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성 요한 보스코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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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7-01-30 ㅣ No.360

성 요한 보스코 성인은 고아들의 아버지라 불리는 청소년들의 주보성인이시다.

 

보스코 성인은 생전에 꿈을 통해서 많은 주님의 메시지를 받았다고 한다...

 

한번은 성인의 꿈에서

 

보스코 성인은 천사와 함께 서 있었는데

 

바로 앞 공원에서는 많은 어린이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어린이들은 하나같이 행복해 보이지 않고 몹시 우울한 표정들이었다.

 

성인은 천사에게 물었다.

 

"저 아이들은 어째서 저렇게 불행해 보이나요?"

 

천사는 대답했다고 한다.

 

"저 아이들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보스코 성인은 그 꿈을 통해

 

어린이들에게는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사랑을 받는다고 느끼도록 해 주는것이 진짜 사랑하는 것임을 알았다.

 

사랑을 느끼도록...

 

 

많은 부모님들은 자식을 사랑한다... 정말 사랑한다...

 

그러나 정작 자녀들은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왜 그럴까

 

부모님들은 자녀를 정말 사랑하는데...  혹시나 그 사랑이 부모님 자신들을 위한 사랑은 아닐까...

 

사랑을 하지만 느끼지 못하는건

 

그건 아마 사랑이 아닐것이다...아니 어쩌면 모자란 사랑이다...

 

사랑은 느낌이다..

 

사랑한다면

느끼도록 해 주어야 한다....

 

느끼려고 노력해 주어야 한다....

 

느낌이 중요하다....

 

 

-사랑의 혁명가-  성 요한보스코

 

 

한 추기경이 초라한 사제 앞에 꿇어 강복을 청했다.

 

"추기경이요 대주교이신 분에게 강복을 드리다니....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닙니까?"

 

"잘못되긴.... 돈보스코! 이 돈주머니가 안보이나? 탐이 나면 강복을 주지 그래. 아니면 한 푼도 없다고."

 

"주교님께 강복은 필요없으시겟지만 저는 돈이 필요하니 강복을...." 하고 돈주머니를 받았다.

 

그에겐 헐벗고 굶주린 자식들이 너무 많았기에.

 

1815년 이탈리아 또리노 시 근처의 촌에서 태어나 두 살 때 아버지를 잃고 가난하게 자란

보스코성인은 첫 영성체 때 했던 사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고

그것은 농사를 거들거나 남의 집 심부름을 하면서도 변치 않았다

은인들의 도움으로 소원이 성취되어 사제가 되었다.

 

"나는 가난하게 태어나 가난하게 살았고 가난하게 죽는것이 원이다.

네가 만일 부자가 되기 위해 사제가 된다면 나는 너를 만나지도 않겠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따라

그는 일생 가난한자를 위해 가난하게 살았다.

 

산업혁명 직후라 거리에는 고아와 부랑아가 많았다.

그는 본당 사제보다는 불쌍한 아동들의 교육이 자기 성소임을 깨닫고 거리의 아동들을 모아

종교교육은 물론 기술을 가르치며 직업교육도 함께 했다.

학교와 공장을 짓고 이 교육사업을 위해 살레시오 수도회를 창설했다.

 

당시 통용되던 권위주위를 배격하고 그는 스승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아이들의 친구가 되었다.

 

"강제로 하지말고 모든것을 사랑으로!" 가 그의 교육표어였다.

 

부랑아의 두목이라는 세상의 오해며 비협조적인 정부와의 갈등, 과중한 업무와 경제적인 어려움에다

육신의 병고와도 싸우며 모든 역경을 신앙으로 이겨냈다.

사제로서 교육자로서 개선의 종소리인 듯 울리는 새벽 삼종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으니

1888년 1월 31일.

 

"많은 일을 해도 해야 될 일을 안한자는 적게 일한 것이고,

적게 일해도 해야될것을 한자는 많이 일한 것이다."

는 그의 지론대로 많은 일을 한 그는 46년 뒤 성인 품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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