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마리에-old

가다루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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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2-10-13 ㅣ No.30

◑성모님의 나타나심

 

(1) 1531년 12월 9일 새벽에 개종자 "쫀디고"는 미사에 참여하려고 트래테고에 가고 있었다. 그가"태페약"언덕의 기슭을 지나고 있을 때 언덕위에 찬란한 광채가 있는것을 보았고 또한 천국의 음악이 들려오는것을 들었다. 그는 놀라서 조용히 서있다가 언덕위로 올라오라고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 언덕위에 올라가 동정녀 마리아께서 천국의 의상을 입으시고 찬란한 광채 가운데 서계신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가 성모님께서 토인들의 말로 그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는 동안 성모님의 젊음에 넘치는 모습의 아름다움과 자애스런 친절에 "쫀디고"는 말할수 없는 행복감을 갖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녀인은 자기가 예수의 참모친 영원한 동정녀 마리아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자기의 사랑과 불쌍한 백성 구조와 보호를 위하여 이 언덕에 경당을 짖게 하고싶다고 말씀하셨다. 이어서 나는 "나를 사랑하고 나를 믿고 나의 도움을 구하는 너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자애로운 모친이다. 고로 맥시코에 있는 주교한테 가서 동정녀 마리아인 내가 나의 소원을 그에게 알리기 위해서 너를 보냈다고 말해라"고 말씀하셨다.

 

(2)그런데 주교는 맥시코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태페약"언덕에 돌아와서 그때까지 그를 기다리고 계신 성모님께 그의 실패를 말씀 드렸을때, 성모님은 그에게 다시 주교한테 갈것을 명령하셨다. 그때 주교는 성모님께서 그에게 표식을 주어 보낼것을 요구 했으므로 쫀은 이 사실을 성모님께 말씀드렸든바 다음날 아침에 그의 청을 들어줄 것을 약속하셨다. 그러나 쫀은 다음날 아침에 그의 아저씨 "쫀 베르나 디노"의 급작스런 병때문에 그 언덕에 갈수가 없었다.

 

(3) 그로부터 2일후인 12월 12일날 거의 죽어가는 그의 아저씨한테 신부를 모셔오려고 "태페약"언덕을 경유해서 "트랠테로코"성당에 갈때 성모님께서는 그를 만나시려고 친히 언덕을 내려오셨다. 그리고 쫀의 전날 올수없었다는 변명을 들으시고 말씀 하시기를 "내 아들중에 가장 사랑하는 자야 괜찮다. 그러나 내 말을 명심하라. 어떤 일에든 고통을 참고, 병이나, 사고, 고통을 두려워 하지마라. 네 어머니인 내가 여기 있지 않느냐. 너는 내 보호아래 있지 않은가? 그 외에 네가 필요한것이 있겠는가? 너의 아저씨는 죽지않고 틀림없이 나올것이다."라고 하셨다. 그는 이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주교한테 가지고 갈 표식을 해주시라고 말했다. 이에 마리아께서 쫀이 성모님을 세번이나 뵙고 말씀을 들었던 그 언덕에 올라가라고 말씀하셨다. 이어서 성모님은 저기에 많은 꽃이 피었을 것이니 그 꽃을 꺽어오라고 말씀하셨을 때 쫀디아고는 전에는 바위뿐인 언덕에 꽃이 필수없었던 곳으로 생각했지만 성모님의 말씀대로 했다. 가보니 과연 훌륭한 장미의 화단을 발견할 수 있어 한아름 꺽어서 가지고 왔다. 성모님은 그 꽃을 가지고 주교한테 가면 네말을 믿고 나의 소원을 들어 주리라고 말씀하셨다.

 

(4)"쫀디아고"는 무한히 기뻐서 주교 "프레이 쪼디 쭈마라가"앞에 가서 그가 성모님을 네번이나 만났다고 말하면서 그 표식을 보이려고 그의 외투를 벗을때 장미는 마루바닦에 폭포수를 이루웠다. 주교와 모든 사람이 놀랍게도 쫀의 보잘것 없는 외투위에는 전에 그러기라도 했던것처럼 가장 미묘한 색채로서 성모님의 상본이 박혀 있었다.

 

(5)12월 12일 꼭 같은날 일찍이 성모님께서는 쫀의 아저씨앞에 나타나시여 약속하셨든바와 같이 그의 병을 고쳐 주셨다. "쫀베르나 디노"와 57세된 호래비인"쫀디아고"는 그들의 열고를 버린 맨첫 원주민중에 포함된다. 그들은 스페인에 의해 정복당한 4년후인 1525년에 영세를 받았다.

 

◑과달루뻬란 이름의 유래

 

"쫀 베르나 디노"는 그의 조카 "쫀"에게 성모님께서 자기(베르나 디노)에게 놀라운 기적으로 자기의 병을 낳게해 주셨다고 주교에게 말하고 역시 성모님의 존귀하신 상본을 이 교도를 근절 시킬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주교한테 알려 주라고 말씀하셨다고 이야기 해주었다. 환언하면 성모께서 외투에 박힌 성모님의 상본이 맥시코의 우상 숭배 교도들을 근절시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주교는 인디안의 말을 몰랐는데 그가 ’산타마리아 코트라 쑈 페우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때 그것은 마치 "산타 마리아"디 가다루페라고 들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스페인에는 그이름을 가진 유명한 성당이 있었으므로 마리아께선 어떤 사정이 있어 맥시코의 성당 역시 그와 꼭같은 이르ㅁ을 성모님께서 택하셨으리라고는 주교는 생각했었다. 그래서 이런 이름으로 성모님께선 4세기 이상을 존경받아온 것이다. "쫀 디아고"의 외투 성모님이 존귀하신 상본이 박힌 외투는 선인장 섬유를 가지고 손으로 짠것이며 그 천의 수명은 보통 20년 정도 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의 길이는 6피느 반이고 넓이는 42인치이며 꿰멘자리가 위로부터 쭉 나있는 것이다.

 

◑성모님의 상본

 

우리 성모님이 미묘하고 섬세한 모습이 높이 4피트 8인치 이로서 이 거치른 외투 천위에 직접 찍혀 있는 것이다. 가장 믿을만한 상본인 동정녀 마리아의 모습은 4세기 이상이 경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새롭고 사랑스런 자태로 남아이다 그리고 존귀한 상본은 맥시코 시에 있는 가다루페의 성모님 경당 안에서 볼수있고 존경받고 있다 그런데 그 경당안에 성모님의 초상은 높은 제대위의 명예로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진작품

 

실지로 그 상본은 사진작품인 것이다. 일찍이 아주 세밀하게 그린 상본이 상징적인 목적으로 그곳에 있었다. 오늘날 알려진 바에 의하면 22개의 다른 언어가 그당시 맥시코에서는 사용되고 있었으며 방언은 50여종에 달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이 족속들의 우상숭배의 종교는 같은 것이였다. 그래서 그들은 언어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 신성한 상본에 포함된 모든 것은 잊고 이해 할수가 있었다. 이래서 팔백만의 이교도였던 토인들은 7년이란 짧은 기간에 천주교 신자로 개종을 할 수가 있었다.

 

◑성당

 

성모님이 나타나신 2주일 후인 1531년 12월 26일에 성모님은 상본은 맥시코에 있는 주교 좌 성당에서 "태페약"언덕의 기슭에 있는 조그마한 교회당에 옮겨졌다. 수천명의 환희에 찬 토인들과 스페인 귀족들이 다채로운 장시진을 이루웠다. 이 조그마한 성당은 여러번 증축과 수리를 거듭했다. 왜냐하면 성모님의 상본이 제이의 성당이 지워질 때인 1631년으로부터 1722년까지 이곳에 모셔졌기 때문이다. 1677년에는 성모님이 맨처음 세번이나 나타나신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이 언덕위에 성당이 세워졌었으나 이 성당은 1957년에 다시 건축 되었다. 1695년에는 후에 인디안의 (토인) 옛성당이라고 불리워진 건물이 성모님의 상본을 모시는 곳으로 쓰기 위해서 처음지은 성당 바로 옆에 건축되었으며 한편 1622년에 지은 성당은 더 큰것을 만들기 위해서 헐렸다.

 

◑1787년에틑 캐푸친 수도회의 수녀원이 상본에 늘 찬미를 드리기 위해서 바시리카 옆에 지어졌다. 1791년 까지는 언덕위에 아름다운 조그마한 성당이 봉현 되었으며 이것을 1959-1960년 사이에 다시 지었다.

 

◑1709년에 새 건물, 즉 현재의 성당이 건립되었다. 그 성당안에 성모님의 상본이 높은 제단위에 모셔졌고 오늘날까지도 볼수있고 존경받고 있다. 위에 말한 성당은 서반구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그런데 그 건물은 대리석과 붉은 화산돌로 되어있으며 정면은 성인들의 상과 성모님의 나타나심을 기념하는 예술품들로서 장식 되었다. 그리고 종탑은 108피트의 높이이고 둥근지붕의 높이는 124피트이다. 지붕은 184피트의 길이고 122피트의 넓이이다. 또 3개의 회중석이 있는데 8개의 커다란 대들보가 원형지붕과 15개의 둥근 천정과 아치들을 받치고 있다. 그리고 또한 중아에 있는 원형 지붕은 8개의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성모님의 나타나심과 이교에서 그리스도료로 개종한 것을 나타내는 베리스식 수법으로 각각 덥혀 있다. 그리고 한개의 커다란 등이 중앙에 있는 원형 천정에 달려 있는데 뼈대가 수백개의 손으로 짜른 수정 반사경과 225개의 전구를 받치고 있다. 이것은 맥시코 시에서 조각된 것이며 형동주물로서 그 무게는 2톤이나 되는 것이다. 150개의 불빛을 가진 2개의 조그만한 수정으로된 등이 각각 안채에 달려 있다. 16개나 되는 옛날 은제의 등이 대들보 사이에 달려 있으며 가다루페의 역사적인 사실을 나타내는 여섯개의 거대한 걸작 유화가 벽을 덮고 있다. 그리고 초대형의 올갠은 2,000개의 파이프와 한개의 페달 그리고 200개의 스톱을 가졌다. 사방의 벽을 등지고 그리고 중앙 제대의 뒤에는 귀중한 나무로 아름답게 조각된 35개의 반원형의 성가대 자리가 있다. 그런데 성회의 평의원들이 그들의 예식을 행할때 이 자리를 잧이한다. 이 성가대 자리위엔 뮤것히에서 만든 5개의 오색의 유리 창문이 있으며 성당안의 원쪽엔 황금빛나는 주교좌가 있다.

 

제단

 

중앙 제단은 백색의 카라라 대리석으로 되어있으며 그 위에는 성모상이 박힌 "쫀디아고"의 외투가 있다. 그것은 3개의 액자안에 넣어졌는데 5인치의 넓이인 황금으로 된것이다. 4인치의 넓이인 은으로 된것. 그밖에 것은 청동인데 14인치반의 넓이이다. 그리고 성모님의 상본 옆에는 "쫀디아고"와 주교 "프라이어 쫀디 쭈마라가"의 반신상이 흰 대리석으로 조각되어 있다.

 

왕관

 

1895년 10월 12일에 과달루뻬의 축복받은 동정녀는 교황 네오 13세의 윤허로서 왕관이 씌워 졌으며 교황 비오 12세는 1945년 10월 12일에 그녀를 아메리카의 여왕이라고 선언했다. 액자 위에는 1895년 10월 12일에 선사된 그 왕관의 복사품이 언제나 있다. 파리에서 제조된 본래의 왕관은 2만 페ㅔ소의 가치가 있는 보석이 박혀있는데 그 보석은 맥시코의 부인들에 의해 기증된 것이다. 1945년 10월 12일 또 한개의 왕관이 축복받은 동정녀께 선사되었는데 이것은 맥시코시에 유명한 보석상의 감독하에 18명의 예술가들에 의해서 제조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32폰드의 무게에다 많은 진주와 보석들이 박혀 있는 것으로서 보석과 황금은 맥시코 사람들에 의해서 기증된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와 금은 세공자들에 의해서 기증된 다른 몇개의 귀중한 왕관도 있다. 맥시코에서는 성모님께 매년 12월 12일에 로마의 성무일과 기도외에 특별미사와 예식을 봉헌한다. 그리고 과달루뻬에 대한 맥시코 부인들의 신심단체는 일직이 1578년에 발족한 것으로서 아메리카에서는 거의 옛일이 되다시피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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