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십자가에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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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1-02-28 ㅣ No.4

 

 

내가 부제때 일이다. 얼마 사제서품을 남겨놓지 않고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사제 서품을 준비하고 있던 때.......

 

  • 토요일 저녁기도 후 훈화를 원감신부님이 하셨다.
  • 이제 부제님들이 곧 서품을 받으실 텐데 여러분이 진정 이 성당에 어디에 오르게 된것입니까?
  • 여러분의 목표점이 어디지요?

 

 

"아 당연히 정답은 제단이 아닌가?" 일학년 입학때 우리는 맨 뒷자리 대문가 그 겨울날의 문지방에서의 찬바람과 여름날의 더위를 이겨내고 한학년 한학년 올라가기 10년 한학년이 2줄이니 20칸을 올라오는데 10년이 걸렸다. 아! 19살 아니 만 18살에 청운의 꿈을 품고 성당청소반장 소임을 통해 성당 구석구석에 베인 나의 땀(?)이 느껴졌다.

 

 

 

그런데 답은 왠걸? 제단이 아니었다.

 

모든 부제와 신학생들은 순간 의아해 했다.

 

 

 

정답은 바로 저 제단 위 십자가의 예수님이라는 것이다.

 

 

 

사제가 십자가에 박힌 예수님의 모습이 되어 살아가지 못하면 제단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인양 착각하게 된다며 늘 기도하기를 "오늘도 무사히"라고 기도하지 말고 오늘도 주님을 위해 신자들을 위해 십자가를 주소서. 하고 기도하라 명하셨다.

 

 

 

많은 이들이 "오늘도 무사히" 정신으로 기도한다면 성서에 평화가 우리의 그리스도라고 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 성서에는 못받힌 십자가의 그리스도가 우리의 평화라고 씌어있다.

 

 

 

걱정하지 마라. 엄마가 기도할께 너는 공부나 해라!

 

 

 

이문장을 조금 바뀌보자. 걱정해라! 그리고 엄마도 걱정된다. 하지만 이것은 너와 우리가정의 입시의 십자가니 우리함께 기도하며 공부하자!

 

 

 

십자가 현양죽일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결코 다른 이들의 십자가를 내가 하느님인양 대신 짊어진다는 생각은 전환되어야 겠다. 걱정을 없애려 하지 말라. 십자가를 왜 대신 지어줄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걱정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구약에서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를 건너 인도한것이 바로 사막인 광야!

 

왜 하느님은 기껏 짜짜잔하고 홍해를 가르시는 엄청난 기적으로 탈출을 시켜 주시고는 그 백성을 대명콘도나 한라 콘도 급이상의 궁전으로 인도하지 않으셨을까? 겨우 광야로 내보내기 위해 쇼를 한건가? 왜?

 

신약에 있어서는 그 갖은 고초를 예수님이 당하시고 짠 부활하신다음 우리를 더이상 걱정거리 없이 해 주셔야지 왜 또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는 걱정을 밥먹듯 해댈까?

 

 우리의 삶이 왜 이 세상을 사는지? 그렇다면 차라리  천국에 태어나게 하지 않으시고 이 세상 도시의 광야에 태어나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죄 않짓고 원래 부터 천국에서 사람들이 태어나게 왜 하지 않으셨을까?

 

 

 

그것은 바로 십자가의 지혜를 터득시키지 위함이다.

 

 

 

우리 모두 하루를 시작하며 적극적으로 아무리 무거워도 어린이들이 학교가 즐거워 책가방을 마다하지 않는 그 기분으로 "다녀 오겠습니다."하며 하루를 시작해야겠다.

 

책가방을 무겁다고 하지 않는 이유는 장차 그 책이 바로 자신을 훌륭하게 만들어줄 지혜의 보고임을 그 학생은 알기 때문인 것처럼 우리 역시 십자가가 우리의  생명임을 알때 십자가가 우리의 지혜임을 알때 우리는 그것을 기쁘게 질 수 있다.

 

 

 

 

 

주님 당신의 제단위에 당신의 십자가에 저를 못박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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