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대중 목욕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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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2-02-25 ㅣ No.147

제목: 대중 목욕탕에서!

 

 

 

나는 대중 목욕탕에 가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신학교에서는 일주일에 두 번 외출이 허가된다. 한날은 반나절! 한날은 한나절정도 되는 이 황금같은 외출시간에 나는 동료들과 외출을 마치고 마지막 코스로 대중탕에서의 목욕의 기쁨을 누린다.

 

 젊은 나이에 너무 조숙(?)한 취미가 아닌가라는 친구들의 말 때문에 나의 별명중에는 할아버지도 있다.

 

 나는 목욕탕에서 한 젊은 아버지를 만난적이 있다.

 

8살 박이 초등학교 1학년 꼬마 아들과 5살 박이 막내 아드님들께서 젊은 아버지의 등에 붙어서 낑낑거리면서 아버지의 넓은 등을 밀고 있었다.

 

 너무나 정겨운 모습이었다. 두 아들은 등을 밀다가 지치면 장난감을 갖고 놀고 또 아버지가 들어가지 말라는 찬물에 들어가 소리를 치며 첨벙되었다.

 

 급기야 어느 무서운 할아버지의 벼락과 같은 고함이 터졌고 몇초뒤에 막내아들의 울음이 터져나왔다.

 

그 아버지는 정말 내가 보기에 목욕을 하러 왔는지 아들과의 전쟁을 치르러 왔는지 모를 정도로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 말을 건넸다. "힘드시지요? 이동네 사시나요?" "네! 이동네 삽니다. 그런데 자우 이 목욕탕에서 뵌 것 같은데...... ! 정말 죄송합니다. 아이들이 너무 개구쟁이들이라! 엄마보다 이상하게 아빠랑 목욕하는 것을 좋아해서 말이죠! 그리고 이젠 여탕에 들어갈수 없는 나이고요! 같이 목욕온지 몇 번 안됬는데 애 엄마가 목욕시키는 방법을 일러 주었는데 영 잘 안되네요!"

 

 "그래도 좋아보이세요!" "네! 처음으로 아들 둘이 철이 든건지 옆에 아이들을 보고 한것인지 저의 등을 밀어준다고 해서 맡겼더니 제법 밀더라고요 건성으로 .........."

 

아버지의 등을 밀어준 두 아들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서로의 등을 밀어주었다.

 

그 아버지는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였다. "내가 아들들에게 처음으로 받아본 봉사가 내 등을 밀어준 것이예요!"

 

 그 말을 듣고 나의 어린시절의 목욕탕에서의 추억이 떠올랐다. 우리 아버지 역시 어린 두 아들과 함께 대중 목욕탕에 가는 것을 좋아하셨다.

 

동생은 늘 아버지 말씀을 잘들어서 때를 밀때도 얌전하고 아버지 말씀을 잘들었지만 나는 머리에 바가지를 덮어쓰고 손에는 큰 물총을 들고 장난감 한바가지를 목욕탕에 깔고 노는 말썽꾸러기 군인이였다.

 

 그래서 늘 그 말썽 때문에 목욕탕에서 화제가 되었다. 나의 장난감을 밟아서 넘어져 다치실뻔한 아저씨들도 많아서! 때미는 아저씨는 내 장난감들을 지뢰밭이라고 불렀다.

 

당시 어린 나에게 지뢰밭이란 장난감을 이르는 다른 말로 알아들었고 커서 학교에 다니면서 지뢰가 무엇인지를 알게 돼서 부터는 얼마나 내가 목욕탕에서 위험인물이었던가를 알게되었다.

 

아버지는 어느때부턴가 때를 쎄게 미는 당신과 목욕탕에 함께 가기 싫어하는 아들들에게 용돈이라는 것을 주기로 하시고 일주일에 한번씩 꼭 목욕탕에 가자고 하셨다.

 

 우리 두형제는 용돈이라고 받은것의 시작이 목욕탕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아빠(그당시)의 등을 밀어주는 것이 용돈을 주시는 조건이었다.

 

나는 효심에서가 아니라 용돈을 타는 맛에 열심히 아빠의 등을 밀었다.

 

그리고 목욕이 다 끝나고 머리를 말리면 용돈을 주셨다. 그리고 목욕탕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에 시장에 들러서 우린 쇼핑을 하였다.

 

 지금에서 생각해 보면은 아버지의 깊은 뜻을 2가지 정도 느낄수 있다.

 

하나는 무엇보다 당신의 두아들과 함께 목욕하는 아버지의 기쁨이다. 아들을 씻기고 그리고 아들이 아버지의 등을 서로 밀어주는 이 시간은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몸으로 전달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계산을 직접시키므로써 산수공부도 시키고 세상을 접하게 하므로써 작은 인생공부의 시작을 함께하시려는 마음이신 것 같다.

 

이 두가지의 뜻은 바로 사랑이라는 말로 표현할수 있겠다.

 

사랑이라는 말처럼 표현이 다양하게 나오는 말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사랑을 볼 수 있는 장소 중에 하나가 목욕탕이 아닌가 생각한다.

 

신부가 되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목욕탕에 신부의 신분으로 가는 것이 뭔지 좀 쑥스러워 한동안 자제를 하였다. 본당에 부임하여서 점점 많은 신자분들을 알게 되면서 나는 목욕탕에 가는 것이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왠지 아담이 선악과 먹은 것처럼 부끄러웠다.

 

 줄곧 목욕탕가는 것에 대한 예찬론자였던 내가 신부가 되어 신자들이 다니는 대중탕에 간다는 것이 마치 벗은 몸으로 잘지내다가 선악과 먹고 갑자기 부끄러움을 알게된 아담과 같다는 말이다.

 

 그러나 내가 목욕탕을 좋아하는 것은 아담의 선악과도 소용없을 정도 인지 나는 당당하게 목욕탕에 갔다.

 

마침 아는 사람은 없는 듯 보였다. 새삼 안심이 되었다.

 

그 그리웠던 뜨거운 물에 몸을 한참담고 눈을 감으니 피곤이 올라왔다.

 

나도 모르게 "아! 너무 피곤하다!"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나의 귓가에 이런 말씀이 들렸다. "신부님! 피곤하지죠? 성탄절지내시고 처음 본당이라! 안녕하셔요? 저 아무개신자입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인사하였다. "아! 그러셔요? 안녕하셔요!" 드디어 목욕탕에서의 첫 상견례가 벌어졌다.

 

"야! 인사해! 신부님께! 신부님 제 아들녀석입니다." "신부님 안녕하셔요?"

 

무려 7분의 신자들이 함께 목욕을 하고 있었던 나에게 목욕탕은 또 다른 만남의 광장(?)이 되었다. 상견례가 모두 끝나고 판공성사가 유난히 많았던 그 주일에 나는 지친 몸으로 때미는 아저씨에게 몸을 맡겼다.

 

 아저씨는 정말 정성껏 때를 밀어주셨다. 손님들이 밀려있는데도 전혀 동요치 않고 성심껏 밀어주시는 모습이 참 고마웠다.

 

 그날은 지우개처럼 왜그리 때가 많은지? 미안하기까지 했다.

 

"아저씨 때가 많죠?" 나도 모르게 미안한 마음에 마음의 소리가 입으로 나왔다.

 

"아니예요! 손님은 처음 뵙는데 이사오셨나요?" "네! 저번주예요! 저는 대중탕에서 목욕하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매우 친절한 때밀이 아저씨에게 손님이 참 많은 것 같아서 그 비결을 물어보았다.

 

답은 이러하였다.

 

두가지 비결이 있다는 것이다.

 

첫째는 자신의 때를 벗기는 마음으로 손님들의 때를 벗긴다는 것이다.

 

그러면 마음이 뿌듯하고 손님이 많아도 건성건성하지 않고 자신이 다 시원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둘째는 손님이 때가 많냐고 물어봐도 웃으면서 다 이정도는 나온다고 말해야 한다고 하였다.

 

왜냐면 한사람의 때를 미는 것이지 사람의 때의 양으로 그 가격을 메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결국 나의 때가 많았는데도 그 아저씨는 웃으면서 그 비결을 실천하였던 것이다.

 

나는 이목욕탕 이야기를 미사시간에 강론으로 하였다.

 

미사시간에 즐거운 미소가 신자들의 입가에 가득하였다.

 

천주교에서는 일년에 두차례 고백성사를 의무적으로 본다. 부활절을 준비하는 사순절에 그리고 성탄절을 준비하는 대림절에 모든 신자들의 일차적 의무이다.

 

이것을 판공성사라고 부른다.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영혼의 정화시기인 셈이다.

 

어떻게 보면 나는 영혼의 때를 미는 하느님의 때밀이라고 생각할수 있겠다.

 

판공성사가 많은 시기에 몸과 마음이 지치는 것이 사실이지만 동네 목욕탕에서 만난 그 친절한 때미는 아저씨의 비결은 사제인 나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자신의 죄를 용서 받는 마음으로 사제로서 신자들의 죄를 사하여 드리고 위로하는 말씀과 기도를 받치는 친절함이 필요한 시기가 요즈음이다.

 

우리의 죄를 댓가없이 용서해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묵상하면서 나에게 동네 목욕탕은 가고 싶은 휴식처가 되었다.

 

 자주 목욕탕에 다니면서 신자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 시간이 나에는 기다려지는 취미생활이 되었다.

 

대중 목욕탕은 나에게 서로가 아담이 되어 만나는 또 하나의 성당이 되었다.

 

목욕탕은 지친 몸과 영혼을 쉬게하고 서로의 때를 벗기는 좋은 정화의 장소인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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