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짜장면 100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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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2-02-25 ㅣ No.148

* 짜장면 100그릇

 

 

 

그날은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이 만나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하루종일 술렁거리는 축제의 분위기였다.

 

 

 

저녁미사가 시작되기 직전 나는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신자가 급히 뛰어가고 있었다. 얼굴은 크게 상기되어 있었다.

 

 

 

"아! 신부님!

 

혹시 재우 못보셨어요? 재우가 없어졌어요? 벌써 9시간이나 찾고 있는데 ........

 

아파트 단지를  엄마와 아주머니들이 찾아보았는데 그 5살어린 것이 어디갔는지 난리가 났어요!"

 

 

 

재우 어머니는 참 열심하신 신자였다. 매일  어린 아들과 함께 성당에 나오셨다.

 

 

 

그의 형은 복사였다.

 

미사때 신부님 옆에서 신부님을 도와주는 그의 형을 바라보면서 동생재우는 늘 형에게 자부심을 갖었다.

 

축구도 잘하는 그의 형을 따라 다니는 5살박이 꼬마친구는 우리 본당의 마스코트였다.

 

 

 

드디어 소문이 퍼졌고 40명이나 되는 복사단이 자전거와 롤러브레이드를 타고 재우네 집에 집합되었다.

 

 

 

영어 학원이니 피아노 학원은 모두 하루 빠지기로 약속하고 엄마에게도 급해서 못알리고 그냥다들 모였다.

 

 

 

40명의 자전거 군단이 각단지별로 소대로 움직이기로 하였다.

 

그리고 각단지의 관리사무소에는 계속 방송을 내 보내기로 하였다. 앨범에서 재우의 사진을 전부 떼어 들고 아이들은 각 단지의 상가와 거리를 자전거로 누비며 외쳤다.

 

 

 

처음에는 재우의 친구들 그리고 점점 소문이 퍼져 그 친구들의 친구들도 나왔다.

 

아이들의 수는 배로 불어났고 그것을 본 파출소 역시 힘을 합쳤다.

 

우리 동네 파출소 만이 아니라 주위의 파출소도 사진을 전송하여 찾기 시작하였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우리는 점점 "이젠 찾아볼때도 없는데...."라는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찾기를 계속했지만 간곳을 반복할 뿐이었다.

 

어른들의 얼굴은 굳어지기 시작했다.

 

 

 

전화가 왔다.

 

재우가 집에서 20킬로 떨어진 먼곳에서 경찰순찰차에 의해 극적으로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재우는 버스를 탔던 것이다. 평소 버스타기를 좋아했던 어린 재우는 혼자 버스를 탔던 것이다. 버스의 종점에 내리 그 재우는 길을 헤메다 지쳐 도로에 앉아있었던 것을 순찰차가 정말 우연히 돌다가 사진와 일치하여 발견한것이었다. 간발의 차였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고 하는 말이 떠올랐다.

 

 

 

재우가 먼곳에서 경찰서로 왔다.

 

수십대의 자전거가 일렬로 도열하였다.

 

재우가 내리자 모두 크락션을 울렸다. "만세! 만세! 재우 만세!"

 

 

 

그날 아침 김정일 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이 만나는 순간에 서로 환호성을 울렸던 그 만세! 소리 보다 더 큰 만세 였다.

 

 

 

난 사실 그 전까지는 만세하는 것이 쑥스럽고 챙피하고 유치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날은 정말 아침부터 밤까지 만세의 날이었다.

 

 

 

학원도 빠지고 친구의 동생을 찾기 위해 나와준 그 고마운 친구들을 위해 재우 어머니는 "신부님이 맛있는 것 사주셔요!"하고 금일봉(?)을 주셨다.

 

 

 

그 다음날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짜장면을 먹기로 했다.

 

짜장면 100그릇을 달라고 시켰더니 한집에서 한번에 그양을 만들기 어렵다고 하여

 

3집에 시켰다.

 

 

 

드디어 짜장면 100그릇이 도착했다. 마당에 있던 꼬마부대는 또 만세를 외쳤다.

 

맑은 하늘 오후에 우리는 성당 밴치에 앉아 실컷 짜장면을 먹었다.

 

성당이 짜장면 냄새로 진동하자 주임신부님이 나오셨다.

 

 

 

"주임 신부님도 한그릇 드시지요?"

 

 

 

신부님의 눈이 동그래지셨다. 짜장면을 먹으면서 아이들은 마치 자신들이 영웅이나 된 듯이 그날의 무용담을 나누었다.

 

 

 

한동안 우리성당은 짜장면 냄새와 만세 신드롬으로 즐거운 추억이 가득했다.

 

 

 

 그날은 정말 두 역사적 만남을 기념하는 날이 되었다.

 

 

 

 통일이 되는 날은 짬뽕을 시켜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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