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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장 세상을 떠난 레지오 단원들의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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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3-05-06 ㅣ No.43

제 17장 세상을 떠난 레지오 단원들의 영혼

 

1.그리스도의 죽음과 그리스도인의 죽음

 

이장에서는 천주교의 죽음관을 알아봄으로써 세상을 떠난 레지오 단원들의 영혼에 대한 이해를 돕는 특집을 마련하였다.

 

 1.1 부활의 문(門)인 죽음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세상에 인간으로서 죽었다 다시 일어나시어 인류 앞에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구세주가 되셨다. 우리는 이 유일회적(唯一回的) 사건을 부활(Resurrection)이라 부른다.

 이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그리스도교가 탄생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천주교이다. 죽음을 인간 생명의 끝이 아닌 영원한 생명으로 옮아가는 관문으로 인식시킨 그리스도의 죽음은 새로운 죽음에 대한 이해와 부활을 향한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을 따르려는 신앙을 출발시켰다.

 예수의 죽음은 단지 예수 개인의 사건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죽음은 부활과 일치된 현실로서 구원의 역사이다. 단 하나의 현실인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측면에서 그의 죽음은 죽음 자체의 의미와 내용을 근본적으로 변하게 했다고 할 수 있다. 예수의 죽음은 죽음의 파괴적인 힘을 극복하여 죽음을 내부로부터 변형시켰다. 죽음은 원래 죄의 결과이며 악의 결과물이지만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이제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길이 되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문(門)이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복된 부활의 희망을 주셨기에 저희는 죽어야 할 운명을 슬퍼하면서도 다가오는 영생의 약속으로 위로를 받나이다. 주님,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 세상에서 깃들이던 이 집이 허물어지면 하늘에 영원한 거처가 마련되나이다."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에서 전자(前者)의 죽음은 그리스도의 죽음이전의 죽음으로써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죄의 결과로서의 인간 한계의 절정이며 생명의 끝점인 죽음이며 후자(後者)의 죽음은 그리스도를 통해 이룩한 부활을 담고 있는 부활을 향한 문으로서의 죽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죽더라도 주님을 위해서 죽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의 주님도 되시고 산자의 주님도 되시기 위해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로마 14,8-9)

 

1.2  사랑의 계시(啓示)이자 성사(聖事)인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라고 믿습니다."(로마 6,8) 성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고 한다. 즉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한다는 의미는 파괴인 죽음이 구원이 되기 위하여 예수의 죽음에 참여해야한다는 의미이다. ’참여’란 언어는 폭이 넓고 막연한 의미로 사용될 수 있으나 적어도 그리스도교적이고 성서적인 의미 특히 바오로 사도의 의미로서 ’참여’는 매우 현실적인 면서 동시에 신비적인 우리 자신의 ’체험’을 의미한다.

 "예수의 죽음에 대한 참여"는 "예수의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의 죽음이 예수의 죽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가 우리를 위하여 죽었다는 사실의 근저(根底)에는 그가 자기의 죽음을 우리를 위한 죽음으로 했다는 확신이 있다. 이는 그가 우리의 죽음을 자기의 죽음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는 우리의 죽음을 자기 자신의 죽음에 동화(同化)하여 자기의 죽음으로 하였다. 이는 바오로 사도의 그리스도 신비체의 신학에 근거를 두고 있다.

 우리는 사순절을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에 머리에 재를 얹는 의식을 행한다. 이때 사제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명심하십시오."라고 말한다. 부활을 준비하는 사순절의 보속과 극기를 시작하면서 그리스도의 수난과 동참하기 위해서 우리가 상기하는 것은 생명과 부활이신 그리스도 없이는 우리는 한낱 허무인 흙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바오로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존재상의 일치 및 생명상의 일치로 생각했다. 그리스도의 존재와 그리스도의 생명을 그리스도와 공유하는 결과 부활한 그리스도화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되고(2고린 5,14), 그리스도의 고통은 그리스도인의 고통이 되고, 마침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그리스도인의 죽음과 부활이 된다. 그리스도 수난의 공로를 통하여 동일화된 죽음인 우리의 죽음은 부활을 향한 죽음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죄의 결과며 인간의 한계인 죽음의 의미는 그리스도 죽음의 동일화 (同一化)를 통하여 변화된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느님의 인간을 향한 구원사업의 가장 위대한 계시이며 역사적인 표징인 성사이다. 또한 성자의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가장 헌신적인 겸손된 사랑의 봉헌행위이다. 이러한 예수의 죽음으로 우리는 구원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이며 죽은 이들의 부활이 되었다.

 

1.3  죽음의 공동체성-통공에 의한 부활을 향한 연대성

 

 장례예식서의 지침 1항은 다음과 같이 천주교의 장례예식의 본질을 설명하고 있다. "교회는 자녀들의 장례를 통하여 믿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빠스카 신비를 경축하며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세례로 한몸이 된 신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을 생명으로 옮아가게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하여 영혼을 씻어주고 성인들과 뽑힌 이들과 함께 천국에 들어가게 하며, 육신으로 복된 희망을 품고 그리스도의 재림과 육신부활을 기다리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죽은 이들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빠스카 제사인 미사를 봉헌하며, 기도와 전구를 바침으로써 서로 통공하는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서로 영신적으로 도와주며 위로하는 것이다."

 죽음은 천주교의 교리상으로 그리스도의 사심판의 시기이다. 이승에서의 삶에 따라 천국과 지옥과 연옥이 결정된다. 우리는 사도신경에서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성인들의 통공을 믿으며" 라고 고백한다. 통공(通功)이란 공로의 교류를 말한다.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천국에 이르기 위한 기도와 선행을 믿는 교회는 주요한 장례예식의 본질로서 "서로 통공하는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서로 영신적으로 도와주며 위로하는 것이다."를 강조하고 있다.

 통공(通功)은 그리스도의 지체인 공동체의 기도이며 전구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죽음문화의 공동체적 성격을 알 수 있다. 연옥과 지옥 그리고 천국으로 나누어지는 사후(死後)의 천주교의 세계관과 교리는 죽은 이들의 연옥 상태에서 천국에로의 전향을 위한 간구와 기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맺는말

 

1.4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의 죽음

 

 미켄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라는 그림에 보면 연옥에서 천국으로 죽은자를 끌어올리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연옥에서 천국으로 죽은자를 끌어올리는 도구는 다름 아닌 묵주이다. 뗏세라를 보면 수많은 레지오 단원들이 묵주와 십자가를 들고 한자리를 차지하며 도열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레지오 단원들의 위대한 영혼구원사업의 동참을 의미한다.

 30년을 레지오단원으로 봉사하다. 돌아가시는 단원이 이런 말씀을 유언으로 남겼다고 한다. “세상을 떠난 저희 레지오 단원들과 세상을 떠난 모든 신자들의 영혼이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하소서.” 레지오 단원의 개인성화를 통한 사도직 활동은 결국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이루는 아름다운 통공의 기둥이며 이승에서가 아닌 저승에서 맺어지는 열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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