여정에서 그들을 인도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다(5,16-26).

  믿음을 통한 의화는 하느님께서 교회를 모으시는 수단인데, 그 교회 안에는 하느님의 이스라엘(6,16), 즉 종말론적 시대에 뽑힌 백성이 존재한다. 그것이 그 자녀들을 해방 안에 태어나게 하는 천상 예루살렘이며, 율법의 실천이 아니라 신앙과 사랑의 삶으로 표현되는 공동체이다. 교회는 보편적인데,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께 의지함으로써 그 안에서 자신들의 일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유대인도 그리스도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3,28). 시민사회에 대해 교회는 하나의 대안이며, 그 안에는 인류를 갈라놓는 모든 신분, 성별, 계급, 문화의 장벽이 무너져서 깊은 형제적 친교를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교회에 의지하는 것은 역사, 사회, 문화에 속하는 요인들의 결과가 아니라 오직 믿음에서 나온 결단의 결과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문화적 환경이 지닌 가치 있는 것과 좋은 것을 포기해야 할 필요 없이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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