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빛과 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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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5-02-06 ㅣ No.149

 

맹아학교에서 수녀님이 맹아학교에 놓을 성모님 석상을 주문하러 왔다.

수녀님은 “가장 섬세하고 가장 정교하고 가장 아름다운 성모상을 조각해 주셔요!”

그러나 주문을 받은 조각 예술가는 “수녀님 아니 앞을 볼수 없는 맹아들에게 그렇게 섬세하고 정교한 성모상이 필요한가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수녀님은 “아 네 물론 이들은 빛도 형체도 알아볼수 있는 눈이 없지요! 하지만 이아이들은 성모상을 온몸과 온영혼으로 어루 만지지요! 그들의 민감한 손과 몸이 성모님을 알아 뵙고 사랑하지요”


이 말을 듣고 조각가는 아마도 생애 최고의 성모님상을 온정성을 기울려 만들었을 것같군요! 우리는 무엇으로 그분의 빛을 알아보는가? 그분을 알아뵙는 것은 바로 육신의 눈이 아님을 알수 있다. 당신 빛으로 빛을 보옵나이다는 고백처럼!

어쩌면 성모상을 주문하는 수녀님의 사랑과 정성의 빛이 맹아들과 조각가에게 하느님의 빛을 보게하는 빛이 아닌지?




돌로 만든 인형, 헝겊으로 만든 인형 ,소금으로 만든 인형이 있다. 이 세 개의 인형이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돌로 만든 인형은 아무 변화가 없었으며 헝겊으로 만든 인형은 물을 흡수해 잔뜩 부풀었다. 그리고 소금으로 만든 인형은 바닷물에 녹아 사라져 버렸다.

진리에 대한 추구도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은 돌로 만든 인형과 같아서 진리의 세계에 살면서도 전혀 진리의 존재를 느끼지 못한다. 또 어떤 사람은 헝겊으로 만든 인형처럼 진리의 체험으로 자신의 에고를 채워 자만심이 더 커진다. 진정한 추구자는 소금으로 만든 인형과 같아야 한다. 진리를 체험하는 순간 진리안에서 자신의 존재가 녹아 없어져야 한다.

소금의 짠맛은 바로 진리안에 자신을 녹일수 있는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복음의 맛을 내가 만나는 전존재에 녹이기 위해 우리가 바로 복음이 되어야 하며 우리가 젖어드는 사랑 자체가 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하느님의 능력이신 성령의 힘으로 통해 이룩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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