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니느웨가 바로 나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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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5-02-17 ㅣ No.152

 

제목: 니느웨가 바로 나였구나!


사순 제 1주간 


                               2005, 2,16  수녀원 본원


+찬미예수님


친애하는 수녀님들!


저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마치 낭떠러지에 서있는 듯한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두려움을 이 시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다음과 같이 질문하고 싶습니다.


“우리 수도원이 과연 영원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많은 유럽의 수도원들이 역사안에서 터만 남게 되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보 성인으로 모시는 성모님 그분은 영원한 도움이신 성모님 즉 영원한 천주의 모친이지만 우리가 모시는 주보성인의 이름으로부터 우리의 영원성을 거져 보장 받았다고 생각한다면 그 즉시 우리 수도회는 바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 탄식하신 가장악한 세대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각자와 제자신이 또한 걷고 있는 이사제직과 수도성소가 쇄신의 노력없이는 영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바로  주님 앞에 노심초사(勞心焦思)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오늘 요나서의 말씀처럼 우리가 사순절을 보내는 이 가슴이 과연 “하느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짓”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니느웨는 바로 우리 각자입니다.


니느웨는 사라진 도시가 아니라 회개하는 영혼의 모범이며 동시에 지금 회개하지 않는자에게는 징벌의 표징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군중을 바라보시며 “이 세대가 왜 이렇게도 악할까!”하고 탄식하십니다.

이것은 ‘의문이 아닌 탄식이다.’고 분명히 복음사가는 말하고 있습니다.


악(惡)이란 글자그대로 자신을 가두어 흉하게 될 아(亞)에 마음심이 결합된 글자입니다.


즉 자신을 가두어 열지 않는 마음, 구원때를 간과하는 마음입니다.


더 강한 사랑과 회개에로의 초대를 마다하는 완고(完固)함 즉 완전히 고립되어진 마음!


어쩌면 회개에로의 초대를 마다할수 있는 마음은 바로 안일함의 우상심리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사순절은 바로 회개 즉 하느님께로 문을 열고 영혼을 환기시키는 시기입니다.


니느웨는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요 나자신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시간대를 살아갑니다. 그리니치 시간대는 니느웨 사건을 수천년전의 신화로 여기지만 우리의 구원시간은 니느웨가 바로 지금 여기임을 선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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