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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래 묵주수거(空手來 默珠手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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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2-10-13 ㅣ No.26

 제목: 공수래 묵주수거(空手來 默珠手去)

 

 

 

                                    허윤석 신부 (한국천주교 상제례 연구)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라는 속담이 있다.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뜻이다. 이 속담에는 인생의 허무함이 담겨 있지만 또한 욕심없이 이 세상의 삶을 살아가자는 겸손한 마음과 나눔의 정신이 담겨져 있다. 욥기에도 이와 같은 말이 있다. "벌거벗고 세상에 태어난 몸, 알몸으로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던 것. 주님께서 도로 가져가시니, 다만 주님의 이름을 찬양할지라."(욥기 1,20)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수난하시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에 동참하고 자신의 죄를 보속하는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재의 수요일에 머리에 재를 얹으며 사제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듣는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명심하십시오"

 

 그러나 우리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이 흙이 우리 생명의 마침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옮아가기 위한 문인 죽음을 거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세상에 인간으로서 죽었다 다시 일어나시어 인류 앞에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구세주가 되셨다. 우리는 이 유일회적(唯一回的) 사건을 부활(Resurrection)이라 부른다. 이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그리스도교가 탄생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천주교이다. 죽음을 인간 생명의 끝이 아닌 영원한 생명으로 옮아가는 관문으로 인식시킨 그리스도의 죽음은 새로운 죽음에 대한 이해와 부활을 향한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을 따르려는 신앙을 출발시켰다.

 

 

 

"그리스도께서 복된 부활의 희망을 주셨기에 저희는 죽어야 할 운명을 슬퍼하면서도 다가오는 영생의 약속으로 위로를 받나이다. 주님,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 세상에서 깃들이던 이 집이 허물어지면 하늘에 영원한 거처가 마련되나이다."(위령감사송1)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죽더라도 주님을 위해서 죽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의 주님도 되시고 산자의 주님도 되시기 위해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로마 14,8-9)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라고 믿습니다."(로마 6,8)

 

 

 

 장례예식서의 지침 1항은 다음과 같이 천주교의 장례예식의 본질을 설명하고 있다. "교회는 자녀들의 장례를 통하여 믿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빠스카 신비를 경축하며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세례로 한몸이 된 신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을 생명으로 옮아가게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하여 영혼을 씻어주고 성인들과 뽑힌 이들과 함께 천국에 들어가게 하며, 육신으로 복된 희망을 품고 그리스도의 재림과 육신부활을 기다리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죽은 이들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빠스카 제사인 미사를 봉헌하며, 기도와 전구를 바침으로써 서로 통공하는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서로 영신적으로 도와주며 위로하는 것이다."

 

 죽음은 천주교의 교리상으로 그리스도의 사심판의 시기이다. 이승에서의 삶에 따라 천국과 지옥과 연옥이 결정된다. 우리는 사도신경에서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성인들의 통공을 믿으며" 라고 고백한다. 통공(通功)이란 공로의 교류를 말한다.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천국에 이르기 위한 기도와 선행을 믿는 교회는 주요한 장례예식의 본질로서 "서로 통공하는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서로 영신적으로 도와주며 위로하는 것이다."를 강조하고 있다.

 

 통공(通功)은 그리스도의 지체인 공동체의 기도이며 전구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죽음문화의 공동체적 성격을 알 수 있다. 연옥과 지옥 그리고 천국으로 나누어지는 사후(死後)의 천주교의 세계관과 교리는 죽은 이들의 연옥 상태에서 천국에로의 전향을 위한 간구와 기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1998년 여름 내가 부제때 엄청난 수해로 인해 경기도 일대의 공원묘지는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도로와 야산에는 시신들이 흩어져있었고 시신을 찾는 유가족의 오열(嗚咽)이 들렸다. 어느 것이 부모의 시신인 줄을 몰라 당황하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천주교 공원묘지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연도와 위령미사가 봉헌되고 차분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천주교 신자들의 시신은 금새 신원을 알아볼 수 있었다. 바로 묵주 때문이었다. 입관(入棺) 때 우리는 전통적으로 성모님의 전구를 빌며 손에 평소 고인이 사용한 묵주를 두손에 쥐어 드린다. 이러한 묵주가 1998년의 수해 때 시신의 신원을 구별하는 결정적 도구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성모송을 통해 성모님께 "이제와 우리 죽을 때에 우리 죄인을 위해 빌어주소서."라고 기도드린다. 또한 우리는 장례가 나면 "연도가 났다."고 한다. 한국 천주교 역사는 제사의 금지로 인한 교회의 박해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이 상황에서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묵상하고 이를 기도로 승화하여 우리 고유의 가락에 기도를 담은 연도를 탄생시켰던 것이다. 연도는 2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 천주교회의 토착화된 상제례 문화의 증거이다. 빈손으로 온 우리의 몸이 부활을 고대하며 편안히 성모님의 묵주를 손에 쥐고 교회 공동체의 구원을 위한 기도인 연도를 통해 배웅을 받으며 부활을 향한 새로운 출발을 하는 우리 신자들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이다.

 

 천주교 신자들의 삶은 따라서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가 아니라 ’공수래 묵주수거(空手來 默珠手去)’이다. 관(棺)에 나는 무슨 묵주를 들고 들어갈 것인가? 평소에 묵주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후손들이 새로산 묵주, 한번도 기도하지 않은 묵주를 장례식날 새로 사서 넣어줄 것이다. 평소 죽은 영혼들과 교회와 이웃을 위해 기도드린 바로 그 묵주를 가져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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