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부활 제2주일 곧, 하느님의 자비 주일(가해) 요한 20,19-31; ’23/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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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3-04-14 ㅣ No.5357

부활 제2주일 곧, 하느님의 자비 주일(가해) 요한 20,19-31; ’23/04/16

 

 

  

 

 

 

최근에 어느 분이 잠 좀 푹 자고 일하고 싶어요.”라는 소원을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잠이라도 한잠 푹 자고 일하고 싶은데, 쏟아지는 일감이 너무 많아서, 하고 또 해도 업무량을 제대로 채우지 못해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일한다는 여건을 하소연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분은 일거리가 없어서 파리만 날리고 있다고 하소연하시기도 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여건들과 상황이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도록 막습니다. “자식새끼 키우느라 어쩔 수 없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먹고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납기일을 맞춰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야근에 특근까지!” “가정이 조용하려니까 어쩔 수 없이 한 사람이 참아야지!”

 

한 번쯤 생각해 봅니다. ‘나를 가로막고 있는 여러 가지 여건과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원 없이 해 보고 싶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비슷한 하소연을 들을 수 있습니다. “내가 시간만 많으면, 나도 하루 종일 기도만 하고 싶습니다.” “내가 돈만 많으면, 기부도 하고 남도 도우면서 살고 싶습니다.” “내가 몸만 성하다면, 나도 남부럽지 않게 봉사활동 좀 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드디어 주님께서 세상의 죄악을 쳐 이기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날들이 돌아왔습니다. 이 부활 시기에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지난 세월 동안 살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미루고 미루었던 그 좋은 꿈들 중에 하나라도 미련 없이 해 보았으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십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오시어 가운데 서시어 말씀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

 

현대 세계에서 우리가 처해있는 갖가지 조건과 처지와 상황들 때문에, 조급하고 불안하게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죽음으로 갖가지 장애와 장벽들을 쳐이기시고 오늘 부활하시어 그동안 예수님을 가로막고 있던 상처들을 보여주십니다.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20) 그래서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20)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21)

 

그러시고는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온갖 장애와 장벽들에게서 벗어나 일어설 수 있도록 다시 한번 말씀하시고, 직접 부활하신 주님의 영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22-23) 우리는 우리가 그동안 주님을 못 본채하고 무시하며 배반해 왔던 것들을 용서해 주십사고 청해도 부족하여 얼굴을 조아리는데, 거꾸로 주님은 우리를 이미 용서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용서의 사도로 보내십니다.

 

그리고 성령을 내어주시면서 우리에게 용서의 힘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용서해 주어라. 그러면 네가 죄를 짓고 반목하면서 너 스스로 가둬놓고 짊어지고 살았어야 했던 죄악의 멍에에서 너도 해방될 것이다.’라고. ‘용서하면, 그렇게 서로를 잡아 놓고 있던 짐과 장벽, 부정적이고 얼어붙은 인관 관계에서 오는 멍에와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라고. ‘그렇게 용서함으로써, 서로가 죄악의 노예 상태에서 풀려나,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사랑하는 자녀로 회복되고 다시 자유롭게 살도록!’

 

나 혼자 용서하면 나만 손해 보고, 나만 억울하게 될 것이라고 여기며, 스스로에게 죄악의 멍에를 씌워 결과적으로 죄악의 굴레 속에서 헤매고 있는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29)

 

자기 고집과 자존심 그리고 감정과 원한 속에 갇혀서 자기도 모르는 새에, 죄의 상태에 더욱더 깊이 빠져들어 가, 마치 죄악에 미련이 남아 있기라도 하는 듯 늪처럼, 습관처럼 아예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부자연스럽고 불행하고 힘겹게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31)

 

이번 부활시기에는, 그 동안 마음만 먹고 하지 못했던 일을 시도해 봅시다.

 

이번 부활시기에는, 같이 사는 누구 남들을 두고 나쁜 말은 안 하고, 적어도 좋은 것만 기억해 주고 좋은 말만 해주자.

 

이번 부활시기에는, 용서하기에는 너무나도 한이 맺혀서 용서까지는 못 해도, 적어도 없던 것으로라도 하자.

 

이번 부활시기에는 성령을 받아 적극적으로 용서를 해주기까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못 본 채, 모른 채라도 해주자.

 

이번 부활시기에는 그동안 여러 가지 여건과 처지 때문에 마음속에서만 간직한 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했던, 시간만 있으면, 여유만 있으면, 하려고 했던 좋은 신앙의 덕목을 하나 실현해 봅시다.

 

이렇게 나쁜 기억과 나쁜 말이라도 하지 않고 좋은 것만 기억하고 좋은 말만 하면서 부활시기를 보내게 되면, 우리 안에 악이 점차로 설 자리가 없어져 스멀스멀 사라질 것입니다. 그 대신 우리 안에 주 예수님의 사랑이 조금씩 조금씩 회복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안타까움이나 섭섭함과 원망이 줄어들어 어느덧 우리를 괴롭히던 조급증도 홧병도 가실 것입니다.

 

오늘 두 번째 독서에서 요한 사도는 같은 맥락에서 반문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1요한 5,5) 우리 안에 주 하느님의 사랑을 점차로 회복되게 되면, 우리도 부활하신 주님의 새 생명으로 새로 날 수 있게 됩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 사람으로 오셨다가 다시 하느님이 되신 주 예수님!

부활의 새 생명과 빛으로 우리를 다시 찾아오시는 주님을 맞으며, 우리도 새롭게 태어나기로 합시다. 주 하느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내실 때의 그 맑고 고운 모습, 아름다운 생각, 사랑하는 마음, 죄악을 끊어버리고 선을 향하는 의지 등으로 돌아갑시다. 부활하시어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된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여, 우리도 우리 삶의 밝고 평안한 모습을 꾸며보기로 합시다.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요한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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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2주일, 곧 하느님의 자비 주일 꽃꽂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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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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